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선거연령 만 18세 하향조정은 꼭 이루어져야 한다. - 정치의 19금을 폐지하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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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08월27일 01시18분
  • 최종수정 2016년08월27일 11시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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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우리 정치권엔 의미있는 바람이 불었다. 밑바닥부터 16계단을 딛고 올라와 집권여당의 대표로 당선된 이정현 의원부터 박명재 사무총장 - 김광림 정책위의장 - 이장우 최고위원까지, 새누리당의 새 지도부가 ‘흙수저’ 출신으로 무장한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인 지역주의와 출신성분 문화에 강한 균열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이 진정 서민을 위해, 무엇보다 지금 이 사회의 최대 최약계층인 ‘청년’을 위해 일해줄 것인지에 대해서는 강한 퀘스천마크가 든다. 

 

 이는 다름아닌 ‘학습경험’에 의해서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홍준표 경남도지사, 이 둘은 지독하게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끊임없는 노력과 역경을 거쳐 권력의 정점에 섰다는 공통점을 갖고있다.

 

 그런데 현재 그들에 대한 대중적 인식과 평가는 어떠한가? 물론 정치인으로서 평가받아야할 부문은 매우 다양하기에 섣부른 판단은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딛고 올라온 환경적 배경과 그들의 정치가 향한 곳은 엄연히 달랐다는 점이다. 

 

 되려, 요즘 우리 청년들 사이에서는 기성세대로부터 “마, 내 어릴 때는 어땠는 줄 아나? 지독~하게 가난했다. 그걸 다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온기다. 흙수저같은 소리하고 있네. 요즘 애들은 패기가 없어, 나처럼 노~오력을 하란 말이야!” 와 같은 뉘앙스의 조언 (?) 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 때마다 어김없이 "아니, 우리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자랐다는 분들이, 그걸 바꾸기위해 노력하긴커녕 그 때보단 훨씬 나으니까 이 부당한 현실을 달게 이겨내라니? 본인들은 먹고 살만하니까 괜찮다 이거야?” 하는 류의 푸념이 술자리에서 오가곤 한다. 

 

 여기서 우린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국민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서민'을 향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정치인의 출신성분 못지않게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 

 

 또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선 (이미 변해버린 기성세대에게 기대하기보단) 우리가 직접 바꿔야만 한다는 것을. 사실 지겹도록 들어왔던 원칙론이지만, 이는 가장 어려우면서 현실화하기 힘든 명제다. 

 

 왜? 일단 정치인들은 변한다. 뚜렷한 소신이나 신념은 집어치운지 오래, 오직 ‘포퓰리즘’만이 우릴 (낙선으로부터) 구원하리란 확신 아래 아메바처럼 자신의 형태를 바꾼다. 우린 그들을 믿을 수 없고, 일관된 ‘안목’과 ‘태도’는 기대조차 할 수 없다. 

 

 또한 지금은 청년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입시, 취업, 결혼, 육아의 문턱도 넘기 전에 N개를 포기하는 세대들에게 무슨 혁명을 바라는가? 유일한 방법으로 제시되는 투표가 있지만, 표를 던지는 청년들도 50% 밖에 없다. 

 

 어떡하란 말인가? 이대로 서서히 추락하며 다같이 죽자는 말인가? 아니다, 얼마 전 우리에게 희망적인 소식이 다가왔다. 

 지난 1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서 여야 정당과 학계 · 언론계 ·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청회를 열고, 유권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선거연령을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현행 만 19세 이상 투표가능연령을 만 18세로 하향 조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의 작지 않은 혁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필자가 3년전 tv N 시사토크쇼 쿨까당 대국민 법안오디션에서 주장했던 ‘정치 19금 폐지법’을 참고 동영상으로 첨부한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국민의당 김영환 사무총장이 발의를 약속했고, 최고점을 받으며 오디션에서 우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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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엔 “우리가 지키고 우리가 적용받을 (청소년 관련 법을) 할아버지 뻘 국회의원들이 만들고있다.”

 “병역의 의무와 결혼이 가능한 나이가 만 18세인데, 왜 선거권만 만 19세인가?” 라고 외치며 다소 치기어린 문제인식을 드러냈지만, 3년이 지나 생각이 발전된 현재엔 (청소년들의 정치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문제가) ‘정치의 시스템적 변화를 위해 꼭 필요한 일’로 재정의하고 싶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위한 장치의 필요성이다. 

 

 과거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청년들이 중심에 섰던 것과는 달리, 지금의 청년들에겐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이 없다. 따라서 다수가 연대할 수 있는 정치행위는 발생하기가 어렵고, 성공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일례로, 지난 2013년 12월 고려대생 주현우 씨가 사회문제를 다룬 ‘안녕들하십니까?’로 시작한 대자보를 교내에 붙인 이후 의미있는 변화가 퍼져나갈 뻔 했으나, 이내 그가 진보신당의 당원임이 밝혀지면서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으며 불씨가 사그라들었던 사건을 보자. 이는 다수의 청년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나

 

 “뭐야, 쟤가 그 정당소속이었어? 아, 또 운동권.” 하며 특정 세력에 의한 운동이나 바람에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며 실패했다. 또한 얼마 전까지 열렸던 민중총궐기 역시, 다수의 청년들이 ‘문제인식’엔 공감했으나 그 행위에 동참하는 이들과 단체가 강한 정치적의도를 담고있다는 점에서 전체적으로 퍼져나가진 못했다. 

 

 혹자들은 이 사태에 대해 “청년들이 죽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죽었다.”하고 통탄할 수 있으나, 필자는 이러한 분위기가 역설적으로 ‘민주주의의 성숙’과 ‘청년운동’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먼저 달팽이 민주주의로 칭송받은 이화여대 사태를 보자. 당시 사건 취재 과정에서 가장 두드려졌던 점은, 학생들이 ‘운동권 개입’과 같은 ‘특정세력’에 의한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특정 세력에 휘둘리지 않게 되면서 또 다른 특정세력들에게 공격받지 않았고, 그렇게 ‘개개인의 자발적참여’와 ‘연대의식’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으며, 결과적으로 다수 대중들의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즉, 이렇다할 시대정신이 없는 현재, 다수 청년들의 지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정치적 운동의 성공 여부는 ‘개개인의 자발적 참여’와 ‘연대의식’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만 18세 선거권 하향은 매우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본다. 사실상 만 16세로 하향할 수 있는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왜 가능한가?

 

 먼저 한국사회에서 19살과 20살의 삶은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19살 때 까지는 투표나 민주주의를 ‘성인이 된 뒤’의 일로 생각하면서 입시에 집중한다. 그리고 20살이 되면서 대학 진학이나 취업 등으로 졸업 후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렇다할 선행학습이나 성숙도 없이 스무살이 되자마자 급작스럽게 주어진 정치적 판단 권한은, 자신이 속하게 된 특정 집단이나 세력 또는 인터넷 * SNS 등을 통해 습득한 파편화된 정치적 지식에 의해 영향받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이 투표를 하게되면 (1, 2, 3학년이 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고교 내에서) 학년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여러 민주주의에 관련한 이해와 학습이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다. 한 공간 안에서, 어떤 정치적 가치가 맞는지를 토론하게 되고, 선거철이 오면 자신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치인들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를 토론할 수 있게된다. 

 

 그렇게 민주주의를 일찍 학습한 청소년들은 청년으로 넘어가면서 자연스레 성숙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게 될 것이고, 이는 결과적으로 ‘자발적인 선거참여’와 ‘정치연대행위’가 더 활발하게 일어나는 데에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정치인들의 안목과 태도를 강제로 배양한다. 

 

 이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청소년들에게 투표권이 생기는 순간 정치인들은 청소년들을 현혹하는 온갖 공약들을 내놓게 될 것이다. 이는 한동안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될 수 있으나, 청소년들을 ‘고려하게된다는 점’ 자체에서 정치인들에게 꽤 중요한 안목을 길러줄 수 있다.

 

 또한 청소년들이 민주주의를 선행학습하고 청년으로 넘어오면서 ‘연대’를 이루어내고 힘있는 정치적 행위를 만들어낸다면, 혹여 그럴 움직임이 보인다면, 현재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느끼는 두려움만큼의 강력한 억제력을 심어줄 수 있다. 

 

 그토록 주장했던 선거권 하향 조정에 흥분한 나머지 너무도 긍정적이고도 이상적인 이야기만을 적어놓은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된다. 사실 선거권이 하행 조정되면서 발생할 문제와 파장은 매우 다양하고도 복잡할 것임을 잘 알고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더 성숙하고 발전된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선 한 발짝 나아가기 위한 시도에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결정을 지지하며, 정치의 19금을 허무는 선거권 하행 조정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권력은 나눌 수록 커지고 편해집니다.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 남경필 경기도지사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입니다.” 故 노무현 前 대통령

 

 “한 번도 실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한 번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은 사람이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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