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손님, 정치 정식 2인분 나왔습니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07월23일 21시52분
  • 최종수정 2016년07월23일 21시52분

작성자

  • 손수빈
  • 경희대학교 hospitality 경영학부 2학년, IFS POST 청년기자

메타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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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정치란 무엇일까? 여기 정치의 맛을 맛있게 음미할 수 있는 ‘정치 정식’을 먹으며 생각해보자. 정식 순서는 탕평채로 입맛을 돋우고 찜닭을 먹은 후 마지막으로는 밥상이 나오겠다. 그 맛은 근본을 찾아가는 역행의 맛이며 역사에서 찾은 혜안(慧眼)의 맛이다. 

 

Appetizer. 탕탕평평하여라. 탕평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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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음식으로 사색 고운 탕평채가 나왔다. 각기 같은 길이로 채 썬 청포 묵, 쇠고기, 녹두 싹, 미나리, 물 쑥을 데치고 볶아 간장과 식초로 버무림의 맛을 낸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의 고소한 매끄러움을 더하면 더할 나위 없이 여름에 제격인 산뜻한 묵 무침이다. 이 묵 무침이 예사롭지 않은 ‘탕평채’라는 이름을 갖게 된 연유는 사색당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에서 비롯된다. 조선 중기 영조는 붕당 간의 첨예한 대립과 정쟁을 해소하기 위해 인재를 고루 평등하게 등용하는 탕평책을 실시하였다. 탕평책, 탕탕평평(蕩蕩平平)은 쓸어버릴 탕, 바로잡을 평으로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바른 길을 간다는 뜻이다. 영조가 탕평책을 실시한 무렵, 음식상에 묵 무침의 갖은 재료들이 섞인 모양새가 탕평을 상징한다 하여 ‘탕평채’라 이름을 붙였다. 탕평채의 다양한 재료의 색은 각 붕당을 상징한다. 김의 검은색은 북인을, 미나리의 푸른색은 동인을, 청포 묵의 흰색은 서인을, 고기의 붉은색은 남인을 의미한다. 각 붕당의 화합을 위한 탕평은 <서경>에 나오는 ‘무편무당 왕도탕탕(無偏無黨 王道蕩蕩) 무당무편 왕도평평(無黨無偏 王道平平)’이라는 글귀에서 유래한 것으로 싸움이나 시비, 논쟁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공평함을 뜻한다. 이렇듯 영조는 사람을 쓰는 데서도 상호 견제가 가능한 자리에 각각 다른 당파의 인물을 배치하는 쌍거호대(雙擧互對)의 방식을 취했고 후에는 아예 당색은 불문에 부치고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하는 유재시용(惟才是用)의 원칙을 지켰다. 

 영조가 ‘탕탕평평 하여라’라고 말했다면 이스턴은 정치를 ‘가치의 분배과정’으로 정의했다. 권력은 희소성의 가치를 분배하는 기능이라고 한 것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곱하기라면 정치는 있는 것을 얼만큼 불만 없이 나누느냐가 관건이다. 그리고 그 나누기의 주체는 ‘국민’이다. 분배를 맡은 자들은 정책결정기구로 정의되고, 권력은 권력을 쥔 자들의 뜻대로 나눠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스턴의 정치 체계론이다. 정치는 투입과 산출이 서로 소통하는 관계인 쌍방향 도로여야 한다. 그렇기에 ‘선거’로서 국민은 ‘투입’을 요청하고, 정책을 맡은 행정부가 ‘법률제정’을 통해서 국민들의 요청을 수행하며, 국민들은 정부의 정책실행을 겪으면서 평가하는 것이 정치이다. 

 그런 의미에서 2016. 4. 13 국회의원 총선거는 지난 2012. 12. 19의 투입에 대한 중간 평가의 환류 과정이다. 지난 3년 동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정책결정은 국민들에게 ‘그다지 맛이 없는 요리’라는 평가를 얻었다. 그 결과 ‘민주당과 국민의당’으로 발걸음이 옮겨지면서 새로운 투입이 결정되었다. 앞으로도 정치는 환류 과정의 투입에 따라서, 국회와 행정부가 보여줄 정책결정에 따라서, 권력의 주체인 국민에 의해 투입되어야 건강한 식사를 마칠 수 있다.

 각각 다른 색깔과 향의 재료들이 서로 섞여 조화로운 맛을 이뤄내는 탕평채처럼 진정한 화합정치의 산물을 이루는 사회는 국민과 정부, 정당 간의 상호 소통에서 이루어진다. 현명한 신뢰와 비판 속에 탕탕평평하길 바라며 첫 번째 접시의 그릇을 비웠다.

 

Chicken. 쇼를 위한 공약? 닭 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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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 찜은 번거롭다. 닭 냄새를 잡기 위한 전 처리부터 감자, 당근, 양파, 대파, 마늘 등 손질해야 할 많은 채소들, 당면 삶기, 양념 만들기, 푹 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시간까지. 그래도 우리가 누구인가? 치킨 공화국의 민족이 아닌가? 야들야들한 닭 살 속까지 배어 든 간장의 그윽한 맛, 우리는 다시 한 번 닭 찜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낀다. 

그런데 사실 ‘닭 찜’은 결핍이 낳은 산물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이 결핍이란 정치 쇼와 공약 사이의 폐해적 산물이다. 정치의 본질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고 있는 백성을 만족시키는 것이기에 위정자들은 종종 음식을 정치의 소재로 삼았다. 17세기 초, 프랑스 부르봉 왕가를 건설한 앙리 4세는 신구교도 사이의 종교전쟁을 마무리 짓고 풍요로운 프랑스 건설을 약속하며 ‘신께서 나에게 허락하시는 한, 프랑스의 모든 국민들이 일요일마다 냄비에 닭 한 마리를 조리해 먹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많은 닭을 조달할 수는 없었을 터, 어쩔 수 없이 서민들은 늙은 수탉을, 귀족과 부자들은 연하고 부드러운 영계를 먹게 된다. 늙은 수탉은 고기가 질겨서 맛이 없기 때문에 여기서 비롯된 서민의 요리가 프랑스의 유명한 닭 찜 요리 코코뱅(coqua vin)이다. 코코뱅은 와인에 고기를 넣고 끓여 부드럽게 먹을 수 있는 요리로, 서민들 스스로가 질 떨어지는 재료로 고급 요리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닭 찜도 결핍으로 시작되었다. 품질이 떨어지는 재료, 식상한 소재의 음식을 재가공해 새로운 유행을 창조한 것은 ‘안동 찜닭’을 만들어 낸 우리의 손에 의해서 였으니 말이다. 닭 찜 열풍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대공황 당시의 미국 대통령, 로버트 후버는 1928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일요일에는 모든 가정의 냄비에 닭을, 모든 집의 차고에는 자가용을’이라는 선거 공약을 내걸었다. 여가 생활과 풍요로운 삶을 동시에 제공하겠다는 약속의 상징은 곧 닭 찜이었으나, 대공황이 시작된 탓에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정치인의 일요일 닭고기’가 아닌 늙은 수탉이다. 그리고 그 질긴 수탉을 부드러운 닭 찜으로 바꾼 것은 우리들 자신이다. 공약 선정은 그 의미 자체로도 발전이나,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행, 실천이다. 올바른 정책과 정치를 기대할 수 없다면 국민들은 공터에 홀로서기하는 꼴이 될 것이다. 앞서 말했듯, 밥은 백성의 하늘이기에 이렇게 표현된 민중과 먹거리, 권력의 관계는 음식이 정치로 귀결된다는 말이 된다. 고대로부터 밥이라고 표현되는 음식에 관한 것은 소유와 분배를 둘러 싼 권력의 애증을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이 분배의 실패로 인해 권좌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성공적인 결과물로 인해 칭송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인지 정치적 쇼를 지적하는 것으로는 단식투쟁, 선거기간 동안 재래시장에서 일명 ‘서민 음식’을 먹는 것을 꼽는다. 단식투쟁 중 곰탕을 몰래 먹었던 한 정치인의 모습이나, 그들이 말하는 친 서민적, 서민의 정의란 무엇인지 불편한 궁금증을 남긴다. 

 음식과 정치, 배반과 화합의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속에 우리는 더 이상 ‘쇼’가 아닌 ‘리얼리티’를 보고 싶다. 강함의 표현만이 남는 ‘자극성’, 쉽게 변하는 ‘부패’가 아닌 진심이 담긴 닭 한 덩이를 통한 ‘연대’를 이루길 바라며 마지막 밥상을 기다렸다. 

 

 

Main. 왕의 밥상 정치, 수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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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왕이 되면 어떨까? 라는 상상 속에 빠져 본 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벅차는 상상은 아무래도 ‘수라상’ 만한 것이 없다. 드라마 대장금을 보며 꼴깍 침을 삼켰던 어린 시절부터 궁에서 재현하는 궁중음식 연회를 보는 지금까지 조선왕조의 궁중음식이란 기품과 권위까지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음식으로 수라상을 받게 되니, 그 면모를 찬찬히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가 그 동안 여러 매체에서 봐 온 궁중음식, 수라상은 매 끼니가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선을 비롯한 역대 왕조에서는 흉년이 들면 왕 스스로 반찬을 줄이거나 끼니를 줄이면서 백성을 향한 마음을 표현했으니, 왕과 백성들 간의 대화 장이 왕의 밥상 안에 다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두고 ‘왕의 밥상 정치’라 부른다. 왕의 밥상 정치란 이러한 과정으로 정치가 된다. 

 왕의 표정이 보일락 말락 굳어진다. 분명 감납물선(지방에서 올라오는 식재료를 궐내에 들이기 전에 그 신선도나 수량들을 검사하는 과정)을 거친 엄선된 식재료를 썼을 텐데, 음식의 일부가 물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말랐거나 시들시들하다는 것은 해당 식재료를 진상하는 지역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생채의 신선도가 좋지 않고 생채보다 담가 두었다가 먹는 침채가 유난히 많다면, 채소류의 진상을 담당하는 경기 지방에 재해가 있다는 뜻일 수 있다. 또 역대 조선 왕들이 가장 즐겼던 식재료의 하나인 전복이 덜 싱싱하면, 제주도의 수확량이 좋지 못하거나 진상 뱃길이 막혀 묵은 전복을 대신 썼다는 의미이다. 왕은 실망하지만 질이 떨어지는 음식 때문에 그렇다는 뜻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치의 정점에 앉아 만기를 친재하는 제왕의 체면에 어긋난다. 대신 해당 지역의 사정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사옹원 제조에게 묻고, 대책을 의논한다. 공식조회에서도 논의되겠지만, 해당 지역에서 올린 보고를 눈으로 읽는 것보다 혀끝으로 느끼는 편이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왕들의 밥상 정치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실천할 것인가? 이를 막스 베버와 안철수 간의 ‘신념’으로 요리해보자.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는 ‘소명(召命)으로서의 정치’를 강조하며 책임 윤리와 신념 윤리에 대해 말한다. 그는 정치인의 소명에 두 가지 윤리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것이 바로 ‘신념 윤리’와 ‘책임 윤리’이다. 신념 윤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대로 행하고 그 결과는 신에게 맡기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책임 윤리는 자신의 정치행위가 불러올 예측 가능한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베버는 두 가지 모두 필요하지만, 책임 윤리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정치의 특수성 때문이다. 정치는 거대한 행정관료 체제를 지휘하고, 어마어마한 물적 자원을 통제하며, 타인에게 복종을 강제하는 합법적 폭력을 독점한 조직. 즉, 국민의 생사와 국가의 존망을 결정지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정치이다. 

이 위험한 힘 속에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더불어 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위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을 거절했다. 그리고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한다. ‘결국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잘될 때 조금 더 잘되는 것이 아니라 어려울 때 얼마나 신념을 갖고 잘 견디는가, 얼마나 굳건한 정신력을 갖고 원칙을 지키는 가다.’ 이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인 양당 정치구도 타파라는 개인적 신념을 중시하다 보니, 야권 통합과 야권 연대를 거절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치우침’은 무엇을 야기시키는가? 첫 번째로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해친다. ‘국회는 한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말처럼, 우리 사회의 여러 이해관계가 국회에 반영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그런데 한 쪽의 치우침과 우세가 지나치면 두 가지 공간을 잃게 된다. 그들이 주로 대변했던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투입할 공간, 자신들의 절박한 갈등을 조율, 조정하는 공간이 그것이다. 한 쪽으로 쏠린 국회는 민의를 축소시킬 수 있다. 두 번째는 견제와 균형의 힘을 잃는 것이다. 밖으로는 행정부가 국회에 함부로 간섭하지 못하도록, 안으로는 특정 계층의 이익만 대변하지 않도록 제어하지 못해 청와대 수석이 국회의장에게 입법을 지시하는 일이 빈번해질뿐더러 삼권분립의 정신에 어긋나는 ‘행정부의 독주’가 나타날 우려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인 양당 정치를 ‘제 3당 전략’으로 극복하겠다는 신념을 내세웠다. 그리고 이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야권 통합과 연대 제안을 거부했다. 자신의 신념 윤리를 지키기 위해 ‘야권 분열’이라는 정치 행위를 선택한 셈이다. 하지만 간과한 것이 있으니, 막스 베버의 말처럼, 신념 윤리만 강조하며 자신의 정치행위에 대한 결과를 신경 쓰지 않는다면, 한국 정치에서도 파국적인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신념 윤리만 챙길 것이 아니라 책임 윤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책임 윤리는 살핌으로 국민들과 함께 살아가는 왕의 밥상 정치로부터 배워야 한다. 한 발짝 물러서서 잘못된 것은 바로잡고 정직한 책임을 지는 정치 수라상이 되길 바란다.

 유자가 말하기를 “예절을 쓸 때에는 ‘조화’(和)를 귀하게 여긴다. 선왕의 도는 이것을 아름답게 여기니, 크고 작은 모든 예절이 이로 말미암았다. 그러나 절대로 행해지 않을 것이 있으니, 오직 조화만 알고 조화만을 추구하여 예절로서 ‘절제’(節)하지 않는다면, 또한 행해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본래 ‘조화’(和)란 ‘벼’(禾)를 ‘입’(口)에 물려준다는 의미이다. 이 얼마나 조화로운가? 농사를 지어서 얻은 수확물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함께 즐거워하니 말이다. 그래서 예절에는 이 조화가 바탕이 된다. 예절은 그 말 대로 여러 사람이 모여서 서로를 배려하고 조화롭게 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자는 ‘선대 왕’의 도는 조화를 귀하게 여겼으니, 유교경전에서 선왕(先王)은 단순히 옛날 왕이 아니라, 선대 왕들 중에서 양심적인 왕만을 의미한다. 후대에 모범이 될 제일의 기준은 양심이었으니, 선거 공약을 쇼로 만들지 않는 양심과 책임, 부패된 식재료 근본에서의 문제 해결은 조화 안에 예절이 있는 맛있는 사회를 만드는 재료가 된다. 

예절(禮節)은 5행 중에서는 ‘불’(火)의 덕목이고, 계절로는 ‘여름’의 덕목이다. 여름에는 만물이 자기 안에 있던 것을, 훤히 타오르는 불처럼 밖으로 표현한다. 겨울에 씨앗으로 존재하던 것이 여름이 되면 아름드리나무가 되고, 꽃이 되어 자신의 속을 완전히 드러내듯 각각이 아름다운 꽃의 터짐 속에 편식 없는 정치 밥상 앞에 다 같이 밥 한 술 크게 뜰 수 있는 사회를 일궈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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