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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로 나아갈 길 - DMZ 평화둘레길 조성을 앞두고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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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4월12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4월14일 14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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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MZ 평화 안보 체험길 (가칭 ‘평화둘레길’)

 

지난 3일, 정부는 DMZ 평화 안보 체험길 (가칭 ‘평화둘레길’) 조성 계획을 발표하였다. DMZ 평화둘레길은 평화와 안보를 테마로 한 비무장지대 내 시민 탐방로다. 평화둘레길의 코스는 총 세 개로, 각각 강원도의 파주, 철원, 고성을 거쳐 휴전선 철책을 통과한다. 세 개의 탐방로는 4월 말 고성 코스의 시범 운영 이후 점진적으로 개방될 예정이다. 이를 통해 탐방객은 DMZ 내부까지 약 1km를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관광객 안전, 남북 협력, 생태계 보전… 평화둘레길의 과제

 

평화둘레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특히 관광객의 안전 보장 논의가 뜨겁다. 평화둘레길에 대한 북한과 유엔사령부의 확정적 동의가 없으며, 현재 발표된 탐방로 동선 곳곳에 미확인 지뢰 지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 역시 북측에 통보하지 않은 채 이루어졌다. 판문점 선언 1주년을 앞두고, 문재인 정권은 국내외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평화둘레길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행정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평화둘레길 운영이 남북관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불안 역시 큰 걸림돌이다.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인하여 개성공단 협력사업이 잠정 중단되었던 사례에 비추어 볼 때, 평화둘레길 또한 이러한 가능성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북은 1970년 적십자회담을 시작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을 줄곧 논의해 왔다. 또 지난해 4.27 판문점 선언을 통하여 이러한 합의점을 다시금 확인하였다. 박근혜 정부 역시 DMZ 생태평화공원 조성에 관하여 적극적으로 이야기한 바 있다. 이에 따라 DMZ 일부 개방 자체를 문제 상황이라 판단하기는 어렵다. DMZ의 평화적 이용은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차례 도마에 오른 의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적 특수성으로 인해 보존되었던 DMZ 내 생태계에 평화둘레길 조성이 어떻게 다가올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한국 내 환경단체들은 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의 연합인 한국환경회의는 DMZ 개방이 필연적으로 불러올 생태계 훼손과 난개발을 비판하는 성명문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기존에 사용중인 도로, 철책길 등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고, 인위적 개발은 최소화하여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유지한다”고 이야기하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안을 내놓지 못한 상태다. 이에 관한 충분한 설명 없이는 DMZ 생태계 파괴 가능성에 대한 비판을 잠재우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의 공통된 목표가 평화가 아닌 한, 안보를 제외한 가치들은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환경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주 4.3과 ‘평화’둘레길

 

정부가 DMZ 평화둘레길 계획을 발표한 날은 공교롭게도 제주 4.3의 71주년이었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ㆍ 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주도민들은 남한의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반대하며 항쟁을 전개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이를 중앙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인식했다.

 

4.3 진상조사보고서(2003)에서는 당시 강경한 무력 진압 작전으로 인해 도민 2만5000~3만명이 희생되었다고 추정한다. 이후 70년이 넘도록 제주에서 1948년의 4월은 금기어로 존재했다. 1999년 4.3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지난 1월 생존 수형인 18명이 재심에서 공소기각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제주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못했다.

 

전쟁과 분단의 상흔은 아물지 못한 채 우리 사회의 멍에로 남아 있다. 많은 이들은 죽음에 이르거나 이에 비견할 만한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우리가 여전히 이념으로 상대를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에 익숙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남한에는 지배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이들을 ‘빨갱이’로 낙인찍는 경향이 남아 있다. 이로 인해 제주 4.3을 비롯하여 여순 ‘사건’, ‘오월의 광주’ 등 아직도 정명(正名)을 찾지 못한 역사의 조각들이 존재한다. 북한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빨갱이’가 아닌 다른 이름을 택할 뿐이다. 

 

냉전이 종식되었다지만, 분단된 한반도에 이는 멀게만 느껴진다. 정부는 이의 극복 방식 중 하나로 DMZ 평화둘레길을 제시하였다. 둘레길의 조성은 단순히 관광을 넘어 GP(DMZ 내 감시 초소) 철거와 병행된다. 지금까지 비무장지대에서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양측 무장 병력의 삼엄한 경계가 이루어졌다. 교전 역시 수차례 일어났다. 이는 모두 엄연한 정전협정 위반이다. 평화둘레길은 남북의 GP 철수로 가능할 수 있었다. 평화둘레길의 장기적 목표는 단순히 정전협정 위반 내용의 수정을 넘어 새로운 평화협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평화를 향한 지름길은 없다

 

잊힌 이름과 아픈 기억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남북 모두는 평화를 향한 에움길을 걸어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어대사전에 따르면, 에움길은 굽은 길 또는 에워서 돌아가는 길을 의미한다. 

 

분단은 군사주의와 친일 잔재의 원류이자 많은 이의 고통과 죽음을 정당화하는 근거였다. 한반도는 민족을 강조하면서도 군사분계선 너머 같은 민족에게는 총을 겨누어 왔다. 보이지도 않는 선을 넘어가면 적이었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죽어도 괜찮은 상대였다. 그 상태로 약 70년을 보냈다. 논은 다시 습지가 되었고, 총격이 난무하던 지역에는 고라니가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자연은 돌아가는 길을 느릿느릿 걸어 간다. 우리 역시 지름길이 아닌 에움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직은 그 끝이 아득한 에움길의 초입에 DMZ 평화둘레길이 있다. 군사적 긴장이 촘촘히 지배하고 있는 비무장지대를 평화를 주축으로 탈바꿈하기란 쉽지 않다. 어쩌면 사업을 진행하면서 잡음이 나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는 지켜보고, 기다려야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하나의 가치가 다른 가치를 짓밟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평화는 단선적으로 이뤄낼 수 있는 성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서둘러 갈수록 끝이 멀어지는 길이다. 미처 못 본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 상처는 너무도 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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