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야당 없는 대한민국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3월01일 17시05분

작성자

메타정보

  • 25

본문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단다”

벤 삼촌이 스파이더맨에게 건넨, 만고의 진리와도 같은 명대사이다. 제1야당,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집권당으로서의 힘을 누려온 자유한국당에게도 똑같이 적용돼야 할 말이다. 자유한국당은 당시 힘을 누리기만 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갖가지 쇄신에 실패하며, 제1야당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덕분에 사실상 양당 체제가 되어버린 대한민국에서 지난 3년 가까이 야당의 기능이 매우 약해졌다. 사실상 야당 없는 대한민국이었던 것이다. 야당의 부재는 국가적으로 손해를 끼치며, 자유한국당은 하루빨리 쇄신을 통해 의무를 다해야 한다. 

 

<야당의 부재 = 정치적 혼란>

 야당이 부재하면 정치적 혼란이 온다. 한국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이 그 특성일 정도로 대통령의 권한이 강하다. 당‧정‧청은 사실상 한 팀으로 움직이고 사법기구도 인사권이 묶여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마땅한 기구는 야당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야당이 부재하면 거대한 정부 권력에 유효한 제동이 사라진다. ‘다른 말’이 들리지 않으니 정부는 어떤 정책이든 밀어붙일 수 있고, 자신을 대표할 정치적 기구가 정부 이외에 마땅치 않은 국민들은 참여 의지를 상실한다. 자유한국당이 쇄신해야 하는 것은 단순히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건강한 민주주의를 누릴 권리가 있는 전 국민을 위해서이다. 

 

<견제의 역할 = 민주적 책임>

 그러나 지금 정당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자유한국당이 거는 제동은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생떼에 가깝다. 당과 세력이 갈래갈래 나뉜 상황에서 통합된 목소리가 나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통합된 목소리 없이 무조건적으로 정부에 맞서다 보니 ‘5시간 30분 단식’ 같이 생떼만 나오는 것이다. 간헐적 단식은 필자도 한다. 

 계속 이런 식이니 실정, 불통정치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간헐적 단식은 정치적 편향성이 의심되는 조해주 선관위원 임명을 막지 못할 듯 보인다. 게다가 야당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국민이 나서서 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신재민 전 기재부 사무관은 그 대가로 욕은 욕대로 먹고, ‘좁은 세계의 사무관은 모른다’는 훈계까지 들어야 했다. 정부 정책을 견제하고 적폐를 고발하는 일은 야당이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야당은 없는 것과 다름없다. 

 

<대표성 확대>

 마침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와 북‧미 정상회담 날짜가 겹친다. 자유한국당이 기존의 입장을 계속 고수하는 동안 대북관계 판도가 바뀌었고, 절대 불가하다고 외쳐대기만 하는 사이에 북한의 정상국가화는 현재진행형으로 나아가고 있다. 누가 당 대표가 되든, 이것이 시사하는 바를 통해 새로운 야당으로 거듭나야 한다. 붙들고 있는 동아줄이 썩었는지 멀쩡한지에 대한 시시각각의 빠른 판단이 필요하다. 서로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보수‧중도 통합의 첫 단추는 그 판단이다. 

 

<젊은이에게 외면받는 당>

작년 20대 사이에서 유행하던 ‘쓸데없는 선물 주고받기’라는 놀이가 있었다. 짚신, 호떡 1개, 해 지난 달력 등, 말 그대로 선물들이 ‘쓸데없을수록’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긴 것에 의미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 쓸데없는 선물로 추천되는 것에 자유한국당 입당원서도 있었다. 그만큼 자유한국당 이미지가 젊은이들에게 좋지 않다. 이미지 정치를 지양해야 하기는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어느 정도 새로운 이미지를 강구할 필요가 있다. 각 진영의 대표 유튜브 채널로 여겨지는 ‘홍카콜라’와 ‘알릴레오’만 봐도 그 차이가 느껴진다. ‘홍카콜라’는 빨간 배경에, 캠페인 영상을 보는 것 같지만 '알릴레오‘는 유익한 예능을 보는 느낌이다. 시류에 맞는 세련됨이 필요하다. 젊은이에게 외면받는 당은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또 이미지를 넘어서 근본적인 개선도 필요하다. 보수의 반대말은 진보가 아니다. 가치를 이뤄낼 현실적인 방법은 끊임없는 진보적 개혁을 통해 나온다. 개혁 보수 타이틀과 중도의 대표성은 이미지만 바꿔서는 결코 얻을 수 없다. 

 

<국가적 합의>

 한국경제 장규호 문화부장은 국가상징거리가 없다는 내용의 글을 실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른바 진영 논리‘만 있었을 뿐 국가적 컨센서스는 난망한 일이 됐다. ’네이션 빌딩(nation building)'이란 말로 대표할 수 있는 민족 공동체 가치 만들기가 당장은 물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쉽지 않아 보인다.”

 현재 분열될 대로 분열된 한국 사회의 단면은 결국 국민이 공유하는 국가적 가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만한 가치는 애국심의 전제이며, 그만큼 다양한 사회구성원 간 합의를 전제로 한다. 다양한 주체들의 치열한 공방 끝에서만 얻을 수 있는 국가적 합의는 그렇게 다양성과 진정한 사회적 통합의 기본 틀이 된다. 제1야당의 재건을 시작으로 건강한 다당 체제까지, 정치적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 역시 사회적 통합을 향한 첫 발이 될 것이다.  

25
  • 기사입력 2019년03월01일 17시05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