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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빚투가 드러낸 두 가지 그림자, ‘피해자 가족의 고통’과 ‘가해자 가족의 고통’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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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2월21일 17시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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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투 대상자에 왜 분노하는가> 

 

■ 연예인을 대상으로 이어진 빚투 


  가수 마이크로닷의 부모가 20여 년 전 제천에서 친인척을 포함한 지인에게 돈을 빌린 뒤 갚지 않고 해외로 이주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며 일명 ‘빚투’가 시작되었다. 이후 가수 도끼를 비롯해 비, 차예련, 티파니, 조여정 등 유명 연예인의 부모가 과거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는 주장이 알려졌고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등장했다.   

 

 처음에는 마이크로닷 부모의 과거 행적에 대해 분개하고 줄줄이 등장하는 피해자와 그들이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가해자는 멀쩡히 살아가고 피해자만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상황에 많은 사람들이 분개했다. 그 당시 5살에 불과했던 마이크로닷이 어찌 다 알았겠느냐며 그를 동정하는 여론도 있었다. 그러나 사과하겠다는 말과 달리 행적을 감춰버린 지금,동정보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모든 빚투가 돈을 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는 긍정적인 작용만 한 것은 아니다. 빚투와 무관한 당사자의 연인에게까지 해명을 요구하고, 한참 전 연락을 끊은 아버지의 빚을 갚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심지어 가수 비는 실질적 증거를 내놓지 않고 1억 상당을 갚을 것을 요구받았다고 전해 진위논란이 일었다. 이들은 연예인이기에 이 모든 상황을 감내해야만 하는 것일까?   

 

■ 연좌제는 없다, 법적으로는


 연좌(緣坐)란 범죄인의 친족관계에 있는 자들에게까지 연대책임을 지우는 것을 말한다. 조선시대는 연좌제가 통용되는 사회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는 법적으로 연좌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잔재하는 연좌제 때문에 1980년에는 연좌제 폐지가 헌법에 규정되기까지 했다. 헌법 제 13조 3항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연좌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시선에서 그 가족들을 바라본다. 그것이 연예인이라면 더욱 심하다. 일부는 강제적으로 자신의 가족사를 공개하고 해명해야 할 처지에 놓이기도 한다. 이번 ‘빚투’가 대표적이다. 설령 법적인 책임이 없더라도 내 부모의, 내 친인척의 빚에 대해 대중을 설득하지 못하면 연예인으로서 직업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을 이용한 악의적인 빚투가 등장하기도 했다.    

 

■ 빚투를 대하는 ‘일부’ 연예인의 ‘태도’에 분노한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연좌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안다. 다만 대중은 ‘일부’ 연예인이 빚투 논란을 대하는 ‘태도’에 분개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렇다. 내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라 가정해보자. 나와 내 자식들은 남겨진 빚으로 인해 힘들게 살고 있는데 가해자와 그 가족들은 부유하고 당당하게 살고 있다면 어떨까?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를 법한 상상이 현실이었기 때문에 공분을 샀다. 물론 가해자의 가족에 책임이 전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다만, 피해자에 대한 이해심 없이 도의적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태도는 그 사람도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여기게끔 만든다. 가수 도끼가 빚투 논란을 해명하기 위해 진행한 라이브방송에서 ‘천만 원은 내 한 달 밥값’이라는 발언을 했는데, 이는 피해자를 오히려 무시하는 태도로 비춰져 논란만 더 확산되었다. 

 

<빚투가 드러낸 두 가지 그늘>

 

■ 남은 사람의 고통, ‘가난의 대물림을 떠넘기다’


 빚을 갚지 않고 해외로 이민을 갈 경우 피해자들은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대보증의 책임을 쓰고 도망간 사람의 다른 빚까지 자신이 갚아야 하는 상황도 있다. 마이크로닷 논란이 이에 해당한다. 목장을 운영하던 그의 부모가 형제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에게 수억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고 알려졌다. 연대보증을 섰던 사람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대신 져야 했고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다고 말한다. 빚투는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는 피해자와 그 가족들에게 남겨진 고통을 보여주었다.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인생의 짐을 떠넘겼다. 돈을 빌려준 사람이 억울하게도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살아가야 했기에 생긴 ‘빚투’논란. 일부는 악의적으로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을 이용해 거짓을 말하거나 부풀리기도 하지만, 이에 수년이라는 시간 동안 돈을 제대로 받아낼 방법이 없었냐는 문제가 가려져서는 안 된다. 피해는 채무와 무관한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더욱 답답하고 속이 쓰린 지점이다.    

 

■ 빚투 희생자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희생자는 크게 둘로 나뉜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 그리고 가해자의 가족. 피해자 가족이 겪는 고통 말고도 어쩌면 무관하다고 할 수 있는 가해자의 가족 혹은 친인척들이 겪는 고통도 상당하다. 연예인이라는 이유로 가해자 가족으로서 책임을 지라는 요구는 타당한 것일까? 그들도 어쩌면 또 다른 피해자일 수 있다. 자식과 연을 끊은 아버지의 과거 빚을 그 자녀에게 갚으라는 것은 지나칠 수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기에 온전히 다 고통을 뒤집어썼을 그들의 심정도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다. 

 

 빚투의 또 다른 희생자를 낳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돈을 받기 위해 자기가 발 벗고 나서야만 하는 구조가 바뀔 필요가 있다. 위의 논란에서 확인했듯 연대보증처럼 줄줄이 주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 제도가 없어져야 할 것이고, 고액의 채무자가 국외로 이주할 때 이민을 통해 빚을 회피하고 도망가려는지 여부를 점검할 수 있도록 법령을 재정비해야 할 것이다.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노력이 따라야 빚투가 드러낸 두 가지 어두운 그림자를 모두 없앨 수 있을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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