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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심신미약 감경조항과 정신감정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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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23일 17시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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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차오르는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고 범죄행위로 이어지는 경우들이 언론에 등장한다. 얼마 전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샀다. 알바를 하던 청년에게 자행된 끔찍한 범죄는 ‘심신미약 감경’을 또 한 번 화두로 끌어올렸다. 피의자의 가족은 피의자가 우울증 약을 복용해왔다는 내용을 제출하며 심신미약 감경을 노린 것이 아니냐는 합리적인 의심을 낳으며 대중의 분노를 샀다. 다만, 이후 실시된 정신감정에서 피의자가 심신미약으로 인정되지 않아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     

 

심신미약 감경 의무조항 

 우리 형법 제10조는 심신장애에 대한 3가지 조항을 둔다. 제 1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제 2항,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제 3항,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 두 개 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이 중 심신미약은 시비를 변별하고 이에 따라 상황을 판단하고 행동하는 능력이 감퇴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하며, 심신미약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에 대해서는 책임능력이 떨어진다고 본다. 심신미약과 심신상실은 그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판단 기준은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심신미약의 경우에도 의무적으로 감경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대중의 상식과 거리가 있는 조항이라 판단된다. 심신미약 감경 조항에 대해서는 심신장애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부터 표준화된 규정마저 없는 정신감정 판단 방식에 대한 의구심까지 존재한다. 툭하면 나오는 ‘심신미약’이라는 단어를 우리가 신뢰할 수 있을까?  

 

심신미약 의무조항을 임의조항으로

 우리나라 살인 양형 기준을 보면 심신미약의 경우 감경이 이루어지면 형량의 크기가 현저하게 줄어든다. 살인범죄의 제2유형 보통 동기 살인에 해당하는 살인사건의 경우 10년~16년의 형량이 적용되지만, 심신미약에 따른 감경이 이루어질 경우 7년~12년의 형을 선고받게 된다.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조두순의 경우 심신미약을 적용받아 12년 형을 살았고 2020년이면 만기 출소하게 되면서, 다시 한 번 심신미약 감경 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심신미약 조항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심신미약 감경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일례로 남편의 지속적인 의처증과 폭력행사로 정신병을 갖게 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한 경우가 있었다. 이때 심신미약이 적용되어 형이 감경되었고 이외에도 정신지체 등 심신미약이 적용되는 것이 수긍이 되는 경우가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기에, 조항 자체를 없애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다만 의무조항인 감경규정을 법관의 판단에 따라 적용하거나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임의조항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우리 법률 조항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의무조항과 경우에 따라 적용하지 않을 수 있는 임의조항이 있다. 현재 심신미약 감경 규정은 전자에 해당한다. 그러나 ‘강서구 PC방 사건’과 ‘구월동 아내 살인사건’ 이후 심신미약에 대한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이를 의무적으로 감경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형법에 문제가 제기되었다. 국회에서는 지난 10월 말 심신미약 감경 의무조항을 임의조항으로 바꾸자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이다.

 

정신감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심신미약 감경 규정 외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또 있다. 심신미약 여부를 판단하는 ‘정신감정’이다. 전문가가 정신감정을 시행하고 있지만 이러한 감정이 필수는 아니다. 또한 우리나라는 자유심증주의를 따라 정신감정 결과에 대해 법관에 최종적인 결정권이 있다. 감정인은 증거자료를 제공할 뿐 이를 판단하고 채택할지 여부는 법관의 몫이다. 

정신감정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어떠한 방식으로 감정이 반영되었는지 구체적인 논증을 판결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이에 대하여 정신감정의 채택여부는 법률적 판단 요소라는 점에서는 크게 이의가 없다. 다만 독일은 정신감정을 채택하든 채택하지 아니하든 법관은 자신의 판결에 정신감정의 채택 여부를 구체적으로 논증하고 있는데, 참고사항인 상황 최종적인 결정은 법관이 한다는 것은 같지만 이에 대한 논증이 이루어지며 보다 합리적으로 판결을 납득할 수 있게끔 하고 있기에 참고할 만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법관의 자율이 필요하다는 점은 존중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전문인의 감정을 어떻게 적용했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논증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한 사례를 스위스의 형법에서 찾을 수 있다. 정신감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반영하고 있는 스위스는 상당한 의심이 있을 경우 반드시 정신감정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조항이 2007년부터 적용되고 있다(스위스 형법 제20조). 심신미약의 판단에 있어서 책임능력을 판단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 합리적으로 의심할 만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전문 감정인의 감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과거의 의료 기록을 제시하거나 일반 진료기록을 제시하는 등 범행 당시에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적용했는지 판단하기에 부적절한 자료들이 제출되는 현재의 부적절한 실태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이외에도 정신감정 자체의 신뢰성에 대한 지적도 있는데, 감정인에 따라 감정방법에 따라 심신미약에 대한 판단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문제도 지적된다. 이는 ‘부산 여중생 사건’에서 총 3회에 걸친 감정이 이루어졌을 때 이에 따른 법률적 의견이 달랐다는 점에서 책임능력 판단을 위한 정신감정이 적절히 이루어지고 있는지,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채택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공정사회를 원한다면 

 사회를 공정하게 만드는 것은 이러한 억울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두 가지를 제시하고 싶다. 심신미약 감경 조항을 임의조항으로 바꾸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과 정신감정의 절차를 표준화하는 등 신뢰할 만한 정심감정이 시행되게끔 현안을 개선하고 이를 판결에 구체적으로 논증하도록 하여 국민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법부로 나아가는 것.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느냐만 조금이라도 그 답답하고 억울한 심정을 덜어주는 길은, 앞으로 악순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최선의 개선 노력을 하는 것이 아닐까. 공정사회를 원한다면 바로 지금, 귀를 울리는 억울한 목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않아야 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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