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는 사라질 우리의 ‘보헤미안 랩소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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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1월16일 17시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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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또 한 번 록밴드 ‘퀸’ 열풍이 불었다. 또다시 그들을 추억하는 불확실한 감상에 젖어있던 필자의 귀를 확 잡아끈 부분은 바로 몇 번이고 들었던 노래 ‘라디오 가가’(Radio Gaga)였다. 

So don’t become a background noise... You had your time, you had a power.

그러니 소음이 되어선 안돼. 넌 네 전성기가 있었고, 너의 힘이 있었어. 

필자는 인터넷세대로, 접할 수 있는 미디어가 라디오보다 화려한 것들이 훨씬 많은 세대였다. 오히려 라디오가 아니라 스마트폰에 밀려나는 티브이를 추억해야 할 세대에 가까울 정도이다. 그러나 영화 속 프레디 머큐리가 라디오에서 배운 것들, 울고 웃었던 순간들을 노래하던 그 순간 라디오 전성시대가 내게도 물밀 듯이 밀려왔고 그 빛바램이 말할 수 없이 쓸쓸했다. 끝이 정해져있는, 부질없이 유한한 것에 대한 찬사와 그리움이 너무나 찬란하고 슬펐기 때문이다. 

 라디오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퀸에 대한 이야기이다. 80년대 록의 전성기를 열어젖히고,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장르적 다양성과 깊이로 전세계를 매료시켰던 밴드는, 역시 천재적인 감수성과 열정으로 ‘관객들을 한 손 안에 쥐던’ 프레디가 사망하면서 전성기의 막을 내렸다. 그들의 업적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프레디의 죽음이 더 안타깝고, 밴드의 사실상 해체가 못견디게 아쉬운 것이다. 빛나던 과거가 저무는 것, 뜨거웠던 열정의 상실감, 결국 짧게 빛나고 사라질 것에 대한 아쉬움은 퀸 밴드가 가졌던 속성이다. 

 그러나 역으로 생각하면, 퀸이 전설적인 이름이 된 것은 그들이 그렇게 사그러들었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붉은 꽃은, 한 철만 빨갛게 피어나는 꽃의 아름다움을 이기지 못한다.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이 정확히 이럴 때 쓰는 표현은 아니지만 그 맥락은 비슷하다. 그들의 영광이 잠깐 한 시대를 빨갛게 풍미했기 때문에 그들의 퇴장이 더 강렬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독보적인 인물인 프레디 머큐리가 전설적 이름으로 남은 것 역시 그가 죽음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눈앞에 맞이하는 사람이야말로 삶을 진실되게 성찰할 수 있고, 가슴을 저미는 고해를 할 수 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In My Defence’(내 변명을/이야기를 해보자면...) 한낱 가수일 뿐인 내가 어떻게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겠냐는 그의 외침은 지난 자신의 과오를 판단하는 타인과, 스스로를 채찍질했을 본인에게 하는 호소어린 고해와 같다.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마주했기 때문에 그는 매일이 마지막인 듯한 열정을 보일 수 있었다. “인생은 인류 앞에 놓인 가시밭길 같은 도전이며 나는 절대 지지 않을 것이다”(we are the champions)라고 말할 수 있는 영웅적인 열정은 ‘필멸’이 없었다면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이 맞이해야 할 ‘필멸’은 동시에 인생을 부질없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중요한 것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Bohemian Rhapsody)며 장대한 6분짜리 곡을 허무한 듯 끝낼 때 그 울림은 배가 된다. 

 그래서 프레디 머큐리라는 이름은 전세계, 인류의 역사 속에 전설이 되었다. 결국 죽음이 있기에 살 수 있는, 그러나 또한 짧은 인생에 대한 허무함을 숙명적으로 안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을 온 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레디 머큐리의, 퀸의 노래 속 주인공은 우리 모두였다. 이제 그는 죽었고 퀸이 풍미하던 시대 역시 저물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을, 그 때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에 기념비적인 인물이 사망했다. 한국 영화계의 독보적인 아이콘이었던 故 신성일은 그의 인생 자체가 한국사를 관통하던 인물이었다. 그 당시 마초스러운 남성성의 아이콘이었던 그는 그러한 언행으로 후대에 갖은 비판을 들어야 했다. 그때는 ‘가오’였던 것이 지금은 가부장 문화가 되어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일보 문화부장 한현우는 그의 죽음을 기리며 그의 글 마지막에 “그 시대가 저무는 것 같다”고 썼다. 그에 대해서 어떤 평가도 하지 않으면서, 다만 과거의 영광과 덧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대한 짧은 경의와 쓸쓸함으로 느껴진다. 고 신성일과 퀸을 추억하며 그 시대를 향유했던 사람들 역시 변했다. 그들의 젊음은 사그러들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나이 듦을 마주했을 것이다. 젊음의 상실과 동시에 순응과 타협에 가까워진다. 숙명적으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시대의 변화를 체감해갈 뿐이다. 

  운명적인 소멸을 맞이하는 인류는 그래서 문화를 전승시킨다. 레이디가가를 포함, 킨, 너바나, 뮤즈, 엘튼 존 등 셀 수 없이 많은 아티스트들이 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며 퀸의 문화를 전승했다. 또 향유자들 역시 선대의 기억을 전승받아 변형을 가하며 문화를 보존한다. 필자도 그 전성기를 향유했던 엄마의 기억을 전승해 퀸을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후학, 문화의 전승이 인류 스스로 존재 가치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이어져온 문화의 전승이 인류의 역사가 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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