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리벤지 포르노부터 디지털 장례식까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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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10월12일 21시17분
  • 최종수정 2018년10월12일 21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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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

 

 '구하라 폭행'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로 그녀가 포털 검색어에 오르자 그녀는 연일 뜨거운 감자로 대중의 화두에 오르내렸다. 그녀와 연인관계에 있던 최종범씨가 그녀의 폭행으로 인한 얼굴 상처를 공개한 것이다. 상처는 깊어보였고 대중은 가수 구하라를 폭행범으로 단정지어 악플을 퍼붓기에 정신없었다.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기 시작한 것은 며칠 뒤의 일이다. 둘 사이에 오갔던 SNS 대화와 당시의 CCTV, 최씨가 언론사에 제보하고자 시도했던 메일 내용이 공개된 것이다. 특히 SNS 대화에서 최씨가 그녀에게 전송한 둘 사이의 개인적인 성관계 영상이 있었음이 그녀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를 공개한 것은 연예인으로서, 여자로서, 한 명의 인간으로서 몹시도 힘든 결단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를 공개한 것은 용기 있는 선택임에는 틀림없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공개적인 이미지가 곧 가치로 환원되어버리는 안타까운 연예계의 현실을 감안하면 그녀의 선택에는 사건 진위의 범과 실을 명명백백 밝히겠다는 의도가 있었다.

 

 사건의 상세한 책임소지와 시비를 가리거나, 누가 누구에게 어떤 잘못을 했는지 살펴 누군가를 두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이 사건이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와 연관이 있다는 점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다. 문자 그대로 보복성으로 유포하는 성관계 영상이라는 뜻의 리벤지 포르노는 이별 후 소장하고 있던 성관계 영상을 유포하여 상대방의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연예인을 대상으로 하는 일반인의 협박성 의도가 있다는 점, 대중에게 그 경과가 신속히 전달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특수하며 중대하다.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 “나는 잃을 게 없어. xx패치에 제보할거야.” 라고 말한 최씨와 “더 이상 반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를 자극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는, 동영상을 갖고 있으니까. 변호사를 통해 일을 마무리 짓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은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영상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갑이 되고, 관계를 휘두를 수 있는 권력이 된다. 이를 견지한 그녀는 현재 '강요', '협박',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으로 최씨를 고소한 상황이다.

 

◆Revenge Porn

 

 이 곳에서 감히 둘 사이의 오간 발언들과 책임의 경중을 함부로 저울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개인적인 성관계 영상을 들먹이며 상대를 협박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일은 다른 행위에 비하여 그 의도가 확연히 저열하며 무례하다는 점이다. 이번 사례처럼 리벤지 포르노로 힘들어하는 것은 연예인뿐만 아니라 일반인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이 등장하는 리벤지 포르노를 발견한 피해자의 인생은 일시 정지 상태에 봉착한다. 피해자를 구제하는 절차의 번거로움과 결과의 불확실성, 재정의 부담은 피해자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기에 충분하다. 특히 사건의 접수를 위해서는 자신의 성기가 찍힌 사진이나 영상을 직접 발췌하여 증거로 제출하는 수치스런 과정의 고통이 수반된다. 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지인이 영상을 봤을 수도 있다는 불안함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동반하여 일상생활을 불가능 상태에 빠뜨린다.

 

 리벤지 포르노revenge porn를 직역하면 복수를 위한 성관계 영상이다. 그러나 Revenge라는 단어와 Porn이라는 단어가 과연 적절한 단어 선택일지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복수revenge는 원통한 자가 부당한 피해를 입힌 자에게 보복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첫 번째 문제점이 발생하는데, 피해자가 마치 원인을 제공하여 영상이 유포됐다는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이다. 어떤 헤어짐이었는지를 막론하고, 사적인 영상이 인터넷을 통하여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사회적 자아의 죽음, 혹은 디지털 장례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정도가 지나치다. 두 번째 문제는 포르노porn의 문제인데, 위 단어의 사용으로 불법 촬영물 일명 '몰카'가 합법적으로 찍은 영상물이라는 느낌을 풍긴다는 점이다. 이를 포르노라고 명명하는 순간부터 여성은 피해자에서 여배우로 추락한다. 위의 문제를 고려할 때 리벤지 포르노 용어의 대안을 찾아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것 또한 피해자의 재활을 위하여 선행되어야 할 일 중의 하나이다.

 

◆디지털 장례식

 

 피해자 여성 혼자의 힘만으로는 미친 속도로 유포되는 영상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를 위해서 현재 인터넷에서는 인터넷 장의사라는 직업이 유망하게 떠오르고 있다. 누군가의 슬픔이 돈이 되며 유망한 직업으로 떠오르는 애석한 상황이다. 그러나 개인이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일을 책임지고 대행해준다는 점에서, 피해자는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천문학적 비용을 무릅쓰며 리벤지 포르노 삭제를 의뢰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죽어도 정보는 남는다. 사자의 생전 모습이 인터넷 속 고스란히 남아있다. 인터넷 장의사는 본래 연예인들에게 달린 악성댓글 삭제 의뢰를 받거나, 죽은 자들의 인터넷 정보를 처리하여 디지털 장례식을 도맡는 사람을 지칭하였다. 그러나 나아가 그들은 리벤지 포르노를 삭제하여 피해자의 재활을 돕는 방향으로 직업의 성격이 확장되었다. 그들에게 쏟아지는 개인 성행위 영상 삭제 요구가 무려 2012년 958건, 2013년 1,166건, 2014년 1,404건, 2015년 3,636건, 2016년 7,325건에 육박한다. 인터넷 장의사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죽은 사람의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 아닌, 리벤지 포르노를 삭제하는데 열을 올리는 상황이다. 죽은 자의 정보 처리와 리벤지 포르노의 삭제 사이에는 연관이 없지 않다. 다만 실제 죽음과 사회적 자아의 죽음이라는 차이가 존재할 따름이다. 한 번씩 죽었다는 공통점이 그들의 발길을 장의사에게 돌리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디지털 장의사에게 의뢰한 영상은 영구적으로 삭제될까? 단 한 명이라도 그 영상을 다운 받아 개인 소장하게 된다면 영구적인 삭제는 불가능하다. 즉, 피해자가 아무리 천문학적 비용을 지급하더라도 그녀의 얼굴이 고스란히 등장하는 영상은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비용 또한 한 달에 평균 200만원을 지급해야하며, 삭제 기간 이후의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한 달에 약 10만원의 지속적 비용이 부과된다. 피해자가 주로 20-30대 여성인 점을 고려하자면 비용적 측면의 부담이 상당하다. 문재인 정부는 불법 촬영물 이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포괄적인 사이버 성범죄 근절에 박차를 가하고는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러나 피해자가 디지털 장의사에게 지불하는 비용은 여전히 피해자 스스로의 몫으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폭적 비용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반영구적으로 남는 영상을 지우기 위해 드는 몇 천 만원의 금액은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천문학적 액수다. 이 값을 벌기 위해 버리는 돈과 시간, 슬픔과 무기력을 고려할 때, 피해자는 그야말로 디지털 감옥에 갇힌 것이다.

 

 언제나 피해자가 죽고 가해자는 떳떳하게 살아간다. 죗값도 피해자가, 감금도 피해자가, 사회적 매장도 피해자의 몫이다. 가해자는 보란 듯이 미수나 만취, 인과 불분명이나 부작위 혹은 초범이라는 사유로 유유히 빠져나간다. 리벤지 포르노의 유포와 시청. 이는 피해자를 결국 디지털 장례식으로, 아니 어쩌면 실제 장례식으로 그녀를 인도한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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