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관계 속을 표류하는 개인에게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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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9월07일 21시03분
  • 최종수정 2018년09월09일 0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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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우리 안에 살아간다.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 인간의 삶은 '관계'로 가득하다. 가족, 친구, 애인 등 인간적인 관계부터 단순하게 생태의 한 역할로써 맺는 비인간적인 관계까지 그 범위는 넓다. 관계의 바탕은 함께 향유 하는 시공간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최근 발달하는 디지털 세상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의 시공간 위에 존재하게 만들었다. 모두와 모두가 관계를 맺는 세상이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연결한다. 손바닥 위의 LED 속 작은 세상의 연결은 우리를 새로운 관계 속으로 이끌었다. 새로운 관계 속에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정의의 개인이 관찰되기 시작했다.

 

  어떤 시대보다 강력한 '개인'이 등장했다. 1인 미디어,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같은 새로운 직업 역시 같은 흐름이다. 지금까지 관계는 일대일이었다. 개인과 개인, 또는 단체와 단체의 관계가 세상을 이뤘다.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개인과 전 세계가 마주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일대다'의 관계를 수평적으로 맺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자연스레 몇몇 개인은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일례로 몇 십만 명의 팔로우가 있는 유튜브 크레이어터는 많은 미디어 노출보다 강력하다. 

  또한 어떤 시대보다 '개인'의 가치가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다. 과거는 나라, 회사 등의 단체가 개인보다 가치 있게 다뤄지던 시대였다. 단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범위는 개인이 가능한 범주를 넘었기에, 많은 개인의 가치는 무시되기 십상이었다. 이제는 새로운 국면이다. 단체를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하는 개인은 찾아보기 힘들고, 장려되지도 않는다.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에 많은 이들에게 온전한 나 자체를 드러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개인은 해방됐다. 

 

  한편으로는 이런 해방에서 나오는 부작용도 존재한다. 개인이 세상과 마주 할 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이런 관계에 대해 피로를 느끼는 사람도 다수 있다. 영국에서는 피처폰 시장이 작년보다 두 배 커졌다. 피처폰은 스마트폰과 다르게 인터넷이나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하지 못한다. 전화나 문자 정도만 가능하다. 더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피처폰 시장은 수험생과 노년층이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영국은 2030세대가 이끌고 있다는 점이다. 과도하게 연결된 디지털 세상에 대한 피로가 사회 현상으로까지 번졌다. 하지만 영국의 젊은 세대는 피처폰이 아닌 다른 수단 – 탭북, 노트북, 또는 스마트폰 등 –을 통해 여전히 디지털 세상을 향하는 문을 유지한다. 당연하다. 관계에 대해 부담과 피로를 느끼더라도 우리는 그 관계를 완전히 포기 할 수 없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관계의 굴레에 빠지는 우리이기에 당연하다. 

  어떤 시절보다 개인을 드러낼 수 있지만, 개인이 홀로 살아가기도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단순히 사람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어떤 누구도 의식주를 개인이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는 라면 끓이는 법을 알지만, 라면을 만들지 못한다. 원시의 시대에서 멀어지며, 근대를 향할수록 개인이 하는 일은 좁아지고 고도화됐다. 기술이 발전하며 개인이 전면에 나설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어떤 시대보다 개인의 삶은 의존적인 관계 속에 존재한다. 개인은 의존하게 됐다. 

 

  스마트폰이 가져온, 디지털 세상이 일으킨 개인의 변화는 극단적이다. 혁신적인 기술은 개인에게 ‘개방’과 ‘의존’이라는 얼핏 보면 양립이 되지 않는 특성을 드러내게 했다. 하지만 모두가 연결된 사회에서는 개방과 의존은 양립이 된다. 그리고 되고 있다.

  큰 기술 변화는 항상 문화도 변화시킨다. 과거의 증기기관의 산업혁명은 자본주의를 이끌었고, 현재의 문화를 만들었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현대 역시 새로운 문화가 형성되려 하고 있다. 짧은 글에서 디지털 세상의 개인이나 문화에 대해 단정적인 결론은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다시 정의되고 있는 개인에 대해 다시 돌아볼 시간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살고 있다. 이 '우리'가 개인을 가둬놓고 사는 우리(cage)인지, 개인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조화롭게 존재하는 우리(we)인지 선택 할 시간이 오고 있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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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9월07일 21시03분
  • 최종수정 2018년09월09일 09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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