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옥탑방 박원순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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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8월17일 17시55분
  • 최종수정 2018년08월17일 1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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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한 달 살기를 보는 엇갈린 시선

 

지난 7월 22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9평 옥탑방에 입주했다. 8월 17일까지 약 한 달 동안 옥탑방에서 생활한다. 박 시장은 지난 6·13 지방선거 유세 기간에 삼양동에 들렀을 때 “이 동네에 와서 한 달 살겠다”고 약속했다. 삼양동은 서울에서도 못 사는 동네다. 강남과 강북의 격차를 줄일 방안을 찾겠다는 박 시장이 강북 대표로 삼양동을 고른 것이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 진행되고 있는 2018년 여름, 에어컨도 없는 옥탑방에서 지내며 공약 이행을 하는 박 시장의 행보를 나쁘게 볼 이유는 없는 듯하다. 하지만 입주 첫 날부터 한 달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갑론을박이 있다. “겨우 한 달 가지고 뭘 알겠느냐 전형적인 쇼다”라는 게 비판 의견이고, “안 하는 것보다 낫다.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게 박 시장 옹호이자 방어 논리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은 즉각 박원순 시장을 비판했다. 박 시장 측에서도 비판 목소리를 야권발로만 여기는 듯하다. 얼마 전 시사 라디오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비판적 시선이 있는 걸 아느냐는 질문에 박 시장은 “늘 비판하는 분들이 계시니까. 그분들의 직업이니까”라고 답했고, 직업적 비판이 아닌 일반 시민의 반응이라고 다시 물으니 “그럼 한 달 살아보라고 하시죠. 그분이.”라고 일축했다. 

 

일반 시민들이 내는 비판 목소리는 생각보다 크다. 실제로 내 주변 사람들은 뉴스를 듣자마자 “대체 왜? 뭘 위해서?”가 첫 반응이었고, 이어진 반응은 “같이 옥탑방에 살아야 하는 아내 분과 수행원들은 무슨 죄냐”는 것이었다. 박 시장 소속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에 호의적인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선풍기 선물, 여야 의원들과 한 ‘수박 토크’ 등 박 시장의 옥탑방 생활은 직·간접적으로 미디어에 계속 노출됐다. 그러나 비판 목소리는 여전하다. 박 시장은 본인 의지대로 끝까지 옥탑방 한 달 살기를 했다. 하지만 그간의 비판과 그 이유를 간과해선 안 된다. 옥탑방 살이를 마무리하는 지금, “(옥탑방 살이를 바탕으로 한) 획기적인 정책 발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그렇지 않으면 소모적인 논쟁이 반복될 것이기 때문이다. 박 시장은 벌써 “겨울철 혹한기에는 금천구 옥탑방에서 살아볼까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이 시장을 찾는 그림은 이제 익숙하다. 문제는 행위 자체가 형식적이고 그 의도가 노골적이라는 점이다. ‘서민 코스프레’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연기라도 잘하면 좋으련만 실수를 했을 땐 정치인과 서민의 메울 수 없는 갭만 실감하게 한다. 정몽준 전 의원의 “버스비 70원” 발언은 아직까지 꼬리표가 따라다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시장에서 ‘마지못해’ 호떡과 어묵을 먹는 사진은 인터넷에서 웃음거리였다. 지난 미국 대통령 선거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힐러리 민주당 경선 후보자는 뉴욕 유세 때 지하철을 제대로 타지 못하고 5번이나 카드를 긁는 등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힐러리보다 더 ‘서민 대변자’를 자처했던 버니 샌더스는 지하철을 ‘토큰’으로 탄다고 해 비난 받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살이도 ‘서민 코스프레’ 연장선상에 있다. 일회성 시장 방문과 달리 한 달이라는 기간이 진정성을 보장해 줄까? 그렇다면 ‘진정성 기간’은 누가 정하나. 열흘이면 가짜고 한 달이면 진짜가 되는 걸까. 박 시장이 한 달 간 옥탑방에서 생활한다는 ‘사실’을 의심하는 게 아니다. 박 시장은 분명 옥탑방에서 한 달을 살았다. 박 시장이 감내해야 했던 옥탑방 더위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달이 서민들의 생활을 알기에 충분한 기간이냐 아니냐의 논란을 차치하고도, 비판할 조건은 많다. 

 

비판하고자 하는 진정성의 차원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한 달이라는 명시적 기간이 끝나면 박 시장은 본인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갈 걸 알고 버티는 것과 언제 끝날 줄 모르는 가난 속에서 평생을 사는 건 근본적으로 다르다. 기간이 얼마든 ‘가난 체험’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박 시장의 옥탑방 월세 200만원은 시 예산으로 처리됐다. 단기 임대를 구하기 힘들어 시세보다 비싼 값을 내야 했다고 한다. 일반 서민들은 월세나 은행 대출이자로 매달 소득의 30%를 주거비로 지출한다는 사실을, 박 시장은 알까. 또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에는 수행비서와 보좌진들의 공간이 있다. 박 시장은 비서관이 사다 준 샌드위치와 우유로 아침을 해결하기도 했다. 옆에서 보살펴 주는 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몸으로 느끼겠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린다.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 한 달 살기를 향한 비판이 갖는 시사점은 분명하다. 비단 박 시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제는 ‘정치인들의 서민 코스프레’가 국민들에게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해도 진정성에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가난을 ‘체험’해봐야지만 안다는 자체가 이미 서민들한텐 박탈감을 안긴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는데, 결여된 진정성에서 비롯된 실효성 있는 정책이란 어불성설이다. 박 시장의 삼양동 살이로 삼양동이 정말 좋아진다면, 박 시장은 삼양동뿐 아니라 임기 내내 서울 전역을 돌면서 한 달 씩 살아야 할 테다. 시장이 살아봐야지만 비로소 바뀐다면, 절망적이다. 인구 천 만을 돌보는 시장의 역할은 그런 것이 아니다.

 

박원순 시장은 최초의 3선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장을 하는 동안 몇 년의 시간이 있었을 텐데 이제 와서 서민 살이를 해보겠다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삼양동 상인 분의 일침에 공감한다. 뭘 해도 일단은 우호적으로 지켜봐줄 수 있는 임기 초의 초선 지자체장도 아니고, 3선 서울시장이 내놓은 것 치고는 정책적 상상력이 빈약하다. 시스템적으로 좀 더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설계된 정책을 보고 싶은 것이다.

 

도둑맞은 가난

 

‘언어 도둑질’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표현에 내재된 맥락을 무시하고, 표현의 사전적 의미만 차용해 원래 표현의 의미를 흐리는 걸 뜻한다. 예를 들어, 성 소수자들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하는 걸 두고 ‘커밍아웃’이라고 하는데 최근엔 ‘덕후’라고 밝히는 것을 덕후와 커밍아웃을 합쳐 ‘덕밍아웃’이라고 한다. 커밍아웃의 뜻이 단순히 “감췄던 걸 밝히는 행위”라고 오인하게 만듦으로써 성 소수자들이 커밍아웃하는 행위를 가볍게 생각하게 만든다. 당사자들만 쓸 수 있는 언어를 훔치는 것이다. 가난도 마찬가지다. 가난 속에 살아가는 당사자만이 겪을 수 있는 삶의 무게를, 박원순 시장이 ‘가난 체험’을 함으로써 가난에 대해 이해했다고 말하는 점을 우려한다. 기실 체험조차 진정으로 할 수 없음에도 “내가 해봤더니”라고 말 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는 것이다. 옥탑방을 가난의 상징적 공간으로 삼고 낭만화 하는 건 ‘쇼’가 맞다.

 

소설가 박완서는 『도둑맞은 가난』에서 이렇게 썼다. 

 

“부자들이 가난을 탐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 빛나는 학력, 경력만 갖고는 성에 안 차 가난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다채로운 삶을 한층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  

 

정치적 프레임을 씌울 것도 없이, 그저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서도 박원순 시장의 옥탑방 살이는 실눈 뜨고 보게 된다. 한 네티즌은 94년을 넘어선 역대급 폭염이 박 시장의 옥탑방 생활에 진정성을 더했다고 농담했다. 폭염이 박 시장을 살렸다고 말이다. 그러나 더위를 견디는 것만이 옥탑방 체험의 전부는 아니므로 여전히 뼈 있는 농담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풍기 보내준 것을 두고, 무려 대통령이 선풍기를 보내주는 옥탑방 서민은 박 시장밖에 없을 것이므로 이미 그 지점에서 ‘서민 되기’는 틀렸다고 한 이도 있었다. 맞는 말이다. 이런 농담들조차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될 것이다. 진정성도, 실효성에도 구멍이 있는데 논란만 불러일으키는 옥탑방 살이는 정책 가성비 면에서 낙제점이다. ‘선의’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비판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진짜 답이 없다.

 

유통기한 있는 체험을 하지 않더라도 국민 삶과 괴리되지 않는 생활을 하는 정치인을 원한다. 일만 잘 한다면 에어컨 바람 밑에만 앉아 있어도 좋고 지하철 대신 관용차만 타고 다녀도 좋다. 제발, 쾌적한 공간에서 컨디션 조절까지 업무의 일환으로 여기고 일 잘하는 시장님을 원한다. 이번 겨울, 박원순 시장님을 또다시 옥탑방에서 뵙고 싶지 않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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