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그 이름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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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6월22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8년06월22일 17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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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성취도 대물림 된다

 

한 대학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아이들은 우선 과제 하나를 수행한다. 까다롭지만 여러 번 시도하다보면 끝내 성공할 수 있는 수준의 과제다. 과제 자체는 간단하지만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도전-시도-실패 혹은 성공의 경험을 한다. 진짜 실험은 지금부터다. 같은 원리의 과제를 다시 한 번 수행하는데, 이번에는 아이들이 난이도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몇몇의 아이들은 가장 쉬운 난이도를 택한다. 그런데 몇 명은 망설임 없이 최고난도를 고른다. “왜 어려운 거 하고 싶어?” “어려운 거 하면 성취감이 크잖아요.” “그래도 이거 한번 해볼래요.” 아이들의 선택을 가르는 기준은, ‘실패를 대하는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부모로부터 비롯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실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일수록 실패를 두려워해 도전을 꺼린다. 반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부모에게 영향 받은 아이들은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는다. 그러니 더 큰 도전을 망설이지 않는다. 

 

내 실패의 역사

 

내 실패의 역사를 되짚어 봤다. 오로지 대학만을 바라보며 성장기를 거치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과 실패는 성적과 관련될 확률이 크다. 나 역시 지금껏 내 인생 첫 실패는 ‘대입 재수’라고 생각했다. 자타공인 전교에서 손꼽히는 노력파였기에 첫 수능 실패의 아픔은 날카로웠다. 따져보면, 한 해 대입 수험생은 59만 그 중 재수생은 약 7만5천 명이다. 7만5천 명 씩이나 갖고 있는 실패담이라면 실패라고 징징대기에도 멋쩍은 경험이지만 개개인에겐 절절히 남는 법이다. 뒤이어 나는 사랑에도 실패했다. 여자애가 조신하지 못하게(?) 먼저 고백하길 세 번, 세 번 다 차이고 나서야 연애를 시작했는데 그 연애마저 끝이 났다. 청춘 이름 값 톡톡히 하는 실패였다. 현재 진행 중인 실패는 취업이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네 번째 고시’라 불리는 언론사 입사 시험을 준비했다. 매번 언제 시험 봤는지, 어느 단계까지 갔는지 꼼꼼히 기록했는데 탈락 횟수가 50번을 넘어가자 그마저도 그만 두고 말았다. 

 

실패, 자존감 그리고 회복력    

 

실패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겪을 때마다 힘들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함께 밀려온다. 합격/불합격은 표면적인 결과일 뿐 실패가 아픈 진짜 이유는 자존감이 무너져서다. 실패를 거듭하다보면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인지, 자신이 없어진다. 그래서 실패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자존감과 관련 있다. 자존감 회복이 곧 실패 극복이다. 내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임을 인정한다. 대입 재수가 첫 실패라 했지만 그건 공식적인 대답이고, 실은 처음부터 성과에 엄격한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그래서 실패를 이겨내는 힘을 혼자 길러야 했다. 막상 터득하고 보니 단순했다. 일상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 것이다. 최종 불합격한 다음 날에도, 실연당한 다음 날에도 나는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신문을 읽고 영양제와 과일까지 챙겨 먹었다. 일상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진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스스로를 돌보는 하루치 자존감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생을 지속하게 했다. 일상을 유지하는 힘이 회복력이나 다름없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핵심 키워드는 ‘실패’

 

개인마다 나름의 실패 극복 노하우를 가지면 좋지만, 우리 사회가 실패를 바라보는 관점이 더 중요하다. 특히 경쟁이 일상화된 한국 사회에선 더욱 그렇다. 혁신적 창업가로 꼽히는 빌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페이스북 설립자 마크 주커버그는 모두 대학 중퇴자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용케 대학은 졸업했지만 전 세계가 알아주는 괴짜다. 이들이 만약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고졸 출신과 아웃사이더라는 한계 때문에 ‘치킨집 창업’에 그쳤을 거라는 자조 섞인 풍자가 있었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고 성공에 이르는 길도 획일화 돼 있다는 뜻이다. 최근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한다며 초등학교에도 코딩 교육(컴퓨터 프로그래밍) 열풍이 불고 있다. 그러나 이는 본질을 놓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은 별 관련 없어 보이는 분야를 연결 지어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이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을 바꾸는 데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상상력과 추진력은 결국 실패를 감수하는 도전에서 나온다.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코딩 교육을 하기보다, 긴 세월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처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일침을 읽었다. 실패, 슬픔, 분노, 상실 등을 맞닥뜨렸을 때 어떻게 다시 딛고 일어서야 하는지 말이다. 내가 일상을 지속하며 자존감을 충전했듯, 사회가 실패 이후에 삶이 단절되지 않도록 독려해야 한다. 한 번의 실패는 추락의 예고편일수 있지만,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되기도 한다. 모든 건 실패 이후의 태도가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실패는 “내 인생을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인 셈이다. 

 

탄력적인 자아존중감을 가진 아이들이 기꺼이 실패를 감수하며 도전하고 성장의 계기를 만든다. 한국 사회는 우리 아이들을 실패를 두려워하도록 길러낼 것인가, 실패를 이기는 힘을 길러줄 것인가. “그때 실패해보길 참 잘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과연 지속 가능하고 회복력 충만한 사회라 할 수 있겠다. 성장이나 혁명은 그 후에 따라올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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