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신뢰 하나 얻기 위해 학종이 천 개를 접은 사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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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4월27일 17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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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미국의 아마존을 통해 몇 가지 책들을 주문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분명히 ‘배달 완료’가 되었음에도, 소포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다급한 마음에 고객센터에 직접 문의를 했다. 택배 차가 강도들에게 도둑을 맞았다든지 영화 같은 일에 휘말렸다든지 무엇인가 엄청난 사연이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담당 직원은 별다른 것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같은 제품들을 바로 재 배송해주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택배 상자는 사실 집 근처 다른 곳에 잘못 배송이 되어있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아마존의 발 빠른 서비스 덕분에 회사에 대한 개인적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아마존의 이런 서비스 대응 방식에 대해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제도를 악용해 물건을 몰래 빼돌리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회사가 얻는 신뢰보다 택배 박스들로 잃는 경제적 손실이 더 클 수도 있지 않을까.

 

 신뢰란 믿음에 따라 타인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예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아마존은 고객의 만족도와 믿음이 곧 구매력과 기대비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본 것이다. 최근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 스타벅스 지점에서, 매장을 이용하던 한 흑인 고객을 과잉 진압 했다. 때문에 스타벅스가 쌓아온 오랜 브랜드 가치가 크게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실추된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전 매장의 업무를 중단시키고 직원 재교육을 하는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한 기업이 택배 박스 하나로 고객의 신뢰를 얻어가기도 하는 반면, 신뢰를 저버리며 심각한 사회적 물의까지 빚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 살아가는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빵 하나를 더 준다고 해서 미움 받을 이유가 없다. 그렇게 해서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누군들 마다할까. 예전에 한 죽마고우가 내게 고민을 상담했다. 슬프게도, 오랫동안 사랑했던 사람의 신뢰를 잃어 헤어진 것이다. 친구는 손으로 꾸깃꾸깃 쓴 편지, 천 마리의 종이학, 그리고 그녀가 좋아했던 선물들을 바치는 온갖 노력을 했다. 그러나 결국 한 번 마음이 떠나간 그녀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사람 마음잡기가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그는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신뢰 회복을 위해서 우리는 어마어마한 대가를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 범위와 대상이 확장될수록 회복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 한 명으로부터의 작은 신뢰가 사회 구성원 다수의 큰 지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신뢰가 주는 가치에 더 주목해야 한다. 신뢰는 사회를 원활하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는 사람들 간의 결속력이 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는 교육, 의료, 복지, 경제, 국방 모든 것들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없다. 

 

 가까운 미래, 한국이 민생을 위한 복지 정책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해보자. 정책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바로 사회 대다수의 높은 신뢰이다. 그들의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매끄러운 정책 추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책이 추진된다고 해도, 어쩌면 이에 무임승차하여 이익을 가로채려는 음지가 존재 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법적인 규제가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사회 대다수가 도덕적으로 열심히 일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인식이 사회 전반적으로 조성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리고 국가의 투명한 예산 관리와 정책의 일관성도 반드시 함께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깨끗하고 올바르게 쓰여 시민들을 위한 혜택과 미래로 보답 받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신뢰의 원천일 것이다. 결국 사회의 결속과 신뢰는 국가의 경쟁력과 가장 가깝게 맞닿아있는 셈이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인 프렌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신뢰가 있어야 사회의 발전이 지속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과연 얼마만큼 왔을까? 우리나라는 아직도 갈 길이 많아 보인다. 대한민국은 정책과 타인에 대한 신뢰 등을 의미하는 사회자본 수준에서 세계 최 하위권을 기록했다. 정부에 대한 신뢰는 OECD 국가 32개국 중 31위로 꼴찌수준이었다. 나라의 ‘신뢰 곳간’은 지금 어디선가도 줄줄 새고 있다. 참된 실천보다 세속의 이익을 먼저 추구하려는 종교인들, 대기업의 기업 윤리 망각과 노사 간의 첨예한 대립, 누구보다 청렴해야 할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 국가 정책에 대한 국민의 뿌리 깊은 불신, 세대 간의 반목과 신뢰 부족. 셀 수 없이 많은 갈등이 곳곳에 존재하며, 사회 전반적으로 불신의 풍조가 널리 퍼져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큰 영향력과 지위를 가진 사회 지도층이 먼저 올바른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발 벗고 나서 국민들에게 양심을 보여주어야, 사회 전반적인 신뢰의 뿌리를 심을 수 있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들의 신뢰는 국가와 기업의 발전 동력과도 같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역시 사회를 신뢰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여담이지만 내 친구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보겠다. 이미 떠나간 사람의 마음은 다시 잡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나 참 다행스러운 일이 일어났다. 천고만고의 노력 끝에 그는 간신히 그녀에게 진심을 말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순정만화에서나 볼 법한 이야기지만, 그녀가 학종이 천 개를 보고 크게 감동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었냐고? 글쎄, 그것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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