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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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박물관 산책, 어떠세요? (下)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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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3월09일 17시12분
  • 최종수정 2018년03월09일 1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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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한글박물관 <겨울 문학 여행> 


제23회 평창올림픽은 한국에서 열리는 첫 번째 동계올림픽이다. 국립한글박물관은 1924년 프랑스 샤모니 올림픽을 시작으로 2022년 중국 베이징올림픽에 이르기까지, 역대 동계올림픽 개최국과 예정국의 대표적인 겨울 문학 454점을 소개한다. 

 

 <1부>에서는 유럽을 시작으로 북미를 거쳐 동아시아까지의 대표적인 겨울 시와 소설을 훑을 수 있다. <2부>에서는 겨울 동화와 동요를 만날 수 있다.

 

겨울왕국으로의 입장

 

<겨울 문학 여행展>은 텍스트를 전시 소재로 하는데도, 전시관은 굉장히 입체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 곳곳에 앉아 시와 소설을 읽을 수 있는데, 색다른 전시 포인트가 된다. 또한 눈꽃 장식과 겨울 영상 덕분에 전시관에 입구에서부터 ‘겨울왕국’으로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겨울 시나 소설의 구절구절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금세 감상에 빠져든다. 감상 중에 아는 문학 작품이 나오는 것만큼 반가운 일도 없다.

 

겨울에 춥고 눈 내리기는 매한가지지만 지역마다 겨울의 풍경이 조금씩 다르다. 그래서 겨울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와 겨울의 상징성에도 차이가 있다. 알프스 산맥으로 이어진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의 겨울 풍경은 다채롭다. 자연스레 동계올림픽을 자주 개최하는 국가들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겨울날의 홍차와 마들렌, 겨울방, 겨울 정원 등 눈과 겨울에 대한 기억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소설 주인공 ‘나’는 어느 겨울날 어머니께서 주신 차에 적신 마들렌을 맛보면서 오래전 숙모 댁에서 먹었던 마들렌의 맛과 잊고 있던 기억들을 떠올린다.

 

“그런데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그러자,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이 맛, 그것은 콩브레시절… 내가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 고모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꽃을 달인 물에 담근 후 내게 주던 그 마들렌의 작은 조각의 맛이었다.”

 

20세기 최고의 소설이라 찬사 받지만 전체 분량이 3000페이지에 달하고 내용이 모호해 완독한 사람은 드물다는 소설. 그러나 이 구절만큼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하다. 가장 많이 인용된다는 ‘홍차와 마들렌’ 구절이다. 냄새와 기억을 연관 짓는 걸 두고 ‘프루스트 효과’라 명명할 정도다. 이 구절을 읽고 있노라면 겨울밤,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서 홍차와 마들렌을 먹고 싶어진다.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 만년설이 있는 북유럽에선 겨울 스릴러 문학이 유명하다. ‘하얀 눈’ ‘차디찬 얼음’ ‘어두운 밤’과 같은 이미지는 공포 소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스칸디나비아 추리작가협회에서는 매년 북유럽 최고의 추리소설을 선정하여 ‘유리열쇠상 The Glass Key Award’을 수여한다고 한다. 덴마크 작가 페테 회(Peter Høeg, 1957~)는 소설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을 썼다. 주인공 스밀라는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이나 ‘얼음’을 관찰하며 어린 소년의 죽음에 대한 실마리를 풀어간다.

 

 

일본 문학과 예술에서 ‘눈 쌓인 겨울 풍경’은 고전미 있는 소재다. 일본 고유의 짧은 시 ‘하이쿠’에 자주 등장한다. 눈이 쌓이는 모습, 눈이 녹아 사라지는 찰나의 순간이 섬세한 언어로 묘사된다. 한국 문학에서 겨울은 ‘고난’ ‘시련’ ‘인내’의 상징이다. 추운 겨울을 견딜 수 있는 것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백석(1912~1996)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는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겨울 시다. 

 

겨울 문학 여행 2부 

2부는 꿈과 희망이 넘치는 ​동화 속 겨울 세상을 소개한다. 주인공인 아이들은 고난을 지혜롭게 이겨내고 따뜻한 봄을 맞이한다. 겨울은 신비한 모험과 환상이 가득한 세계로 묘사된다.

 

동화 『눈의 여왕』의 한 대목을 소개한다. 


❝게르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눈물이 카이의 가슴에 떨어져 심장으로 스며들더니 얼음덩어리를 녹이고 거울 조각을 씻어 냈습니다.❞

 

어릴 때 읽은 줄거리가 생각날 듯 말 듯, 이렇게 다시 떠올리게 되니 무척 반갑다.

 

『피노키오』도 겨울 동화다. 제페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에게 새 책을 사주기 위해 추운 날씨에도 외투를 판다. 

  

❝잠시 후 할아버지는 아이를 위한 글공부 책을 손에 들고 돌아왔어요. 하지만 외투는 입고 있지 않았어요. 가난한 할아버지는 셔츠 차림이었고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어요.❞

 

봄이 오는 길목에서, 겨울 끝자락의 여운을 느낄 수 있는 <겨울 문학 여행>이었다. 

 

 

<봄날의 추천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한글박물관은 바로 옆에 붙어있다. 하지만 <동아시아의 호랑이 미술>과 <겨울 문학 여행> 모두 내용이 알차기 때문에, 하루에 둘 다 보기엔 집중력이 흐트러질 수 있다. 각기 다른 날 방문하여 하나하나 음미하는 걸 추천한다.

 

올림픽은 스포츠 기량을 겨루는 대회지만 국제 사회에 자국의 문화를 홍보할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선 우리도 잘 몰랐던 고구려 벽화 속 ‘인면조(人面鳥)’를 새롭게 알기도 했다. 경제력이나 국방력만큼이나 문화·예술·학문 등 ‘소프트 파워(soft power)’의 감성적 영향력이 중요해지는 시기다. 부지런히 우리 문화를 알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지금부터 박물관 발걸음을 시작하면 완연한 봄에는 더욱더 활기차게 전시회를 두루두루 다닐 수 있을테다. 겨울과 봄의 경계를 전시로 채워나가면 어떨까. 봄날로 다가가는 박물관 산책, 이 곳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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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8년03월09일 17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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