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미투야?” 미투 폭로 방식이 가져오는 위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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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3월09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8년03월09일 18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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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검색에 오르는 이름 석 자를 요즘은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지고 클릭하게 된다. 또 ‘미투(#MeToo)’의 가해자 혹은 피해자 일지 모른다는 우려다. 성폭력과 성추행을 고발하는 ‘미투(#Me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문화·예술계와 교육계, 정계 등으로 들불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이에 미투는 대중의 일상 속에서 하나의 자기검열제 같은 역할로써 작용하면서도 미투 운동의 의의나 목적성을 잘못 이해한 사람들로 인한 2차적 피해와 혐오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미투 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예전과는 다른, 낡은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운동이다. 새로운 것이기에 우리는 이를 조금 더 섬세하고 면밀히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운동의 메커니즘과 이가 다뤄지고 있는 방식까지 말이다. 미투 운동은 ‘폭로’의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여기서  폭로의 방식이 가지는 위험성에 대해, 그리고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첫째, 피해자들의 신상 공개로 미투의 ‘진실성’과 ‘진정성’을 검증하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미투는 피해자가 언론을 통해 피해 사실을 고발하는 형태를 취한다. 자신의 SNS 계정이나 댓글을 통한 고발도 있었지만 신상 공개를 하고 직접 나선 피해자의 고발만큼 힘을 얻지 못했다. 실제 배우 오달수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미투 글이 인터넷 상에 올라왔을 때는 ‘믿을 수 없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이후 배우 엄지영씨가 자신의 얼굴과 실명을 드러내고 추가 폭로를 하자 분위기는 달라졌다. 오 씨는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문을 발표했다.

실명을 밝히거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미투 운동에 있어 필수적인 전제 조건처럼 보인다. 피해자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때, 그 사람의 고발은 다른 숨겨진 저의를 가진 무엇으로 해석되고 변질된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 고발자를 다른 의도를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이른바 ‘꽃뱀’ 등으로 몰아가는 잘못된 사회 통념을 지적한다. 이러한 사회가 피해자들을 ‘실명 공개 미투’로 내몰고 있다고 분석한다. 

현재 Jtbc의 보도가 그러하다. 피해자와 스튜디오에 앉아 당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것들을 묻는다. 몇 몇 질문들은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이 결여된, 취조와 비슷한 것들이어서 보는 시청자의 마음을 섬뜩하게 했다. “그 당시에는 왜 고발할 생각을 하지 못하셨죠?”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한거죠?” 결국 질문 역시 남성 중심의 사고에서 피해자가 아닌 방관자 혹은 잠재적 가해자의 입장에서 이뤄졌다. 유독 성폭력 피해자들은 가해자를 음해하려는 의도나 금전을 취하려는 목적에 대해 의심 받는다. 성폭력 가해자를 비호하고 피해자는 비난해온 남성 중심적인 문화 때문이다. 

요즘 Jtbc의 모든 주요 뉴스의 꼭지가 ‘미투’에 집중돼 있는 사실 또한 다른 문제를 야기한다. 바로 단어가 가볍게 낭비되는 문제다. 하루에 수십 건의 ‘미투’ 기사가 올라온다. 몇 분 단위로 이곳저곳에서 피해자들의 고발을 다룬 기사들이 생산된다. Jtbc의 미투 보도는 미투의 중요성을 인지해 이것이 꼭 다뤄져야 한다는 신념 하의 보도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부분에 과도하게 편향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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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미투는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충격이 반복되고 계속되자 이는 익숙함으로 변해 충격이 주는 힘을 상실시켰다. 그러자 미투는 하나의 가십처럼 소비됨과 동시에 그 무거운 주제는 가벼워졌다. 성차별적인 발언이나 성희롱을 한 뒤 “아, 미투 할 건 아니지?”라고 말하는 택시 아저씨, “또 미투야?”라며 이제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직장 동기들, ‘미투’를 조롱하는 ‘미쓰리’라는 댓글들 까지. 이러한 반응은 아직 가야할 길이 많이 남은 미투 운동을 무력화 시키는 태도다. 성폭력을 범죄가 아닌 ‘가십’으로 소비하는 언론과 사회 분위기다.

‘미투’를 외치는 여성들의 폭로에 대해 진실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여성들이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겪어온 억압과 피해에 대해 공감하는 분위기가 우선돼야 한다. 그리고 모든 미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유명 인사를 향한 고발부터 일상생활에서 일반인들이 말하는 미투까지 동등하게 주목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슬로우뉴스를 바탕으로 차분한 내러티브를 형성해야 한다. 폭로 식의 미투 운동을 하나의 가십으로 재생산 하는 것은 미투 피해자들에 대한 2차적 가해이자 앞으로 있을 많은 미투 운동에 대한 억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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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8년03월09일 18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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