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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 악습의 고리 끊어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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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8년02월23일 18시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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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20대 신입 간호사가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간호사의 남자친구와 유족들은 간호사들 사이에서 ‘태움’이라고 불리는 가혹 행위로 괴로워하다가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사망 직전 쓰여진 스마트폰 메모에는 ‘업무 압박과 선배 눈초리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해졌다’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태움(burning)’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이다. 병원에서 선배 간호사들이 신입을 가르치거나 길들이는 일명 군기잡기 문화다. 생명을 다루는 일로 작은 실수가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후배를 엄격하게 가르친다는 의도지만, 인격 모독과 폭력이라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변질됐다. 

 

대한간호협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간호사는 설문참여자 7275명 중 2975명 40.9%에 달했다. 괴롭힘 유형으로는 고함과 폭언, 험담이나 악의적 소문, 굴욕 비웃음거리 순이었다. ‘태움’을 당한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볼펜과 차트로 머리를 맞은 간호사도 있고, “머리에 똥이 찼냐”, “개념이라는 게 있긴 하냐”등 인격 모독적인 말을 들은 사람도 있다. 

 

후배가 병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하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배가 가르쳐 주겠다는 문화가 간호사 사회 내 괴롭힘 문화 ‘태움’으로 변질된 이유 중 하나는 간호사라는 직업의 열악한 근무환경 때문이다. 신입 간호사는 보통 4~5년차의 선배 간호사에게 1대 1도제식 교육을 받는다. 이런 선배 간호사는 ‘프리셉터’라고 불리는데, 담당해서 봐야 할 환자 수가 많기 때문에 신입 간호사가 부담스럽게 다가올 수 있다. 한국의 간호 인력은 OECD국가에 비해 60%수준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병동에서 간호사 1명 당 환자 7명을 돌보게 되어 있고, 미국의 경우 병동에서 간호사 1명이 환자 4명을 담당한다. 이에 비해 한국은 간호사 1명 당 무려 19.5명이라는 환자를 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 간호사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를 기대하기 힘들다. 교육을 받지 못한 신입 간호사가 근무를 하게 되면 당연히 미숙한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3교대 24시간 근무로 이뤄지는 간호사 업무 특성 상 1명이 업무에 미숙하게 되면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업무가 가중이 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배 간호사들에게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결국에 신입 간호사가 그 화풀이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의 반복이 되는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간호사 인력의 확충을 통해, 신입 간호사와 선배 간호사 간의 업무 과중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줄일 필요가 있다. 또한, 선배가 신입 간호사를 봐줄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신입교육을 전담으로 하는 간호사를 배치해야 한다. 물론, 비인격적인 모독과 폭력을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묵인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일생을 의롭게 살며∙∙∙(중략)

나는 인간의 생명에 해로운 일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지 않겠습니다∙∙∙(생략)∙∙∙”

-나이팅게일 선서 중 일부-

 

간호사를 꿈꾸는 예비 간호사들은 2년간의 기초간호학 수업을 마치고 임상실습을 나가기 전, 나이팅게일 선서를 한다. 간호사로서의 윤리와 간호원칙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손에 촛불을 들고 선서식을 하게 되는데, 이때 촛불은 나이팅게일의 간호정신을 이어받겠다는 것을 상징한다. 주위를 밝혀주는 촛불처럼, 봉사와 희생하는 마음으로 남들에게 따뜻함을 주겠다는 것이다. 태움(burning)이라는 악습의 고리를 끊어내고, 따뜻하게(warming) 다른 간호사들과 환자를 배려하는 ‘나이팅게일 정신’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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