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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일제히 바뀌었다. 지난 20일, 호주오픈 32강전을 치른 정현(22·당시 세계 58위, 현재 29위) 선수가 세계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21·독일) 선수를 3시간 23분 혈투 끝에 세트 점수 3대2로 이긴 직후였다. 파란 테니스 코트 위에서 한 마리의 새처럼 날아다니는 정현 선수의 모습이, 카톡 프로필 곳곳을 장식했다. 정현 선수는 16강전에서 호주오픈 통산 6승에 빛나는 노박 조코비치(31·세계 14위·세르비아)마저 꺾었다. “이름부터 테니스를 잘 할 것 같은” 테니스 샌드그런(27·세계 97위·미국)도 눌렀다. 마침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7·세계 2위·스위스)와 한국인 최초로 4강전을 치르는 26일에는 아침부터 정현 선수를 응원하는 게시물들이 SNS에 넘쳤다. 식당에서도, 지하철에서도,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정현 선수 이야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정현 선수는 97년 외환위기 때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던 박세리, 박찬호에 비견된다. 하지만 그때 그들이 ‘국민 모두의 영웅’이었다면, 이번 정현 신드롬에는 유독 청년들이 열광한다. 여러 악조건을 딛고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우뚝 선 정현 선수에 감정이입한 청년들이 많기 때문이다.  

 

정현 선수는 7살 때 고도약시 판정을 받았다. “초록색을 많이 보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의사의 말에, 정현 선수 부모님은 초록색 테니스 코트를 떠올렸다. 신체적 결함이 정현 선수를 테니스 선수로 만든 계기가 된 셈이다. 테니스 불모지인 한국에서, 신체 조건상 동양인에게 불리한 테니스라는 종목 자체도 정현 선수가 처음부터 마주해야 할 벽이었다. 성실하게 실력을 쌓아가던 그였지만 2016년엔 슬럼프에 빠져 리우올림픽도 윔블던대회도 포기하고 몇 달 간 훈련에 매진해야 했다. 돌아온 정현 선수는 작년 11월, 21세 이하 선수들만 출전할 수 있는 ‘넥스트 제너레이션 ATP 투어파이널’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이번 호주오픈에서 스타 플레이어인 즈베레프, 조코비치에 주눅 들지 않고 ‘자기 플레이’를 했다. 페더러와 4강전 2세트에서 발바닥 부상으로 기권패 했지만, 빨간 속살이 드러난 정현 선수의 발 사진을 보고 그간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간의 취업난·경제난에 시달리는 청년들이 정현 선수의 메이저 4강 진출에 열광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정현 선수의 노력과 그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이뤄지는 시스템에 주목하는 것이다. 

 

정현 선수는 역경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했다. 노력을 바탕으로 한 ‘근거 있는 자신감’도 있었다. ‘아이스맨’이란 별명을 낳은 그의 강철 멘탈과 “무슨 세리머니를 할까 생각했다”(샌드그런과 8강전에서)는 위트 넘치는 인터뷰는 그의 노력이 원천이었다. 노력은 마땅히 인정받아야 할 가치임에도 최근 한국 사회에선 폄하되기 일쑤였다. 아무리 노력해도 성취는 멀게 느껴지는 현실 속에서, 노력은 돈 없고 빽 없는 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믿는 ‘최후의 보루’거나 꼼수 부릴 줄 모르는 자들이 하는 미련한 짓이었다.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하자, 얼마나 더 노력해야 하느냐며 ‘노오력’이라고 비꼬는 말들이 터져 나왔다. 정현 선수의 노력은 청년들에게 노력의 진정한 가치를 새삼 일깨웠다. 다시, 긍정적인 믿음으로 노력을 다짐하게 했다.

 

정현 선수의 역량은 ‘공정한 룰’을 기반으로 하는 스포츠 경기에서 빛을 발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역전 드라마가 스포츠에서 종종 나타나는 이유는 노력한 만큼 인정받는 구조여서다. 남자 단식 테니스계는 지난 14년 간 ‘빅4(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노박 조코비치, 앤디 머레이)’로 불리는 이들이 평정 중이다. 만약 테니스 경기 룰이 빅4 선수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다면, 정현 선수와 같은 스타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 청년들은 그동안 ‘불공정한 게임’에 시달려 왔다. 대학 입시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재력”에 의해 결정된다는 말에 반박하지 못할 만큼 수험생의 노력이나 실력보다 가정환경이 좌우했다. 취업 과정에서 연줄에 밀리거나 남녀 차별·학벌 차별을 겪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공정 경쟁에 목마른 청년들이, 이제는 스포츠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보고 열광하는 건 당연하다.

 

정현 신드롬은 가상화폐 열풍,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문제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정현 신드롬-가상화폐 열풍-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노력’과 ‘공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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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상화폐 투기는 최근 우리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다. 가상화폐 투자자 중 20대 학생, 30·40대 직장인이 절반을 넘는다. 이들이 가상화폐에 목매는 이유는 하나다. 성실하게 일해서 모은 돈으로는 서울에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들고, 계층 상승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가상화폐 투기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한탕주의’라고 마냥 비난할 수 없는 이유다. 노력주의에 대한 회의가 젊은 층으로 하여금 가상화폐 투기에 몰두하게 했다. 가상화폐 열풍과 정현 신드롬은 표면적으론 완전 반대 현상이지만, 두 현상을 촉발한 본질은 같다. 우리 시대 청년들이 노력을 통한 성취와 자기 효능감을 갈구하는 것이다. 결국 가상화폐 투기에 참여하는 청년들과 정현 선수에 열광하는 청년들이 같은 이들임을 알아야 한다.

 

평창올림픽에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눈에 띄게 부정적으로 반응했던 이들이 청년층이다. 청년층에게 ‘통일’이나 ‘평화올림픽’이라는 대의보다 중요한 게 있다. 바로 ‘공정’이다.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이 발표되자, 국민들이 가장 먼저 걱정한 것은 우리 여자 아이스하키 대표 팀에게 돌아갈 피해였다. 올림픽 하나만을 바라보고 땀 흘렸을 선수들 중 일부가 출전하지 못할까봐 우려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자동 출전 자격을 얻은 북한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낙하산’처럼 느껴진 것이다. 일상에서 숨 쉬 듯 불공정함을 겪어온 청년들이, 추상적인 남·북 평화보다 내가 잘 아는 상처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가상화폐 투기에 열광적인 청년, 평화의 가치를 모르고 남·북 단일팀 구성에 반대하는 청년. ‘우리 시대 일그러진 청년’의 모습은 노력에 배신당하고, 불공정 사회에 상처 받은 이들의 모습이다.  

 

정현 선수가 이번 호주 오픈에 치열하게 임하는 걸 지켜보면서 국민 모두가 행복했다. 긍정의 에너지를 얻고 개개인의 희망을 싹틔웠다. 부디 정현 선수의 도전 정신만을 뚝 떼어내 청년들에게 강조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도전 정신을 마음껏 펼칠 공정 경쟁의 장을 함께 만들어줘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현 선수가 최근 뉴스 인터뷰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다 같이 잘하자는 의미에서 위 온 파이어(We on F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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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02 15:47:54 최종수정 2018-02-02 16:0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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