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년특집] 잉여가 빛을 발휘하는 그 날까지 > 젊은이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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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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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입에 붙지 않는 2017년이 저물고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지금, 한 장 남은 달력을 바라보며 우리는 지난날들을 되돌아본다. 이룬 것들 혹을 잃은 것들, 온 사람 혹은 떠난 사람들을 곱씹으며 ‘보람찬’ 해를 보냈는지 스스로 평가한다. ‘보람찬’의 기준을 구체화 시킬 때 행복은 많은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성과와 실적만이 큰 지표로 작용한다.

 

 이러한 사고의 과정에서 ‘잉여’와 같은 단어가 스물스물 수면 위로 떠오른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달성하지 못한 채 허송세월 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나의 2017년은 잉여(인간)이었던 한 해 인가?”. 이 질문은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었나?”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바다에서 ‘잉여’ 찾기>

 ‘잉여’란 무엇인가? 잉여는 남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이윤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러나 필자가 다루고자 하는 잉여는 이러한 경제적 이득과는 무관하다. 

 

2017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잉여는 세상으로부터 남겨진 것들을 말한다. 세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수많은 잉여들을 만들어낸다. 어떤 존재들은 오랫동안 존재해 왔지만 바뀐 세상에 더 이상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잉여가 된다. 다른 존재들은 그 시대가 만들어지고 굴러가는 과정에서 부산물처럼 배출된다. 또 어떤 존재들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제도권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이탈하거나 혹은,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잉여가 된다. 이유가 어떠하든, 그 과정이 어떠했든, 모든 잉여들의 공통점은 그 시대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도무지 쓸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혹은 무엇이 잉여가 될까? 잉여가 되는 것들은 다수에 의해 설정된 기준에 못 미치거나 넘치거나, 때론 둘 다인 존재들이다. 가령 아이큐가 430이라는 정치인 허 씨는 현대의 뇌과학과 지성계가 받아들이기에는 넘치는 수치의 소유자이기에 잉여가 될 수 있다. 대중이 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우리가 감당할 가능한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인 것이다. 반면 자신의 신발 사이즈와 비슷한 토익 점수는 그것이 이 시대가 용납하지 못하는, 부족한 수치이기 때문에 잉여가 된다. 부유한 나라로 몰려드는 이민자들은 필요에 따라 환영받는 관용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하루아침에 내쫓기고 떠돌이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잉여를 처리할 방식과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권력의 가장 큰 존재이다. 이에 앞서 권력의 가장 큰 권한은 무엇을 잉여로 결정할지 판단하는 것이다. 

 

<불합격품, 폐기물, 쓰레기...>

 

룸펜 프롤레타리아트(Lumpen Proletariat)

1840년대 마르크스 이론가들이 설명하는 단어로 계급 탈락분자(déclassé)로도 정의된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노동자 계급에서 탈락된 극빈층으로 자신의 실업상황 속에서 고립되고 무기력해져 노동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생겨나며 권력을 행사하려는 정치가가 이들에게 돈이나 음식 등을 제공하고 반동적(反動的) 운동에 동원해 사회의 혼란 상태를 조성하기도 한다. 

2000년대 들어서 온라인상에서 관심을 끈 ‘잉여’라는 단어는 약 180년 이전에도 있었던 개념이다. ‘잉여’란 여분, 불필요함, 무용함을 의미한다. 잉여로 규정된다는 것은 버려져도 무방하기 때문에 버려짐과 다름없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잉여는 마치 환불해 주지 않는 빈 플라스틱 병이나 일회용 주사기,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아 아무도 사지 않는 상품, 조립 라인에서 품질 검사관이 버리는 바람에 한 번도 사용된 적 없는 기준 미달 제품이나 불량품과 같다고 명시한다. 이는 ‘불합격품’, ‘불량품’, ‘폐기물’, ‘찌꺼기’, 와 쓰레기, 이 개념들과 의미론상의 공간을 공유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실업자’와 ‘노동 예비군’의 목적지는 다시 노동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쓰레기의 목적지는 쓰레기장 쓰레기 더미이다.

 

<주체하는 잉여>

위의 모든 이야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잉여를 결정하고 처리하는 것이 기득권이고 권력이라는 점이다. 잉여는 쓸데없고 무의미하다고 규정되지만 이는 시대상에 따라 대중을 열광하게 하고 유행을 선도했던 주체이기도 하다. 

 

사회의 패배자(루저)가 발생한 때는 2차 대전이 끝나고 장기 호황을 누렸던 서구 자본주의이다. 로큰록, 펑크, 히피, 반권위주의, 아나키즘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들은 사회가 규정한 틀에 반(反)해 다른 사고를 했으며 이를 실천적으로 행동하였다. 이들에게는 자신의 패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고 이들이 수동성에는 역설적인 적극성이 있었다. 스스로를 인질삼아 기성세대와 세계에 대항하고자 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여전히 패배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 오늘의 패배자들에게는 예민한 감수성이 아니라, 일상적인 패배 속에서 무던해지고 무감각해진 감수성이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시대의 잉여는 풍요가 아니라 양극화로 대변되는 격차와 집중의 산물이고, 무너지고 있는 중간층의 잔해 속에서 태어났으며 이상이라는 것이 사라진 시대에 나타난 것이다. 잉여는 싸움에서 패배하고 도태된 자들이며 결코 자신의 의지로 전쟁터를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러니 잉여를 부정적인 프레임 안으로 가두려하지 말자. 

잉여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주류에서 벗어나려는 이들을 고립시켜버리고자 하는 기득권과 적폐의 산물이다.

 

오히려 잉여에게는 힘이 있다. 우리 시대의 잉여는 인터넷에서 전파되는 의미 없는 웃음 속에서, 쓸모없는 능력들과 목적 없는 소통들 속에서 확인되지 않은 에너지로 존재한다. 이 에너지의 미래는 예측불허하다. 스스로를 존립시킬 수 있을 때, 진실이 빛을 발하는 시대가 올 때 잉여의 힘은 더욱 커지며 긍정적으로 발휘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은 잉여다. 그리고 우리들은 가능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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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29 16:18:45 최종수정 2017-12-29 16: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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