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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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1월03일 17시22분
  • 최종수정 2017년11월03일 17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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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블라인드]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은 주로 명문대에 입학하는 학생들이 듣곤 했다. 대학 서열화가 심화된 한국에서 ‘학벌주의’는 너무도 뿌리 깊게 잡혀있다. 학벌이 등장한 배경부터 학벌로 인한 여러 현상까지 한국에서 ‘학벌’이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늘 등장하는 키워드이다. 현대에 접어들며 무한 경쟁의 시대가 되었다. 남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학벌주의의 본질인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2017년 6월 22일부터 문재인 정부에서는 ‘공공부문 블라인드 채용 의무화’를 제시했다. 이후 이에 따른 추진방안에 따라 7월부터 모든 공공기관에서 입사지원서에 어떤 ‘편견’이 개입할 수 있는 항목은 모두 삭제된다. 이에 따른 반발의 의견이 많이 있다.

 

[대학교가 취업 학원이 되어버린 지금]

 앞서 언급한 서열화에 대해 생각해보면 재수학원들이 떠오른다. 당장 글을 쓰고 있는 필자도 재수를 했다. 아직까지도 N수생들을 위한 교육 서비스는 호황이다. N수생들 사이에서도 더 좋은 학원에 가기위한 경쟁이 있다. 학원 측에서는 대학을 더 잘 갈수 있는 학생을 원하고, 학생들은 상위 학교에 더 잘 보내는 학원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XX지역의 XX학원, OO지역의 OO학원’처럼 학원의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학원은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스타강사들 중 일부는 실질적으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개념보다는 자극적이고 더 와 닿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풀이법에 치중하기도 한다. 강사의 출신대학이나 명성을 쫓아 학원을 온 학생들은 강의에 만족을 하지 않을지라도 수능을 마치기 전까지 학원을 다닌다. 유명한 재수학원에 있는 학생들은 서로의 수준에 대해서 어느 정도 파악하기 때문에 경쟁의식이나 동질감을 가지면서 ‘시너지 효과’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효과를 누리려는 생각도 그 시작은 더 서열이 높은 대학에 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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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역차별이다]

 ‘더 좋은 대학’에 가고 싶어서 1년 내지는 7년 이상을 수능에만 매달리는 수험생들도 존재한다.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입학을 하였던 노력을 무시하게 되는 방면도 분명 존재한다. 실제로 블라인드 채용이라 이야기하고, 학교 이름은 가려지지만 학점은 그대로 공개되고 있는 현실이 있다. 이미 대학 서열화를 통해 모여들은 우수한 인재들 사이에서 높은 학점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학점으로 평가하게 된다면 오히려 젊은 시절을 더 투자하여 고생한 사람들의 노력을 무시하게 되는 것 아닌가. 소위 말하는 ‘스펙’을 위한 경쟁에서 죽어라 노력해왔는데, 허탈한 마음을 선사하게 되는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심지어 지역할당제에 관한 부분도 말이 많다.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내 소재한 상위 학교 혹은 수도권으로 올라온 지방학생들의 경우는 지방 거점 대학교를 다니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는 면도 있다.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가령 자기소개서와 같은 항목은 대필도 가능하며, 인터넷으로 보는 인적성 평가의 경우 제 3자의 개입이 어렵지 않다. 자기소개서의 경우 대필에 끝나지 않고 추가적으로 해당하는 내용으로 면접까지 연습을 통해 ‘훈련’시켜주는 이른바 ‘취업 과외’는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실력으로만 승부하기’는 오히려 블라인드 이전보다 쉽지 않다. 보통 취업을 준비하는 준비생들은 단 한 곳만 바라보지 않는다. 채용하는 곳의 Needs에 맞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것은 무척 오랜 시일이 걸리는 데, 블라인드 채용의 경우 이 부분에서조차 불공정함을 가려내기 어렵다.

 

[무엇을 위한 블라인드인가]

 서열의 고착화가 심해지는 점이 학벌주의 폐해이다. 블라인드 채용을 요구하는 목소리 꾸준히 많았고, 블라인드 채용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제도는 아니다. 제도적인 변화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즉, 학벌주의와 능력주의를 구분할 제도가 필요하다. 능력주의가 물론 ‘옳다, 그르다‘의 판별하는 것의 주체는 아니지만, 현행 제도 내에서 능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점이 꼭 필요한 것은 맞다. 그러나 블라인드 채용이 정말 학벌주의를 가려낼 수 있는 제도인가? 재고가 필요하다.  

 

 또한 기존 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새로운 제도는 시행착오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전까지의 제도에 맞추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정당한 경쟁의 기회 역시 마련해야 한다. 적응할 수 있는 기간도 주어야 한다. 

 일례로 대학의 브랜드화를 분야별로 특화시킴으로서 간판에 대한 서열화를 무색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실력 있는 교수들이 사립대로 이동하게 하거나, 학부강의를 개방하여 많은 대학을 서울대로 만드는 것, 어느 상황이더라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의 학벌주의 종합 대책을 기반으로 하는 문재인 정부의 ‘한국형 네트워크 대학’을 만드는 것 또한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이 뒷받침될 때 진정 ‘개인의 노력이 대학 간판보다 중요한’ 시대, 따라서 능력이 출신대학보다 인정받는 시대가 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바꾸는 데에는 시간이 걸림을 분명하게 명심해야 한다. 직접 취업시장에 뛰어든 한 명의 취준생으로서 현행 블라인드 제도는 기존의 노력이 충분히 고려한 방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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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7년11월03일 17시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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