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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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사회와 그 적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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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27일 17시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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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면 ‘갈등 사회’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어제와는 다른 갈등이 생겨난다. 작게는 사람 사이 갈등에서부터 지역 간 갈등, 기업 간 갈등, 정당 간 그리고 국가 간 갈등까지. 매일 접하는 뉴스엔 우리 사회의 각종 갈등이 홍수를 이룬다. 오늘 아침자 종합일간지만 봐도 <親 노동정책을 둘러싼 당사자들의 각기 다른 입장>, <이전 정권을 겨냥한 적폐 수사 공방>, <다른 당과의 통합 문제를 두고 내부 갈등>을 겪는 정당 얘기가 실렸고, <반려견 교육 방식>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모두 현재 한국 사회에서 첨예하게 갈등 중인 사안들이다.
 
단순히 체감만으로 한국 사회를 갈등 사회라 명명한 것은 아니다. 삼성경제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OECD 국가 중 한국은 두 번째로 사회 갈등 지수가 높은 국가다. 최근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나 이탈리아보다도 높다. 반면 갈등 관리 지수는 끝에서 7번째를 기록했다. 갈등 지수가 높은 반면 갈등 관리는 잘 안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로 인해 우리나라는 매년 최소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국가 예산의 60%)까지 갈등 관련 사회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객관적 지표마저 우리 사회를 갈등 사회라 정의하고 있다.
 
갈등 양상이 말로 표출되다 사그라들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갈등이 범죄, 테러, 가짜뉴스 확산이나 국가 기능 마비로까지 이어지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갈등 없는 사회는 존재할 수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일이 아닌 것이다. 이제는 한국 사회의 중요 갈등을 직시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때다.
 
정치권은 대표적인 갈등의 장(場)이다.
요즘 정치권의 가장 큰 문제는 ‘협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2012년, 국회는 일명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국회의장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를 통한 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서였다. 거대 여당의 독주에 제동을 걸 수 있는 협치의 제도적 틀을 마련한 것이었다. 2016년 총선에서는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트를 쥔 원내 3당으로 떠오르며 협치를 할 수밖에 없는 다당제 구도가 만들어졌다. 작년 말, 현직 대통령 탄핵이라는 비극을 겪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첫 번째 대국민 메시지로 “통합과 개혁”을 내놓았다. 협치에 기대감을 가질 만 했다. 

그러나 최근 조선일보가 실시한 20대 국회 네트워크를 보면 원내 1·2당 모두 법안 발의에 같은 당 의원들만 참여하는 '유유상종'이 뚜렷한 것으로 나타났다. 적게는 30%에서 많게는 80%까지, 같은 당 의원들하고만 공동 법안을 발의해 의원 간 제한된 교류 양상을 보였다. 최근 몇 년 간 협치를 실현할 제도·문화적 환경이 마련됐지만 여전히 당 내부로만 파고드는 모양새다.
 
공공 갈등도 한국 사회를 분열시킨다.
신고리 원전 5·6호기를 둘러싼 갈등이 뜨거웠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에 공을 넘겼다. 공론조사는 찬반이 뚜렷한 사안에 대해 자료를 제공하고 토론을 한 후 투표를 하는 ‘숙의형 여론조사’다. 신고리 5·6호기는 사회 쟁점 사안에 공론조사를 도입한 첫 사례였다. 공론화위원회는 지난 20일, 59.5%대 40.4%로 건설 재개라는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공론화위 권고안이 나오자 즉각 후속 조치를 시행할 것을 약속했다. 공론조사가 사회 갈등을 해결할 모델이라며 찬사가 이어졌다. 하지만 공론조사 과정에서 제공된 자료의 진실성과 공정성 두고 잡음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원전은 전문적인 영역인데 일반 시민들이 결정하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사드 배치 문제, 특수학교 설립 등 한국 사회를 들썩이는 쟁점 사안들은 앞으로도 많을 테다. 공론조사에 부칠 수 있는 사안과 그렇지 않은 사안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건지. 아직 한국 사회엔 공공 갈등 해결에 관해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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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에 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를 갈등 사회라 규정하고 갈등을 부정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갈등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갈등은 ‘다양성’의 반증이기 때문이다. 특히 갈등 없는 정치권은 존재 가치가 없다. 정당들은 우리 사회의 각기 다른 이익을 대변하고 그 과정에서 때로 충돌한다. 정당들이 일치된 의견을 갖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전체주의’로 여기고 경계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며 “국론 분열”이라는 말이 종종 떠올랐다. 하지만 애초에 하나 된 ‘국론(國論)’은 존재하기 힘들다. 갈등이 민주주의의 증거인 셈이다. 다만, 정치 영역에서 갈등은 협치의 일부여야 한다. 협치로 가기 위한 과정임을 알 때 갈등 상황 속에서 합리적으로 토론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 국감 파행을 비롯한 최근 정치권의 갈등을 보면 내용과 타이밍 측면에서 소모적인 정쟁에 그치는 것처럼 보인다. 불필요한 갈등과 필요한 대립을 구분해야 한다.
 
갈등 관리를 위한 신뢰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앞으로 공론조사를 정착시키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갈등 해결 방식을 시도해 본 데에 의미가 있다. 갈등 사회는 ‘공론화위 상설화’라는 하나의 해결책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이를 계기로 갈등 해결 방식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해야 한다. 제반 분위기 조성이 먼저다. 이해관계가 다르더라도 서로 믿을 수 있는 정보를 공유해야한다. 감정싸움보다 소통을 우선시 하는 국민 감수성을 키워야 한다. 언론은 갈등을 부추기거나 중계에 그치는 보도, 단편적 발언 중심의 보도를 지양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절차적 문제다. 갈등 해결의 최종 규칙을 정하는 정부는 공정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의 결정이 정당성을 획득하고 사회 혼란을 최소화한다. 갈등은 사회 구성원에 대한 믿음, 언론의 아젠다 세팅, 정부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해결의 길로 나아간다.
 
우리 사회에서 갈등의 의미, 바람직한 갈등 해결 방식에 대한 관점이 제대로 서면 갈등 사회의 ‘적(敵)’들이 보일 것이다.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갈등을 다루는 우리 손에, 갈등의 운명이 달려있다. 지난 몇 십년간 한국 사회는 역동성을 동력으로 성장해 왔다. 치열하게 갈등하는 것에 더해 이성적으로 합의할 줄 아는 사회가 된다면, 다가올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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