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여배우로 살아남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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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10월13일 16시45분
  • 최종수정 2017년10월13일 17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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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문소리가 본인의 이야기를 담아 만든 저예산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는 13일 현재, 관객수 16,000명을 돌파하며 소소한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는 배우 문소리가 여성으로서 겪는 좌절과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8년 간의 커리어, 높은 인지도를 가진 문소리조차 그 성공과는 별개로 영화업계에서 여배우가 경험하는 소외와 고충을 털어놓을 공간이 필요했다. 

 

문소리가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 밝혔듯, “(영화를) ‘이런 주장을 해야겠어!’라는 태도로 만든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마음이 드는데 같이 느껴볼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면 다 이렇게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거죠? 여러분도 그래서 벅찰 때가 있죠? 이런 질문들이 섞여있다”고 말했다. 

여배우는 배우이기 이전에 ‘여성’으로 설명되는 경향이 강하다. 배우로서의 주체적인 역할보다 그들에게 부과된 엄마, 아내, 딸, 며느리로서의 역할이 우선시되며, 연기력보다 젊음과 외모를 기준으로 비난 받는다. ‘여배우는 오늘도’ 종횡무진 뛰어다니지만 유리천장을 뚫고 직업적 성취를 이뤄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여배우를 억압하는 사회적 시선

한 명의 사람을 설명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다. 성별, 출신 지역, 학교, 나이, 직업, 성적 지향, 커리어. 다양한 층위의 특징들을 통해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낼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약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타인에게 이해, 설명되는 과정에서 그 정체성이 그 외의 특징들을 압도하고, 포괄해버린다. 남성, 비장애인, 이성애자, 수도권 등 다수 혹은 ‘정상’이라고 여겨지는 특징들이 이미 초기값, 즉 표준이자 규범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이에 속하지 못한 비기득권층의 약자와 소수자들은 하나의 동등한 사람으로 설명되기 보다, 그들이 가지지 못한 특성을 바탕으로 타인에게 재구성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층위의 맥락은 삭제되고, 오로지 약자와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에 포획돼버린다. 여배우 또한 마찬가지이다. 직업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은 남성 배우와 동등한 위치에서 평가 받지 못한다. 여배우는 배우로 설명되기보다 이를 압도하는 여성의 정체성으로부터 구조적으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여전히 여성으로 설명되는 존재이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미약한 권력을 고려해볼 때 배우이기 이전에 여성인 여배우들의 직업활동은 수동적이고, 주변적인 위치에 머물 수 밖에 없다.

 

여배우는 직업에 필수적인 전문능력보다 외모와 젊음의 잣대로 가혹한 평가를 받는다. 영화 속 문소리는 등산을 하고,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는 평범한 일상에서 조차 마주치는 사람들로부터 ‘실물이 훨씬 예쁘시네요’라는 식의 습관적인 ‘얼평’을 당한다. 사람들은 문소리의 생각이나 감정보다 그녀의 외모, 혹은 허상에 가까운 커리어와 인지도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녀는 사라져가는 젊음 때문에 다른 여배우에게 역할을 뺏길 까봐 노심초사하고, 민낯을 가리고자 선글라스에 병적인 집착을 하고, 영화 출연을 위해서라면 제작자에게 불만 없이 애교를 부려야 한다. 여배우 자신조차 본인을 평가하는 사회의 시선을 내면화하여 본인 스스로에게 그 잣대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일과 가정의 양립’ 의무는 여배우라고 예외는 없다. 전문분야에서 활약하는 여성 역시 며느리, 엄마, 딸로서의 의무를 강요 받는다. 촬영을 가야 하는 바쁜 아침에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우는 딸을 달래고, 돈벌이의 팍팍함을 몸소 느끼는 와중에 엄마의 부탁으로 치과에 가서 홍보 사진을 찍어주어야 한다. 연기력보다 외모와 젊음으로 본인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정신적 스트레스, 나이가 들수록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든다는 중압감, 본인에게 부과된 의무 모두 이들의 직업 활동을 가로막는 강력한 장애물이다. 

 

여성 배우가 발 디딜 곳 없는 남성중심적인 영화판

 그러나 가장 큰 장애물은 영화계의 투자, 제작 환경, 캐스팅, 실제 소비 과정에 여성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이 과정에 실제 참여해야 하는 여배우의 스펙트럼은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위 ‘알탕’영화라며 비아냥을 받는 ‘남자영화’들이 한국영화계를 지배하고 있다. 한국의 대중오락영화 속 ‘여성’은 그 캐릭터 자체의 주체성을 가지고 살아 숨쉬기 보다 파괴적, 폭력적 범죄 행위의 희생자로 소비되기 십상이다. 

 

이때 이 캐릭터는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서로 설득과 이해를 주고받는 쌍방향적 관계 속에 있을 수 없고 일방적인 소비 속의 객체로 전락한다. 영화의 성평등 수치를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벡델 테스트’를 쉽게 통과할 수 있는 한국 영화가 얼마나 될까? 여성 캐릭터는 주체적인 언어로 본인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 아니라 남성 캐릭터에 종속되어 주변화되고, 자극적인 유희와 흥미거리로 휘발된다. 올해 8월 개봉해 무수한 논란을 낳았던 박훈정 감독의 <브이아이피>는 남성중심적 영화의 폭력성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영화 속 여자들은 대부분 강간의 대상이자 시체이며, 불릴 수 있는 이름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영화에 등장한 이유는 단 하나, 관음과 폭력의 대상으로 쉽게 취급할 수 있는 약자이기 때문이다. 여성을 상대로 한 폭력 범죄가 무수히 자행되는 현실과의 연결성도 의미심장하지만, 이렇게 여성의 존재를 삭제하는 영화들이 무비판적으로 양산, 제작되는 영화계의 실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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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문소리 역시 이러한 고민 속에 영화를 만들었다. 그녀는 “제가 한창 활동하던 때에는 <박하사탕>, <오아시스>뿐 아니라 <사과>,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 <가족의 탄생> 같은 영화들이 만들어질 때”였다며,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해서 영화계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빚을 갚는 심정으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으려”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영화의 다양성은 말살되고, 획일적인 ‘남자영화’들이 쏟아져 나오는 남성중심적 영화 제작 시스템 속에서 그녀는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이러한 문소리의 노력에 동감한 전도연, 공효진, 김태리, 정유미 등 주변 동료 여배들은 영화 GV에 참여해 본인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GV에 참여한 전도연은 “여배우의 이면에 대해서 솔직하게 영화를 찍은 것에 대해서 응원해 주고 싶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 영화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할리우드 거물 영화제작자 하비 웨인스타인이 여러 명의 여배우를 대상으로 지난 30년간 지속적인 성추행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기네스 펠트로, 안젤리나 졸리 등 여러 여배우들의 폭로가 이어지고,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역시 그에 대해 “역겨움을 느낀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피해 여성 중 한 명인 이탈리아의 유명 여배우 아시아 아르젠토는 웨인스타인이 자신을 “짓밟아 버릴까 두려워서 그동안 폭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권위를 사용해 상대적 약자인 여배우의 위치를 적극적으로 착취해 온 그는 남성중심적인 영화계의 본모습을 보여준다. 영화판에서 수동적인 위치로 전락하는 여배우의 지위는 불평등한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이며, 이렇게 생산된 영화들은 그 불평등을 다시 심화, 재생산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렇게 성차별이 만연한 불평등의 커뮤니티에서 페미니스트 문소리는 본인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면서 이 사회가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녀의 용기 있는 고백이 헛되지 않도록, 이 싸움이 여배우만의 외침이 되지 않도록, 영화계 내부의 곪을 대로 곪은 남성중심적 문화를 함께 개선하고 성평등을 이뤄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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