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땅거미 진 길 위의 낯선 사람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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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9월01일 16시35분
  • 최종수정 2017년09월01일 17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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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공기가 만연했던 지난 5월, 15가구당 한 가구 꼴로 경험하고 있다는 대리기사 세계에 잠시 몸을 담았었다. 표면적인 이유로는 집에서만 뒹굴뒹굴 하고 있는 나를 위한 운동의 시간이라고 정하였지만, 실제로는 궁핍한 취준생의 지갑을 조금이나마 채우고 싶었던 욕심이 컸다.

 

간단하게 가입하여 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대리기사 서비스에 가입했다. 과거, 기존의 대리시장을 뒤흔들만한 저력을 갖고 시장에 진입한 바로 그 노란업체이다. 요즘 이 회사의 대리기사 서비스의 진입장벽이 매우 낮아서, 나와 같이 비교적 젊은 사람들이나, 단기적으로 잠시 몸을 담고자 하는 사람들의 관심도가 매우 높다.

 

저녁 8시, 저녁밥을 든든하게 먹고 집을 나섰다. 나이는 상대적으로 어리지만, 비교적 서울 및 수도권 위치와 지리를 잘 파악하고 있어서 화면위에 떠오르는 가격과 위치 등이 많이 낯설지는 않았다.

 

하지만, 화면위에 뜨는 모든 리스트들이 내 것은 아니다, 리스트에 들어온 순간부터 엄지의 경쟁은 시작되고 있으며 그 짧은 찰나의 순간으로 인해 그날의 운행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번화가로 이동하는 콜 리스트는 눈으로 다 읽히기도 전에 사라져 버린다.

 

가까스로 집근처에서 강남권으로 이동하는 콜을 잡았다. 시작이 좋다. 9시정도에 도착하면, 뒤에 여유시간이 많기 때문에 다음에 이동할 수 있는 반경이 넓어진다. 물론 출발지도 사람이 많은 곳이고, 무엇보다도, 멀리 가더라도 현장에서 움직일 수 있는 대중교통이 남아있다.

 

손님을 모시러 갔더니 젊어 보이는 한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리기사를 부르며 이렇게 젊은 기사님이 온 것은 처음이라며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물론 좋았지만, 그들의 무례한 언행들이 귓가를 계속하여 맴돈다. ‘그런데 이런 거 왜 하는거에요?’

 

손님을 내려드린 후 다음 콜을 잡고자 편의점 앞에 섰다. 평소에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러 왔을 때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삼삼오오 무리는 지어있지만, 서로 관계는 없고, 계속해서 휴대폰 화면만을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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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면 속에 잠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콜 리스트를 보며 긴 탄식과 아쉬움이 엿보인다. 그중 한분은 좋은 콜을 잡았는지, 얼른 자리를 치우고 군중 속으로 녹아들어갔다.

 

이곳저곳 운행을 다닌 후 대중교통이 끝나서 경기도 외곽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택시를 타기에는, 오늘 번 돈이 너무 아쉽고, 그렇다고 첫차를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자니 몸이 너무나도 무거웠다. 그러던 중, 대리기사 전용 셔틀을 탑승했다. 요금 2,000원을 내고 잠실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는 몇 명의 다른 기사님들도 함께하고 있었다. 길 위에 삼삼오오 모여 외딴 섬을 간직했던 그 무리와 마찬가지로, 버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운이 좋아서 집근처로 가는 콜을 잡거나, 번화가로 이동하게 되어 첫차가 다닐 때까지 많은 콜을 소화하면 좋지만, 이도저도 성공하지 못해서 결국 이 버스에 함께하게 된 것이다. 

 

생면부지인 서로에게 눈길한번 주지 않고, 서로의 스마트폰만 들여다 볼 뿐이었다. 간간히 뜨는 알람소리에도 그다지 큰 미동도 없다. 새벽시간에 뜨는 콜은 잡고 들어가면 꼼짝없이 어두컴컴한 곳에 갇혀버리기 때문에 선뜻 수락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옆자리에 앉은 기사님께서 내게 한마디 하셨다.

‘아르바이트는 다른 곳에서 해, 이곳은 전쟁터야 밥줄 달린 사람이 몇 명인데 여기..’ 

선뜻 대답하기 어려웠다.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나의 시선도 스마트폰으로 자연스럽게 내려갔다.

 

잠실역에 도착하여 근처 은행에 잠시 들어갔다. 벌레도 많고, 날씨도 더워서 도저히 밖에 있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콜은 밤 12시 30분을 전후로 급격하게 줄더니, 2시가 가까워지자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더 이상 기다리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자연스레 집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날 나는 총 4개의 콜을 받고, 6만원을 벌었다. 하지만, 이 수입은 전부 나의 것이 아니다. 중개수수료와 보험료, 이동할 때 들어간 교통비를 제외하고 4만원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강변철교위의 야경은, 그 어느 때보다 인상 깊었다.

하지만, 셔틀버스 안에서 만난 다른 기사님들의 이야기와, 주머니 속에 쥐어진 현찰 몇 장이 손에 닿을 때 마다, 한강위의 비친 달빛이 쌀쌀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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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7년09월01일 17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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