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보금자리에 담긴 북유럽 라이프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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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6월23일 16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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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유럽은 뭔가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이상적인 사회일거라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노동환경. 높은 임금과 저녁이 있는 삶. 성평등한 사회. 아이를 기르기 좋은 나라. 아마도 현재 한국이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일찍이 해결한 우수한 모델이기 때문에 북유럽에 대한 선망은 더욱 클 것이다. 

 

 필자는 올해 6월 북유럽 4개국으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북유럽 여행을 준비하면서 생각만으로 그렸던 북유럽의 이미지가 단지 허울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더 대단한 무언가가 북유럽 국가들에 존재했다. 그렇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완벽한 사회에 대한 정보들은 알면 알수록 그곳과의 괴리감만 크게 할 뿐이었다.   

 

 숙소의 대부분을 에어비엔비로 정했다. 에어비엔비는 그 지역 사람들이 자신의 빈 집을 여행객에게 빌려주는 것을 중개하는 사이트다. 우리가 가는 북유럽 도시에도 많은 에어비엔비 숙소들이 있었다. 아주 작은 아파트부터 고급 아파트까지 주거시설의 형태와 가격은 다양했다. 가격과 크기, 위치를 고려해 거실, 주방, 침실 2개가 포함된 아파트 형태의 숙소들을 예약하였다. 에어비엔비의 슬로건은 "여행은 살아보는 것"이다. 살아보는 여행. 다른 나라 사람의 집에 살아보는 것. 그렇게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는 북유럽 도시의 삶 속에 머무르는 것. 

 

 처음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전혀 몰랐다. 북유럽의 일상이 여행객을 어떻게 품는지, 우리가 그들의 시선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지를 알지 못했다. 지금 현재 세 곳의 에어비엔비 숙소를 경험해본 결과 그 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의 집만큼 그들을 잘 알 수 있는 법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잠시나마 북유럽 국가에 머물며 지극히 일상적인 시선에서 북유럽을 바라본 바를 기록하고자 한다. 사람 사는 모습만으로 북유럽 국가에 대해 논하는 것이 단편적일 수 있으나 때에 따라서는 그들의 일면이 거의 모든 것을 말할 수도 있다. 

 

 

 1. 코펜하겐, 덴마크. 요한나의 아파트.

 코펜하겐의 에어비엔비 숙소는 코펜하겐 대학 뒤편의 오래된 아파트였다. 우리나라의 대학가와는 달리 조용하고 특별한 것 없는 주택가였다. 다만 주변에 학생 기숙사가 있어서 저녁때면 반지하층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학생들을 볼 수 있었다. 아파트는 호스트 요한나의 동생 안톤이 집 안내를 해주었다. 아파트는 두 남매가 살았던 집이고, 안톤은 대학생, 요한나는 직장인이라고 했다. 아파트는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두 사람의 생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벽에는 크고 작은 액자가 걸려있고 곳곳이 나즈막한 실내 식물들로 꾸며져 있었다. 마치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온 듯 아늑한 느낌이었다. 창문으로 밖으로는 다른 아파트 세대의 창문에 놓인 식물과 각양각색의 주방 조명이 보였다. 그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려주면서 삭막할 수 있는 아파트의 풍경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주방에는 각종 양념과 요리재료들이 가득했고, 온갖 종류의 요리 도구이 있었다. 식기와 컵은 종류별로 대 여섯명 분이 갖춰져 있고 식탁 역시 여러 명이 둘러앉을 수 있을만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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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톤 혹은 요한나가 친구들을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 옆에 있는 오디오와 앰프로 노래를 틀고 식사를 즐겼을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안톤의 방은 누가 보아도 안톤의 취향을 단번에 알 수 있을 만큼 개성 넘치게 꾸며져 있었다. 안톤은 고래를 좋아하는게 분명했다. 방안 곳곳에 다양한 종류의 고래 사진, 그림이 붙여져 있었고 침대 옆에 걸린 고래 그림은 누군가 직접 그린 것처럼 보였다. 또한 그의 책장에는 동화책부터 심리학, 사회학,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종류의 책이 꽂혀 있었다. 그 방의 인테리어만 보았을 때는 안톤이 미술이자 디자인 계통의 공부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안톤은 약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제서야 집 곳곳에 걸려있던 분자 모형이나 선반의 해골이 이해가 갔다. 코펜하겐의 길거리, 상점들, 사람들의 스타일을 보면 안톤과 요한나의 아파트가 특별히 예술적인 취향으로 꾸며져 있다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마도 개인적인 취향, 개성이 가장 기본적인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인디가 취향'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우리나라의 풍토에서는 그것이 기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도 하지 못한 수준이었다. '음악 좀 듣는다.' 혹은 '책 좀 읽는다.', '영화 좀 많이 봤다.', '전시회 좀 보러 다닌다.' 라고 하는 일말의 자부심 같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걸로 돌아가버리는 순간이었다.

 

2. 베르겐, 노르웨이. 마릿의 아파트.  

 베르겐은 노르웨이에서 2번째로 큰 도시이자, 항구도시이다. 노르웨이 피요르드 투어를 떠나는 관광객들이 여정을 시작하는 곳이기에 언제나 오고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베르겐에서의 에어비엔비 숙소는 중심가와 조금 떨어진 주거지구에 위치했다. 관광객들로 소란스러운 중심가와 멀지 않지만 주거지구는 아주 조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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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스트 마릿은 중년 여성으로 아들이 유학을 떠난 후 집을 에어비엔비용 숙소로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마릿의 아파트는 완전히 에어비엔비 숙소를 위해서 새롭게 단장한 티가 났다. 이전 주인이 사용한 흔적은 적었지만 그림이 걸린 벽, 다양하고 독특한 조명, 여러 질감의 패브릭으로 장식된 가구들, 집안 전체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러그로 편안하게 인테리어가 되어 있었다. 아마도 최소한으로 장식들을 갖춘 것일테지만 여전히 인테리어 카탈로그에서 볼법한 느낌이었다. 마릿의 집에서 눈에 띄는 점은 아파트 구조였다. 주방과 거실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고 같은 공간 안에 놓인 느낌이 강했다. 또한 주방에는 작은 바가 놓여있었는데 바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바로 요리대와 싱크대가 붙어 있어서 요리를 하면서 식탁과 거실의 사람들과 가깝게 연결될 수 있었다. 

 

 바가 있어 조리 공간이 'ㄷ'자가 되어 부엌이 좁지만 사용할 수 있는 면적은 효율적이고 충분했다. 두개의 침실과 화장실은 복도를 두고 거실과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다. 개인 공간과 공동 공간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구조가 굉장히 안정감있게 느껴졌다. 사용자중심의 실내구조가 무엇인지 아파트에 머물면서 직접 겪어보니 그 중요성이 와닿았다. 또한 작지만,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기 위해서 사람의 생활과 습관, 가족, 집, 공간에 대해서 얼마나 많이 연구하고 고민했는지가 느껴졌다. 노르웨이의 아파트 건축은 분명히 그 안에 사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공간이었다.   

 

 

3. 오슬로, 노르웨이. 모나의 아파트.

 피요르드와 빙하, 숲으로 가득한 경이로운 노르웨이의 자연경관을 뒤로 하고 도착한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는 무척 현대적인 도시였다. 기차역에서 가까운 오슬로의 에어비엔비 숙소는 아랍계 이민자들의 주거지역에 있는 아파트였다. 호스트 모나는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집안의 살림을 보면 젊은 싱글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오슬로는 코펜하겐에 비해 더 많은 인종들이 섞여 있는 분위기였다. 

 

 역 근처 이민자 밀집 지역이라고 하면 보통 위험할 수도 있지만 오슬로에서는 오히려 더 싼 가격의 식료품점과 다양한 세계 음식점이 있어 지내기에 아주 편했다. 모나의 아파트는 모나가 급하게 집을 정리하고 나간 흔적이 남아있어 더 정감이 갔다. 오히려 너무 모나의 생활이 전부 드러나서 이렇게까지 이 사람의 삶을 들여다봐도 되나 하는 망설임까지 들게 했다. 모나의 아파트는 이전의 두 에어비엔비 숙소와 마찬가지로 식기, 요리도구, 재료가 모두 풍부했고 집 안에 아기자기하게 꾸며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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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발코니가 있어 언제든지 나가서 길거리를 내다볼 수 있었다. 특히 금요일 밤에는 집 근처의 클럽에서 라이브 음악을 연주하고 사람들이 흥겹게 떠드는 소리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렇지만 발코니 문을 닫으면 소음은 완벽하게 차단된다. 금요일 저녁에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 카페나 펍에 모여서 노는 모습을 보면 북유럽 사람들이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고 고립되어 있을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사라진다. 오슬로의 사람들도 다른 어느 나라 사람들과 다르지 않게 노래 들으며 흥겹게 노는 것을 좋아한다. 

 

 모나의 아파트 식탁에는 카네이션 꽃다발이 꽂혀있었다. 우리는 카네이션에 대한 답례로 아파트의 회색 소파에 잘 어울릴 만한 노란색 해바라기를 사다 꽂아두었다. 그리고 모나가 오슬로 내셔널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회의 포스터를 액자에 넣어둔 것을 보고 우리도 내셔널갤러리에서 커다란 포스터를 샀다. 집에 돌아가면 액자에 넣어 집 안 벽을 장식할 예정이다. 

 

 꽃과 포스터는 작은 것이지만 집안의 모습을 바꾸기엔 충분한 것이며, 그것을 사기 위해 소비한 돈 보다 더 큰 마음의 여유를 우리에게 선사한다. 언제나 돈의 여유가 마음의 여유를 앞서지만, 한번쯤은 마음의 여유를 위해 조금 양보해보는 것도 작은 변화를 만들어내는 방법일 것이다. 모나의 집에서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것을 저절로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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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덴마크, 노르웨이에서 만난 일반적인 가정집의 구성요소는 한국식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에서 쉬고 밥 먹고 씻고 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모습은 전혀 달랐다. 북유럽에서는 누구나 집을 꾸미고 산다. 코펜하겐 숙소에서 '개성은 기본이다.'라고 느꼈던 것은 다른 도시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굳이 예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더라도 꽃, 조명, 그림, 화분 등의 소품으로 집을 아름답고 보기 좋게 만든다. 음악에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어느 집에나 다양한 분야의 책이 가득하다. 집안의 가구나 시설도 사람이 사용하기에 가장 최적화되고 편안하게 디자인되어있다. 

 

북유럽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 스며있는 이케아가 북유럽을 너머 전 세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리고 북유럽 사람들에게 집은 커뮤니케이션의 공간이자 사회생활의 연장이기도 하다. 가장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할 준비는 완전하다. 누구나 집안에 거의 열명분의 식기를 갖추고 산다. 다양한 종류의 와인잔 또한 필수다. 그러면서도 개인의 삶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확실해서 코펜하겐의 낡은 아파트에서도 층간 소음은 전혀 없었다.

 

 북유럽의 생활상을 보면서 어떤 부분에서 우리나라가 북유럽의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동경하고 그것을 가져왔는지 알 수 있었다. 가령 베르겐 마릿의 아파트에 있는 주방의 작은 바는 이미 한참 전에 한국에서도 꽤 크게 유행했었다. 하지만 그 바가 제 기능을 하는 것은 모델하우스에서 뿐이었을 것이다. 바를 사용하는 문화가 한국에는 없지만, 좋아 보이기는 해서 그저 보이는 것만 가져온 것일 뿐이다. 바 인테리어가 유행했을 당시 지어진 아파트에 갔던 것을 기억해보면 그 위에는 잡다한 것들이 올리어져 있고 그냥 그곳에 세워진 분리 벽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곳에서 그 가족들이 저녁에 와인이나 술을 가볍게 한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막연히 북유럽식 스타일만을 동경만 하고 있다. 북유럽이라고 하면 그저 좋은 것, 예쁜 것, 세련된 것. 이라는 추상적인 관념만 있을 뿐이다. 북유럽의 인테리어 사진에서 보이는 북유럽 스타일의 커튼, 의자, 쿠션 등과 같은 이미지는 그야말로 멈춰있는 사진일 뿐이다. 그것을 정말로 우리의 집안에 가져오기 위해서는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까지 전부 가져오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북유럽 사람들이 디자인과 인테리어에 국민적인 재능이 있어서 그들의 가정집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북유럽 사회의 모든 선순환적인 시스템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아마도 한국도 북유럽의 국가들처럼 직장에서 퇴근하고 마트에 들러서 장을 보는 것까지 마친 후 집에 도착하는 것이 5시에서 6시라면 그들처럼 풍요로운 주방과 식탁의 풍경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여가시간을 가지고 있다면 한국에서도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요리를 먹고 술을 마시며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일상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특별한 것들로 채워져 있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이 평범하고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집안의 모습만으로도 높은 생활수준과 잘 만들어진 사회 시스템을 느낄 수 있었지만 사실 집뿐만 아니라 그 나라의 어딜 보더라도 이곳이 왜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운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이 사회적으로 뒷받침 되어야할까. 그것을 생각하면 아무래도 까마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북유럽의 스타일을 패션처럼 소비하는 것에서 부터 우리의 변화가 시작되는 것일까_ 아니면 단지 그것은 북유럽의 가치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동경이 발로 될 수 없어 굴절적으로 나타나는 소비 행태일까_ 두 가지 모두 한국에서는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여 결과물로서 평가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활 속에 잠시 머물며 분명히 느낀 것은 우리가 갈 길이 아주 멀고 한국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좀 더 욕심내고 좀 더 바라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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