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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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의 칼날은 어디로 향하는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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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6월02일 17시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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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에 의해 잉태되었다. 촛불혁명의 부르짖음은 문 정부를 적폐 청산의 적임자로 선택했고, 시대적 책임을 부여했다. 따라서 문 정부는 정경 유착, 제왕적 대통령제, 구태 정치 시스템, 헬조선 등 구체제의 적폐를 해소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체제 타파를 요구했던 시민 혁명은 항상 미완으로 끝나왔다. 

 

  4.19 혁명 이후 무능한 장면 정부는 군부 독재를 야기하며 반동적인 결과를 낳았고, 실패한 80년 서울의 봄은 5.18이라는 비극으로 이어졌으며, 6월 민주 항쟁 역시 삼金의 분열로 인해 불완전한 민주화에 그쳤다. 이는 혁명에 담긴 시민들의 목소리를 왜곡하여 권력 수단으로 악용했던 정치 제도권과 기존 체제를 답습함으로써 부당한 이익을 얻는 기득권층의 합작품이었다. 따라서 촛불 혁명 역시 미완으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는 결코 과대망상이 아니다. 촛불혁명을 완수하는 동시에 협치, 통합, 공존을 꾀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한 책임감을 짊어지게 되었다. 

 

적폐 청산의 칼자루, 양날의 검

  인사 청문회는 정부의 주요 인선을 관철시킴으로써 개혁의 동력을 얻는 중요한 시험대이다. 따라서 향후 적폐 청산의 성공 여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리트머스 지와 같다. 문 정부는 파격적인 인사로 호평을 받았지만, 몇몇 후보들의 위장전입 전력이 도마 위에 오르며 야당과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도덕성을 문제 삼으며 각종 비난을 쏟아 부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 5대 원칙에 위장전입이 속해 있으므로, 이에 반하는 인사는 공약을 스스로 파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인사 5대 원칙이 말 그대로 ‘대원칙’이기 때문에 이를 현실에 적용할 경우 개별 상황에 맞는 객관적인 세부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해명했다. 그 동안 청문회를 빌미로 반복되었던 고질적인 국정 공백을 방지하고, 시스템적으로 좋은 인사를 담보하기 위해 객관적인 검증 틀을 마련하자는 말이다. 수긍할 만한 설명이었지만, 도덕적 비판의 빌미를 주었으므로 정부의 중대한 초기 인사라는 점에서 철저한 반성 역시 이루어져야 한다. 청산의 칼자루를 쥐었다고 해서, 헛발질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고 정당화할 수 없다. 

 

 강력한 무기일 수록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잘못된 사용은 역설적으로 큰 해악을 끼칠 것이므로, 칼을 항상 날카롭게 갈아주되 올바른 사용법을 견지해야 한다. 즉, 비판이 봉쇄된 권력의 절대화는 또 다른 적폐의 시작이기 때문에 정부는 개혁의 방향성에 대해 끊임 없이 성찰하고, 여러 의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경향신문과의 특별대담에서 “먼저 소통의 리더십이다. 박근혜가 반면교사다. 그 반대로만 하면 된다.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과 널리 만나 소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소통을 강조해왔던 문재인 정부의 일관된 행보처럼 총리 인준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양해를 구하는 모습은 개혁과 협치를 위한 포석으로 훌륭했다. 특히 많은 적을 양산했던 노무현 식의 과격한 표현 스타일과 다르게 최대한 순화하되 국민과 야당에게 명확한 핵심을 전달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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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을 가로막는 적폐의 ‘복원력’ 

- 야당: 비판과 협조의 공존

  정부의 날카로운 칼이 올바른 방향을 향한다고 해도, 야당과 국민의 역할 없이 구체제의 타파는 불가능하다. 지난 31일 서강대에서 열린 <한국정치특강>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기득권 체제의 저항이 거셀 것이다. 촛불 혁명의 완수는 기존 체제를 유지하려는 자유한국당을 포함한 적폐 시스템의 ‘복원력’과 청산 세력 사이의 대결에 달려있다”고 발언했다. 오랫동안 한국 사회를 지배해 온 구체제는 기존 상태를 유지하려는 강한 원심력을 가지고 있다.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 올바른 개혁 비전, 이에 더해 야당의 협조, 국민의 정치 참여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구체제의 ‘복원력’은 촛불을 꺼버리는 거대한 바람과 같다.

 

  이낙연 후보에 대한 찬성표가 과반을 간신히 넘었다는 점을 보면 야당과의 협치는 요원해 보인다. 이것은 야당의 책임이다.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스스로 적폐라는 비판을 받는 마당에 지난 31일 국회에서 열린 총리 인준 표결 자체를 보이콧하며 협치 불발의 책임을 문 대통령에게 전가했다. 이는 여소야대 국면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비판의 명분을 쌓아 정권 식물화를 조기에 노리는 전략이다. 과거 노무현 시절, 취임 전부터 탄핵을 거론하며 대통령을 흔들었던 구태 전략의 되풀이는 구태 시스템의 복원력으로 작용하고, 이는 개혁 동력을 제어한다.

 

 정당한 명분이 있다면 야당은 정부의 개혁 방향이 촛불 혁명과 민심을 올바르게 담고 있는지 혹독하게 견제, 비판해야만 한다. 하지만 정당한 비판과 명백히 구별되는 정권 흔들기에 눈이 멀어 민심을 저버리면 역풍을 맞는다는 사실을 노무현 탄핵 반대 집회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따라서 야당은 상대 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라는 식의 진영 논리가 개혁을 억제하는 구체제의 잔재라는 것을 인지하는 자정 능력을 가져야 한다. 정부의 개혁 비전에 정당한 비판을 가하되 협치를 근본적인 목표로 인식하는 것이 촛불 혁명 완수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 국민 : 직접 민주주의, 혁명은 국민의 참여로 완성된다

하지만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구체제를 타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주체는 정치 제도권이 아니라 국민들이다. 미완으로 끝난 시민 혁명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혁명의 형식적 성공 이후 대다수의 국민들은 ‘이 정도면 됐다’는 안도감으로 일관했고, 정치 제도권이 적폐의 원심력에 굴복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했다. 촛불 혁명을 통해 박근혜는 구속되었고,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지만 이는 형식적 성공에 불과하다. 사회의 재구성을 방해하는 구체제의 복원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정부의 올바른 개혁 이행, 국회의 견제와 협치 모두 중요하지만 이를 총제적으로 견제하는 국민의 지속적인 관심, 비판, 응원이 필수이다. 그러나 현행 대의민주주의는 국민의 여론을 적극 반영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현재 국회는 촛불 혁명 전에 구성되었기 때문에 적폐의 핵심인 자유한국당이 협치 제1파트너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이들이 민의를 무시하고 개혁에 방해공작을 가할 수 있는 것은 총선이 3년이나 남았으므로 지금 당장 시민들이 그들의 존립을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이들이 적폐 청산을 위한 협치에 동조할 수 있는가? 

 

대의민주주의는 국민들이 선거 날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로 돌아가는 제도”라는 18세기 정치 철학자 루소의 일갈은 현시점에서 주요하다. 최근 크게 이슈가 되었던 국회 의원들에 대한 ‘문자 폭탄’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잘 보여준다. ‘문자 폭탄’의 피해 의원들은 집단 린치에 불과한 민주주의 훼손 행위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국민들이 분노의 ‘문자 폭탄’을 보내는 이유는 대변자인 국회의원들에게 정치적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직접적 소통 창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인들에 대한 폭력이라고 피해자 행세를 하고 말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민주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는 저서 <촛불혁명과 2017년 체제>에서 “국회는 자신들이 대표해야 할 주권자들인 국민의 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만 했다 ⋯ 완전한 직접민주주의로 나갈 수는 없지만 직접민주주의 기제들을 극대화해야 한다”면서 국민소환제나, 시민발안제 같은 정책을 활성화시켜야 된다고 말한다. 촛불 혁명을 통해 우리 모두가 지켜 보았듯이 비조직화된 일반 시민의 정치 참여는 폭발적인 효과를 거두었으며, 이는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새로운 가능성이다. 개혁을 억제하는 복원력을 파괴하려면 개혁의 열쇠를 정부와 국회에 맡기고 투표날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의사 반영이 필수적이다.

 

이제 첫 문턱을 넘었다. 리얼미터가 실시한 5월 4주차의 여론조사에서 문 정부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84.1%로 연일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우려와 다르게 국민들은 정부를 믿고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이에 도취되면 안된다. 개혁의 중심은 국민이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요구할 것이다. 정부는 그들의 목소리를 민주적으로 수용하여, 올바른 개혁 비전을 제시하고, 구태 정치를 벗어난 선진 국회와의 협치에 힘써야 한다. 서막이 오른 적폐 청산의 무대에서 문재인 정부의 칼날은 어디로 향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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