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촛불로 밝힌 민주주의, 사무실 문턱도 넘어보자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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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5월26일 18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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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22시간씩 일했다. 2달 동안 7만원 받았다. 3배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버텼는데 이게 정상적인 게 아니더라”

 

지난 4월 MBC 예능 ‘무한도전’에서 한 시민이 밝힌 자신의 경험담이다. 이날 ‘무한도전’에서는 시민이 법안을 제시하는 ‘국민의회’를 진행했다. 프로그래머라고 밝힌 다른 시민 또한 “나도 저렇게 일했었다. 월급보다 야근비가 더 나올 때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덧붙여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이 쌓이다 보니 본인들의 스트레스를 불기 위해 괴롭힘이 많다. 차별적인 발언이나 나이, 성별에 대한 말, 성희롱도 많다”며 현실을 폭로했다.

 

<한겨레21>이 취업포털 인크루트와 함께 직장인 943명을 상대로 ‘당신의 직장은 얼마나 민주적인가?’라는 주제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비민주적’이라고 응답한 직장인이 50%에 달한다. 절반 가까운 46.6% 직장인들이 언어폭력과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야근 잔업 등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직장인도 57.8%로 절반 이상이었다. 직장 내 성차별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48.5%가 ‘있다’고 답했다.

 

사무실 문턱을 넘지 못하는 민주주의

미국 경제학자 리처드 울프는 2011년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운동을 다룬 <경제를 점령하라>는 책에서 “민주주의가 어딘가에 존재해야 한다면 삶의 큰 몫을 차지하는 노동에 존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민주주의가 저절로 주어진다고 생각해서인지 상점, 공장, 사무실 등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우리의 모든 민주적 권리와 책임을 포기하고 만다”라고 말했다.
 
한국은 피와 땀으로 민주혁명을 일으키며 어렵게 국가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이 모든 과정은 우리가 국가의 주권자임을 확인하는 역사였다. 이렇게 어렵게 성취한 사회민주주의가 직장 내에서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직장민주주의는 필요하다. 직원들이 기업 내에서 자율적인 존재가 될 때 더 능동적으로 실존할 수 있다.

 

주인의식, 요구 말고 가질 수 있게 해라.

노동자들이 노동 과정에서 소외돼 스스로의 노동 과정을 통제할 수 없는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은 노동자들로 하여금 무력감을 가져온다. P&G, 탐스 같은 선진 기업들은 조직 구성원을 단순한 종업원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직원들과 목적의식을 공유하며 동기부여를 한다.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목적을 위해 이용당하는 부속품에서 의미 있는 일을 통해 회사와 함께 자아실현을 하는 ‘참여자’로 지위가 변화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성과를 가져온다. 한스뵈클러재단의 베란 박사는 <한겨레>에서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절반까지 참여하는 기업(2천명 이상 대기업)의 경영 성과가 노조대표가 3분의 1만 참여하는 기업(500명~2000명 규모 중견기업)에 비해 더 좋다”고 말했다. 강요된 주인의식이 아닌 진짜 회사의 주인이 될 때 동기부여가 진정한 효과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제도적 보장이 함께 가야

직장민주주의를 추진하기 위해 국가도 정책을 통해 기여해야 한다. 개인의 소유권이 공동체의 자율권과 자결권보다 상위에 있는 절대적이고 천부적인 권리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소유권에 기반을 둬 직장민주주의를 반대하는 것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직장민주주의는 공동체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갖는 집단적 권리에 기반을 둔다. 재벌 등 개인의 재산권보다 항상 뒷전이었던 국민 대다수의 ‘참여’라는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서 국가 차원에서의 방안 모색이 절실하다.

 

직장민주주의를 위해서 궁극적으로 직장 내 인권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노동이사제를 통해 노동권을 조직적으로 보호할 수 있다. 노동이사제는 1인1표라는 민주주의 룰에 가장 입각한 경제민주주의의 구체적 형태다. 스웨덴, 네덜란드 등에서는 이미 노동이사제가 자리 잡은 상태다. 부장급 이하 전체 종업원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의원들이 자기 회사 이사회의 이사가 돼 경영결정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네덜란드 경총의 위디트 판데르휠스트 법무이사는 <한겨레>에 “네덜란드 법은 회사의 주주 뿐 아니라 이해당사자의 이해를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이제 논의의 대상이 아닌 자연스러운 합의의 산물이다. 이는 저녁․휴가․여가 있는 삶이 가능하게 하는 근무시간 보장 등 노동권 향상을 위한 노력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또 노동자는 회사의 주인으로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인의식을 갖고 자신의 권리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다.

 

회사 운영진과 직원 사이의 종속관계 해소 뿐 아니라 팀 내에서도 모든 직원이 동일한 자율권을 갖고 회사의 목표실현을 위해 다함께 힘쓸 수 있어야 한다. 직장 내 서열문화는 서로를 연쇄사슬처럼 지배당하고 지배하게 만든다. 팀 내 위계질서는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명분을 준다. 그 결과 직장 내 희롱과 언어적 물리적 폭력이 끊이지 않게 만든다. 실제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임수경 의원이 여성가족부로부터 2015년 제출받은 ‘직장 내 성희롱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성희롱 진정 접수는 2010년 105건에서 2014년 267건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

 

고용법에 직장 내 희롱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등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사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모든 기업이 성희롱을 포함한 각종 희롱에 대한 재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피해자 보호 대책 등의 내용까지 담아 기업 차원에서 범죄 사후에도 책임을 가지고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범죄가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한 기업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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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게도 이로운 직장민주주의

직장 내의 비민주적 문화로 인한 스트레스 요인을 제거한 조직은 다른 회사들에 비해 매출과 수익, 성장과 이익 면에서 훨씬 높은 수준을 나타낸다. 페슈릭과 바이햄에 따르면 참여적 경영을 도입한 한 회사는 공장의 작업시간 손실을 가져오는 사고가 50% 줄고 다년간 제기된 불만건수가 15% 감소했다. 또 목표로 한 250,000보다 더 높은 생산성 목표를 달성했다.

 

현대의 정보기반 경제에서는 창의적 생산 활동이 더욱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직장민주주의는 기업운영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 기업의 위계구조는 개인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자율적으로 시행하기 힘들다. 개인이 모두 동등한 위치에서 기업의 이윤추구라는 목표를 위해 기여할 때 다양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탁상 위로 올라올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때부터 ‘사람 중심 경제’를 강조했다. 구체적인 실현 방법으로 대기업의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하는 등의 재벌개혁 정책과 상장사의 이사회 기능을 강화하는 상법 개정 등을 추진할 계획으로 보인다. 이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진정으로 사람이 중심인 경제를 만들기 위해서는 촛불집회의 민주주의적 성과가 직장의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하는 직장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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