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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동성애자 군인은 2등 군인? - 소수자 혐오로 무장한 국방부와 이를 묵인하는 정치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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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5월05일 17시46분
  • 최종수정 2017년05월05일 17시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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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1일 밤 국방부 앞이 소란스러워 졌다. 군인권센터의 주최로 열린 이 날 시위에서 시민들은 육군 중앙수사단의 대대적인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를 규탄하고 구속된 A대위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했다. 군인권센터는 육군의 수사 방식을 "나치 게슈타포가 유태계 동성애자를 추적해 체포한 방식과 흡사하다" 면서, 불법적인 인권유린으로 규정하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논란이 확산되자 육군 본부는 "SNS상에 현역 군인이 다른 동성 군인과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을 게재한 것을 인지하고, 관련자들을 식별 후 법령에 의거 형사 입건하여 조사 중" 이라고 해명했다.

 

육군의 반인권적, 불법적 수사 행태
  육군 본부의 보도자료만 보면 군 형법 조항과 음란물 유포죄를 위반한 군인들을 처벌하는 것은 군 기강 확립을 위해 그들의 임무를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건의 발단이 동영상 유포 사건이었던 것은 맞지만, 이후 벌어진 동성애자 군인 색출 수사는 완전히 별개의 사건이다. 육군 측은 구속된 A대위나 수사 대상자들이 영상물을 유포한 병사처럼 음란물제작에 가담하고 난잡한 성관계를 맺은 것처럼 애매모호한 말을 사용해 진실을 호도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육군 중앙수사단은 영상을 유포한 군인을 통해 다른 동성애자 군인들을 색출, 식별한 뒤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동성 간 성관계의 물적 확증 없이 동성애자로 색출된 군인들을 잠재적 피의자로 규정하고, 영장도 발부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해당 군인들의 핸드폰을 압수해 수사하는 불법적 행태를 보였다. 폭로된 수사 내용과 녹음파일, 문자 내용에 따르면 수사관들은 해당 군인들의 핸드폰에 남겨진 대화 목록을 샅샅이 뒤져 대화를 나눈 상대방의 신상을 캐물으며 성적 지향성을 말하라고 협박했다. 또한 “너희 부모가 알면 어떻게 되겠냐?”는 등 아웃팅을 두려워한 군인들의 처지를 이용해 반강제로 항문 성교 경험을 시인하게 만들었고, 수사 과정에서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질문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수사관들은 데이팅 어플을 통해 동성애자 군인들에게 메세지를 보내면서 성관계를 유도했으며, 이를 거부한 군인에 한해서도 프로필의 얼굴 사진을 통해 신원을 확보하고 수사 대상에 올렸다. 한 수사 대상자에게는 “굳이 변호사를 선임해서 자기 방어권을 행사할 필요가 있을까” 라며 개인의 방어권을 방해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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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의 부대관리훈령 254조에 따르면, 지휘관 등의 동성애자 식별 활동은 금지되어 있다. 따라서 동성애자 군인 리스트를 강압적, 불법적으로 확보해 그들의 신원을 식별해 나간 육군의 수사는 자기모순적이다. 이는 명백한 함정 수사이며, 과거 좌파 운동가들을 색출하기 위해 독재 정권이 사용했던 수사 방식의 냄새를 풍기는 시대착오적인 불법 수사이다. 육군은 이러한 수사 과정을 은폐한 채, 마치 군대가 치외법권의 성역인 것처럼 군 기강 확립을 명분으로 법치주의를 유린하는 반인권적, 반헌법적 행태를 안하무인 격으로 저지르고 있다. 군 기강 확립과 전투력 향상을 위해 뿌리 뽑아야 하는 것은 병영 내에서 고질적으로 자행되는 가혹행위, 성범죄, 악폐습 등의 반인권적 폭력행위이다. 육군 본부는 이렇게 군대 내에 곪아 있는 반인권, 폭력은 무시한 채 사회적 약자인 성소수자들의 인권을 억압함으로써 오히려 반인권과 폭력을 자행하는 꼴이다.

 

소수자 억압에 동조하는 대선 주자들
 이렇게 억압된 동성애자 군인들의 인권은 유력 대선후보들에 의해 확인 사살 당하고 있다. 25일 열린 JTBC 대선토론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투력 약화를 우려해 군대 내 동성애의 합법화를 반대한다고 밝혔다. 안철수, 유승민 후보 역시 문 후보에 비해 더 강경한 입장이다. 심지어 홍준표 후보는 지난 27일 “동성애는 하늘의 뜻에 반하기 때문에 금지가 아니라 엄벌을 해야 한다”는 적나라한 혐오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들의 인식에 따르면 군대 내의 동성애는 강력한 규제의 대상이다. 동성애 허용이 동성 간 성희롱, 성추행, 인권침해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이는 동성애자들을 잠재적 성범죄자로 규정함으로써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는 발언이다. 성적 지향성은 선택의 영역이 아니므로 군대 내에 이미 존재하는 동성애자 군인의 존재를 삭제하는 것은 군 기강 확립과 무관하며 오히려 인권을 후퇴시키는 행위이다. 도중진 충남대 교수는 “동성애자의 군 입대를 허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군 내 동성애 행위를 형사처벌 하는 것은 국가의 군대 병영생활 관리의무를 방기하는 것이며, 성적 소수자의 헌법상의 기본권을 보호할 의무를 해태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라고 말한다. 따라서 군 기강 확립이 진정한 목적이라면, 엄격히 금지해야 할 것은 성적 지향성과 무관한, 동성과 이성 간의 관계를 포괄하는 성폭력, 성추행 등의 범죄행위이다.  

  하지만 현재 군대는 여군 성폭행, 상급자의 성추행 등의 폭력 범죄에 대해서는 상습적인 은폐를 자행한다. 이렇게 부대 내의 성범죄를 뿌리 뽑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마치 동성애만이 군 기강을 좀먹는 암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명분을 내세워 소수자를 합법적으로 차별하려는 반인권적 행태에 불과하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폭력 행위의 근절이 군 기강 확립의 핵심인 데도 불구하고, 성적지향성 자체 만을 가지고 처벌하려는 국방부는 군 집단 내에 곪아 있는 폭력성을 은폐 한 채 오히려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혐오의 논리를 조장해 내부적으로 재확산 시킨다. 동성애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함정, 색출, 불법 수사를 자행하고 이를 정당화하는 현재 군의 반인권적 행태가 진정으로 전투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가? 국방부의 시대착오적 인권 침해를 묵인하는 몇몇 대선 후보들은 정치공학적 논리에 매몰되어 다수의 표를 얻기 위해서, 권력을 위해서 사회적 약자의 인권 문제는 나중 일로 치부하는 전략을 당당하게 고수한다.

 

군 형법 92조 6항, 합법적인 인권 탄압
물론 성소수자 관련 이슈가 대중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최근의 국면은 인권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진일보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변화이다. ‘군 관련 성소수자 인권침해-차별 신고 및 지원을 위한 네트워크’에 따르면 이 단체가 보낸 공개질의서에 문재인, 심상정 후보 모두 육군 내 동성애자 색출 수사 사건이 반인권적인 수사 절차,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답했다. 적어도 소수자의 인권이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그러나 군인 간의 동성애에 대해 형사처벌을 강제하도록 만든 군 형법 92조 6항에 대해서는 심상정 후보를 제외하고 유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아쉬울 따름이다. 이성 간의 성행위가 군 사법체계 내에서 징계 수준으로 그치는 데에 비해 군 형법상 동성애자 처벌 조항이 별도로 존재하기 때문에 동성애자의 경우 입대 순간 잠재적 범죄자로 규정된다. 국방부는 군대의 전투력 강화를 위해 동성애를 척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으며, 문재인을 포함한 대다수의 대선 후보들 역시 같은 입장이다. 하지만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에 따르면 “군대 내 동성애 차별금지정책을 채택한 영국,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등에서의 연구들은 동성애자의 존재로 인해 군 작전 수행이나 기강, 사기에 부정적인 영향이 없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군 네트워크 모임에 따르면 “92조 6항이 적용된 사례를 살펴보면, 합의하의 동성 간 성행위로 인해 부대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등 실제로 기강, 전투력이 약화되었는지의 여부는 판단하지 않는다. 오로지 동성 간 성행위 자체만을 문제 삼아 이에 대해 비난과 혐오만이 표출된다.” 즉, 92조 6항은 육군 중앙수사단의 동성애자 색출 수사와 마찬가지로 동성애가 군 기강을 약화시킨다는 근거 없는 명분을 사용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합법화 시키는 반인권적 조항이다. 실제로 이에 대한 위헌 소원에서 헌법재판소는 5(합헌) 대 4(위헌)로 아슬아슬한 견해를 보였다. 92조 6항의 갑작스러운 폐지는 힘들겠지만 진정한 군 기강 확립을 위해서 군 내에 고질적으로 내재된 반인권을 뿌리 뽑기 위한 첫걸음으로 이를 점진적으로 폐지함으로써 소수자에 대한 국가의 만연한 폭력을 제거해야 한다.  

 

  진정으로 건강한 병영 문화와 군 기강 정립을 위해서라면 약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오히려 폭력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악폐습, 가혹행위 등의 반인권적 행태를 발본색원(拔本塞源)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번 동성애자 군인 색출 사건에 대해 육군 본부의 책임 규명이 명확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이 과정에서 불법한 행위를 한 것이 증명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또한 대선 주자들을 포함한 정치 제도권에서는 국방부의 명분 뿐인 시대착오적 혐오 논리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이에 브레이크를 걸고 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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