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집에 안 쓰는 필름 카메라 있어요?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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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5월05일 17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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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스타그램 타임라인에서는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일단 나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오른손 검지로 무신경하게 넘기면서 그 순간 동안 재빠르게 사진에 대한 나의 호오(好惡)를 판가름해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짧은 순간에 거의 흘깃 보다 시피 하며 넘어가는 사진들 중에서 필름 사진은 시선을 조금 더 붙잡아두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순간들이 두서없이 뒤섞인 타임라인 속에서도 필름 사진은 특유의 문법을 가지고 있어 다른 사람들이 올린 필름 사진일지라도 서로 동일성을 느낄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필름 사진 특유의 느낌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잘 찍은 사진에 대한 평가도 내려야 한다. 필름 사진만이라는 이유로 ‘좋아요’를 누르기엔 기준이 너무 관대하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리고 어떤 이의 필름 사진을 가만히 본다. 만약에 이 사진에서 필름 카메라라는 장치 혹은 필터를 걷어낸다면, 그 때에도 이 사진은 특별한가?

 

 이미지를 기반으로 하는 SNS에서 #필름사진 #filmphotography 와 같은 해쉬태그를 검색하면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필름 카메라 사용자들이 올린 멋진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으로 멸종위기에 몰렸던 필름카메라가 약 15년 만에 다시 사람들의 삶 속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쨌건 현재에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별난 일이다. 자연색에 가까운 선명한 사진이 터치 한번으로 찍히고, 거기다가 다양한 카메라앱과 필터앱으로 효과를 넣고, 스티커를 붙이고 꾸미고 그것을 몇 초 안에 전 세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을 가진 카메라를 모두 하나씩 가지고 사는 세상이다. 그런 대단한 문명의 이기를 제쳐두고 필름 카메라와 필름, 필름 현상에 돈을 들여서 그것을 취미로 삼는다는 것은 특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필름 카메라가 유행이 될 정도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그저 멋스러운 옛 필름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본인만의 고유한 특별함으로는 인정받기 어려워진 것도 사실이다.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다.  

 필름 카메라는 평범한 순간도 마치 기억 속의 한 장면처럼 만드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시대의 필름 카메라는 현재에 과거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되었다. 그 과거는 채 20년이 되지 않은 과거로 결국 유년시절에 대한 인간의 필연적인 노스탤지어를 자극하게 된다. 사람들은 필름 카메라를 들고 골목길을 찍는다. 동네 길거리의 오래된 간판을 찍는다. 초등학교 운동장을 찍고, 오래된 재래시장의 백열등을 찍는다. 그것은 정말로 80~90년대에 찍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질감을 가지고 있다. 빛바래고, 뿌옇고, 촌스럽고, 색은 선명하지 않고, 붉은색 혹은 녹색으로 물들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왜곡되어 출력된 기억에 불과하다.

 

정말로 과거에 필름 카메라만이 존재했던 시대에는 결코 그런 것을 일부러 찍지 않았다. 그 시대의 사람들은 그런 허름한 것들에서 미감을 느끼지 못했다. 몇 십 년이 흐르면서 기억 속에서 과거(혹은 유년시절)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련한 무언가로 흐릿해져 버렸다. 그래서 현재의 사람들에게 예전에는 구석의 배경에 불과했던 풍경이 오히려 과거에 대한 지배적인 이미지로 호출된 것이다. 어쨌든 그 과거를 모사한 현재의 필름 사진은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을 다시 내 손 안에 쥐어준다.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을 되찾는 일은 언제나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결국 그 감동을 누가 더 잘 만들어내느냐, 누가 노스탤지어를 가장 세련되고 아름답게 해석하여 사진을 찍어내느냐가 인스타그램 배 필름사진 경연대회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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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름 카메라가 가지는 효과는 대단해서 디지털 카메라가 그것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다. VSCOcam와 같은 카메라 앱의 경우 그레인, 대비, 페이드와 같은 설정값을 조절하여 필름 카메라 특유의 물 빠진 느낌, 빛바랜 색감을 모사할 수 있으며,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조작 실수로 인한 인화 효과를 필터로 구현해 놓기도 하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디지털을 아날로그로 바꾸고, 아날로그가 더 예술적이라고 여기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웬만해서 스마트폰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를 완전히 따라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필름 카메라는 원근법이 강하게 적용되어서 초점 이외의 뒷배경이 흐릿해지는 ‘아웃포커스’ 효과를 초소형 스마트폰 카메라가 구현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평면적인 느낌의 디지털 사진은 입체적인 원근법을 가진 필름 카메라보다 가볍게 느껴지기 쉽다.

 

 또한 디지털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과 불확실함, 우연성에서 야기되는 왜곡 보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감성적인 느낌을 살리기 어렵다. 인물을 찍을 때 사실 정말 사실적으로 찍는 것보다는 초점이 살짝 빗나가 조금 뿌옇고 흐릿하게 보이면 실물보다 좀 더 괜찮아 보이는 것이 때에 따라 필름 카메라의 매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후 바로 사진을 확인하지 못하니 현상 될 때까지 결과물을 기다리는 기대감 같은 것들도 장점으로 꼽는 경우도 있다. 필름 카메라의 우연성에 기대어 사람들은 현상 과정에서 빛이 들어가거나, 카메라 롤이 완전히 감기지 않아 사진이 불투명하게 겹쳐서 찍힌다던지 하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발생하는 것에서조차도 만족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필름 카메라가 주는 예술적인 효과나 아날로그 방식이 특별하고 매력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간단하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함’에 필름 카메라를 비교한다면 필름 카메라는 모두에게 버림받고 박물관에나 모셔져있는 빗살무늬토기 취급을 받아야 할 것이다. 사진 한 장을 찍을 때마다 필름을 감고 초점을 신중히 맞추고 일일이 조리개를 조작해야하는 수고로움과 필름을 잘 관리해서 현상에 맡기기까지의 수작업들은 분명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고 짜증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구형 필름 카메라들은 고장에도 취약하며, 부품이 없는 경우도 많아 고장 나면 고치지 못하거나, 온전치 못한 상태로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아무리 현상의 우연적인 효과 역시 사진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빛 노출에 민감한 필름은 자칫하면 엉망인 사진을 남기기 일쑤이다. 사진 전문가들은 디지털 카메라 또한 소위 말하는 감성적인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술력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금 더 수고를 하거나 돈을 들여서 스마트폰의 고급 필터를 이용하는 것도 필름 카메라에이 필적하는 결과물을 낼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나 어쨌든 아날로그의 그 모든 과정을 즐긴다면 위의 것들은 굳이 문제 삼지 않아도 될 부분이기도 하다. 디지털과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은 취향의 영역에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취향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힙스터 비판론이 등장한다. 힙스터는 간단히 말하면 남들은 안하는 새롭고 독특한 것을 하는 개성 있는 현대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을 칭한다고 할 수 있다. 필름 카메라에 대한 네티즌들의 의견을 보면 “필름 카메라는 힙스터들의 머스트 해브 아이템”, “필름 카메라는 샀지만 힙스터는 아닙니다.”와 같이 필름 카메라는 그것이 가지는 독특함과 패션 아이템으로서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주요 계층인 힙스터와 연관되어 있다. 힙스터들이 필름 카메라를 애용하는 것이 어떤 문제를 발생시키는 지는 소설과 김사과가 쓴 <힙스터에 주의하라> 서평의 한 구절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힙스터들은 삶의 모든 영역을 소비자로서 대한다. 즉, 자신을 표현해줄 '힙'한 품목을 마치 백화점의 구매 담당자처럼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모으는데 삶을 소비한다. 그리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발견된 순간 깜짝 놀라 도망치듯이 다음 품목으로 옮겨간다. … 새로운 패션을 위해서 현실을 액세서리로 만든다. 이것은 그들이 하층 계급의 현실을 심미적으로 착취하는 데서 전형적으로 드러난다. 노동 계급들이 마시는 맥주, 그들이 입는 옷, 그들이 사는 지역의 날것인 풍경, 빈티지에 대한 애호, 언뜻 이 모든 것은 타자들에 대한 열린 태도로 느껴지지만 힙스터들은 오직 그들이 아름답기 때문에, 아름다운 타자로 남아있을 때에만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본인의 취향을 위해 “하층 계급, 노동자 계급을 심미적으로 착취하는 것.” 실제로 영등포구 문래동 금속 공업 밀집구역에는 노동자들의 사진을 함부로 찍지 말라는 표지판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필름 카메라 사용자들이 그런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지만 필름 카메라가 추구하는 개성과 취향의 영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타자화와 대상화의 문제들이 발생하게 된다. 오래되고 낡은 것에 향수를 가지는 것은 삶의 아름다움을 찾는 하나의 방식이지만, 자신의 감성의 전시를 위해서 타인의 삶을 함부로 낭만화하고, 향수의 필터를 적용하는 것은 누군가의 진짜 삶을 유린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개인의 취향에 있어서 정치적 올바름을 지켜야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현실의 아름다움을 향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이 최초로 발명되고 나서도 회화는 여전히 하나의 선택지로 남았듯이 ‘필름 카메라’ 역시 순간을 기록하는 하나의 선택지가 되었다. 이 시대에 하나의 선택지가 늘어났다는 것 조금 더 다양한 것을 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문명의 이기를 누리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필름 카메라의 귀환은 새로운 문화적 현상으로서 본격적인 디지털 시대에 현대인들이 아날로그를 어떻게 기억하고 남길 것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필름 카메라는 때로는 진정한 추억의 장치로, 혹은 시대에 뒤쳐진 구식으로, 혹은 개인의 과시용으로 이전 시대보다 훨씬 다양한 의미와 용도로 우리와 함께 하게 되었다.


다음 글을 참고하여 작성된 기사입니다.  
*「필름카메라를 사지 않기로 했다」, 빛샘.
*「홍대 앞 좀먹은 힙스터들, 다음 타깃은 이태원?」, 김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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