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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스에서 왕이 위협받는 체크(check)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진퇴양난의 상태를 ‘스테일메이트’(stalemate)라고 부른다. 작금의 한국 외교는 정확히 ‘스테일메이트’상태이다. 사드를 둘러싼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첨예한 가운데 정작 사드배치의 당사자인 한국은 이 둘 사이에 끼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드는 배치되고 있고 중국의 보복은 시작된 것이 현실이다. 어지러운 국제정세이지만 가만히 있는 것이 최선은 아니다. 사드 배치의 당사자인 한국으로서는 사드배치를 둘러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의 사드 보복 기저에 있는 국제정치적 맥락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스스로의 외교적 공간을 창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만 한다. 한꺼번에 다루기에는 넓고 어려운 주제이다. 하지만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반드시 고민해봐야만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각각의 영역을 개략적으로라도 살펴보려 한다. 

 

사드를 둘러싼 파워게임

  최근 단행되고 있는 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는 몇 가지 국제정치적 맥락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제정치의 가장 기본 전제는 ‘무정부 상태’이다. 각 국가의 행위를 최종적으로 규제할 그 어떤 상위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각 국가는 무정부 상태에서 상대 국가의 군비 확장 의도를 알 수 없다는 끊임없는 불안 속에서 스스로의 군비를 확장해나가는 ‘안보 딜레마’를 겪게 된다. 

 

  중국은 사드가 동북아 군사균형에 큰 변화를 가져올 무기라고 판단하여 ‘안보 딜레마’를 겪고 있기 때문에 강경한 자세로 한국에 사드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사드 미사일 자체는 방어용 무기이지만 X밴드 레이더는 모드만 바꾸면 바로 북경까지 탐지할 수 있는 강력한 성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전에서 적의 정보를 입수하는 것은 필수적이기 때문에 중국이 X밴드 레이더를 심각한 위협으로 느낄 만한 근거가 있다. 

 

  또한 중국은 오랫동안 국제정치에서 ‘주권(Sovereignty)’에 집착해왔다. 굉장한 자부심을 가져왔던 중화문명이 19세기부터 서구문명에게 철저히 굴복당한 이후, 현대의 중국은 자신의 주권에 위협이 된다고 느끼면 냉전 시기 동맹이었던 소련까지도 배척할 정도로 주권 지키기에 열중해왔다. 결국 중국의 민족주의자(Nationalist)들이 근대화 과정에서부터 강조했던 ‘주권’은 국제정치의 필연적인 ‘안보 딜레마’개념과 만나 오늘날 중국이 사드배치에 더더욱 신경을 곤두세우게 만들었다. 

 

  반대로 한국과 미국은 사드가 중국을 겨냥한 것이 아니고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사드 배치의 명분이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사드의 비용 대비 실전 가치는 검증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진성준 전 국회의원이 폭로한 2013년 국방부의 보고서에도 드러나 있다. 즉, 사드 배치는 순수하게 그 자체의 군사적 가치판단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거시적 국제정치 맥락에서 동북아 한미일 동맹의 MD체계 초석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오바마 행정부 임기 말부터 시작된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pivot to Asia)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서 아시아에서 중국이 패권을 쥐는 것을 막으려는 미국의 의도가 드러나 있다. 

 

 즉, 사드배치는 단순히 군사무기 하나를 더 들여오는 것을 넘어 중국과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세력대결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주축으로 한 동맹을 더욱더 강화하여 중국을 견제코자 하고, 중국은 자신의 주권이 위협당할 것이라는 ‘안보 딜레마’에 빠져 한국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한국은 사드배치 결정 과정에서 정확한 원칙 없이 우왕좌왕 하는 모습을 많이 보였고 지금도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어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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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교적 벡터를 스스로 만들자

 우선 명심해야 할 점은 중국과 미국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옵션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금 한국은 사드 배치를 서두르며 중국을 포섭하려는 노력을 소홀히 하고 있는데 이는 중-북-러와 한-미-일의 완전한 대결체제를 앞당겨 아시아에서의 신냉전 체제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한국이 장기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외교는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까지 끌어안는 외교이다. 한국이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북핵문제를 외교적 핵심 달성 과제로 삼고 국가의 행동 원칙을 세운 뒤 지역 내 의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외교를 행해야 한다. 단순히 기계적 중립을 지키는 ‘등거리(equidistant)외교’로 인해 중미 세력대결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아닌, 아시아 안보 불안의 가장 큰 축인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드배치를 다자주의적 협력을 촉발시키는 촉매제로 활용하는 프레임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를 자세하게 살펴보면 먼저 한국은 중국에게 사드배치 논란의 궁극적 원인이 북핵문제라는 것을 강력하게 어필하고 사드배치 카드를 이용하여 중국이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하게끔 해야 한다. 표면적인 ‘사드배치’라는 현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근원적 문제인 ‘북핵’을 해결해야만 아시아에서의 안보 불안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주장하고, 사드배치는 임시적 조치로서 북핵문제 해결에 상당한 진전이 있으면 언제든 철회될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하여 중국에게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해소시키면서 동시에 미국의 최대 골칫거리인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이끌어내기 위해 한-미간 사드배치의 방향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떤 방법과 수단도 가리지 않겠다고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에 맞추어 중국과 미국이 ‘전략적 우려 해소’와 ‘북핵문제 해결에 대한 협조’를 맞교환할 수 있도록 한국이 사드배치 의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가야 한다.

 

지역 내 판을 짜는 외교

 고정된 판에서의 스테일메이트는 빠져나갈 도리가 없다. 그러나 체스판 자체를 흔든다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이 중국과 미국이 가진 ‘총체적 권력’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사드배치의 당사자로서 이 이슈를 아시아 질서의 새로운 판을 짜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는 ‘이슈적 권력’은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 ‘이슈적 권력’을 위의 원칙들을 실행하는 데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 전체의 단합된 여론과 지도자들의 긴밀하고 노련한 외교술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주변국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정권에 따라 바뀌지 않는 국가적 외교 대원칙을 세워 이를 착실히 실행해나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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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5 17:40:56 최종수정 2017-03-25 22: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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