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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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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외교부, 그들의 외교에 국민은 없었다.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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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7년01월27일 20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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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에게 겨울 방학은 꿈같은 휴가이다. 대외활동, 공부, 동아리, 그리고 알바까지 휘몰아쳤던 한 학기를 끝내고 얻은 겨울 방학은 그저 꿀 같기만 하다. 몇몇의 대학생은 겨울 방학에도 계절 학기와 인턴,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바쁘게 지내지만, 많은 대학생들은 오래간만의 휴식을 만끽하며 방학을 즐긴다. 

 

  두 달 남짓한 방학 동안 대학생들은 가까운 곳으로 혹은 비행기를 타고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가족들과, 친구들과, 혹은 혼자 설레는 마음으로 떠난 곳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했다면 믿을 곳은 어디일까? 아마 대한민국 외교부일 것이다.

 

  하지만 해외에 있을 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외교부에서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고 있다. 

 

  지난 15일 대만 여행을 갔던 대학생 3명이 현지 택시기사에 의해 성추행을 당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유사사례 신고에서 무려 8명의 다른 한국 여성이 성추행이 의심된다는 신고를 한 것으로 보아 성범죄 피해 사건의 파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피해자들은 ‘제리 택시 투어’ 이용 중 택시 기사가 건넨 요구르트를 마시고 정신을 잃었다고 한다. 금전 피해가 없었던 점과 피해자 중 한 명이 성추행 당한 장면이 기억난다고 진술한 것으로 미뤄 성폭행 피해가 추정된다.

 

상반된 그들의 입장, 무엇이 팩트인가?

 

  피해자들은 한 줌의 희망을 잡고 주 타이페이 한국대표부 긴급전화로 새벽 3시 30분 경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돌아온 건 한 숨 섞인 짜증이었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당직 행정직원은 ‘지금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다’라며 ‘통역제공은 어려우니 날이 밝는 대로 경찰서에 신고부터 하고 연락을 달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사실과 다르다며 상반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성폭력 피해에 대한 신고 여부는 당사자가 결정해야 하는 것이기에 ‘날이 밝는 대로 신고 여부를 결정한 후 연락을 주면 통역을 제공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녹취가 없기에 서로의 주장이 계속해서 대립하고 있지만, 팩트는 의외로 명백하다. 성폭행 용의자가 피해자들에게 다시 접근해오는 긴박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외교부의 도움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고, 현지 교민들의 도움으로 신고를 했으며 통역이 제공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현지 기자들이 호텔을 둘러싸고 있어 호텔에 들어가지 못할 때에도 외교부가 아닌 현지 교민이 보호처를 제공했다.

 

  사실 팩트 여부를 떠나 외교부의 ‘알아서 하라’는 식의 대답은 절대로 용납될 수 없다. 피해자들의 전화를 받는 즉시 그들을 보호하려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온당한 대처이지만 영사는 언론의 보도가 시작되어서야 비로소 경찰서에 나타났다. 

 

  재외공관은 해외에 있는 국민이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도움의 손길을 건네야만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재외공관이 국민의 안전을 저버린다면 대한민국 외교부와 재외공관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저자세로 대응하는 재외공관의 소극적인 태도에 회의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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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외교부의 늑장대응에 비난여론이 들끓자 한동만 외교부 재외동포영사대사는 지난 24일 테러나 지진 등 해외 사건사고에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외교부 산하에 위기상황실 설립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외에서 사건 발생 시 자국민 보호를 위한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만에서 성폭행 피해를 입은 관광객들이 대만 주재 한국대표부에 도움을 청했을 때도, 지난해 10월 필리핀에서 한국 사업가가 현지 경찰에 의해 경찰청사 안에서 살해된 사건이 있었을 때도 영사콜센터 대응 매뉴얼과 체계는 이미 구축되어있었다.

 

  24시간 운영되는 영사콜센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일어났을 때마다 매뉴얼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으며, 우리 정부는 늘 미온적으로 대응해왔다. 외교부는 입장 표명에서 늘 ‘유감’이라는 단어를 쓰며 ‘철저 수사 촉구’만 외칠 뿐, 적극적이고 즉각적인 대응은 없었다.

 

  관리 체제의 확대 개편만이 답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체제의 부재가 아닌 실무자들의 미숙한 업무대응이다. 새로운 체제를 다시 도입하기 전에 미숙한 업무대응이 기강해이로부터 비롯되었는지, 과도한 업무량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매뉴얼 교육에 허점이 있었는지 먼저 파악해보길 바란다.

 

국민을 위한 외교부로 거듭나자

 

  지난달에는 칠레 주재 외교관이 현지 10대 여학생을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대한민국은 재외공관의 기강문란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재외공관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져 있고, 비선실세 국정농단으로 인해 정부의 권위가 약해진 만큼 외교부는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우선 외교부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객관적으로 밝혀야만 한다. 문제가 있다면 해당 공관에 책임을 묻는 등 자국민을 보호하겠다는 외교부의 의지를 보여야만 한다.

 

  헌법 2조 2항에 따르면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진다. 국가는 국민이 있는 그 어느 곳이든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해야한다는 뜻이다. 외교부는 헌법 2조 2항을 명시하여 ‘구멍’난 조치를 하기보다는 국민을 위한 ‘즉각적인’ 조치를 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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