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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평가를 멈춰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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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12월16일 19시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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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었던 대학생들의 학기가 끝나가며 기말고사 및 종강의 시간이 다가왔다. 시험기간에는 평소에 관심 없던 것들이 갑자기 신기해지는 등, 많은 심리적 압박을 견뎌내기 위한 저마다의 생각들이 있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공부 빼고 다 재밌는’ 기간이라고 불리겠는가.

 

 시험 직전의 절박한 상황이 다가올 때, 종종 학생들이 모인 장소에서는 이러한 얘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내일 보는 과목 절평이라 괜찮아.”라던가, “21명이라 상평이야. 절평이었으면 좋겠다.”같은 대화로 역시나 공부를 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상평, 절평’이란 상대평가와 절대평가를 줄여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요즘 학생들의 줄임말 사용의 한 예다.

 

상대평가 제도

 

 90년대 후반에 등장하기 시작하여 2010년 이후로는 대부분의 대학에서 상대평가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이른바, ‘학점 부풀리기’로 대학들에서 성적을 너무 잘 주는 바람에 능력 있는 학생들 뽑고 싶어 하던 취업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모호해진 것이다. 그래서 상대평가를 통해 경쟁심을 고취시키고 각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하도록 조치한 것이 도입이 된 이유라고들 한다.

 

 절대평가로 시행되던 시기에는 절반이상이 A학점을 받는 등의 학점 인플레이션이 심했다. 강의를 이끄는 교수 입장에서는 학점을 잘 주지 않을 경우, 신청하는 학생들이 줄고 결국 폐강에 이르게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학점을 잘 주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A대학의 경우에는 하위 5%에게 무조건 D를 부여하는 방식을 쓴다. B대학은 A학점과 B학점을 합쳐서 70%를 유지하는 상대평가제다. 각 대학마다 ‘상대평가’라는 이름으로 시행되고는 있지만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부분적으로 소규모 강의인 경우에는 절대평가를 도입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진정한 상대평가제인가

 

 선의의 경쟁을 강화시켜 공부의지를 높일 것만 같은 상대평가 제도는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린 것 같다. 상대평가를 도입했더라도 그 부여하는 폭이 상위 70%까지 B학점 이상을 부여하는 등 여전히 학점 인플레이션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2012년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4년제 일반대학 182개교의 2011년 학점분포 현황을 보면 이를 확실히 알 수 있다. 

 

 82개교 졸업생의 졸업평점 평균 분포는 A학점 34.2%, B학점 55.2%이다. 즉, 89.4%가 B학점 이상이다. 2010학년도 B학점 이상 비율 90.9%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반면 C학점은 10.0%, D학점은 0.6%에 불과했다. 그 결과, 본인이 정한 학과의 학습 커리큘럼 내에서 배우고 싶은 강의를 선택해서 듣고자 하는 학생들보다는, 학점을 잘 주는 강의를 듣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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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본질을 파악하라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업에 대한 성취도는 강의를 담당한 교수가 판별한다. 그러나 상대평가제는 담당교수의 평가 방식이 대학에서의 기준에 의해 다소 무시될 수 있는 상황이 주어질 수 있다. 또한, 인원수에 관계없이 모두가 일정 이상의 수준을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학은 앞으로의 사회구성원이 되기 위한 인재양성의 장이다. ‘경쟁’이라는 단어가 과연 대학생활에서 필요한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의 침체된 경제상황과 취업에 대한 불안함이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그 전에 대학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5년 2학기부터 고려대학교는 일부 교양과목을 제외한 과목에서 원칙적으로 상대평가를 없앴다. 학업에 충실하고도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의 입장과 학점 비율의 제한 때문에 동점을 받은 우수한 학생들에게도 불리한 평점을 줘야했던 교수들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2014년에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은 Pass와 Non-Pass만 나누는 체제로 바꾸었다. 그 결과, 학생들의 학업성취도는 크게 늘어나게 됐다. 또한 전통적으로 의대생들에게 부족한 요소로 꼽혔던 협동심과 학습동기까지 상승했다. 다수를 실패자로 만들어야 했던 상대평가제의 가장 큰 요인은 다시 언급하지만 ‘학습의욕 고취’에 있다. 그러나 연세대의 의대사례를 통해 지켜보면 그것이 기우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절대평가가 항상 좋은 것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교육은 사회에서의 어떤 지정된 위치로 보내기 위함이 아니라, 고등 교육을 받아 해당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올리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선발’을 위한 시험이라면 상대평가제가 사용되어도 좋지만 성취도의 ‘확인’을 위한 부분에서도 필요한가?

 

 무한경쟁체제에서 각박해져가는 현대 우리의 삶에서, 우수한 자와 우수하지 못한 자를 가르는 것이 대학에서의 본질인가. 현재 학습의욕이 상대평가제를 통하여 고취되고 있는지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어느 대학에서의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학생들의 학습정도를 평가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평가방법은 절대평가다. 상대평가로 인해 학업에 충실하고도 낮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A, B 비율로 불편을 겪을 때도 있다. 하지만 본교의 상대평가 위주의 평가 방식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사회로 나아갈 대학생들의 동료애 등의 따뜻한 정서가 평가를 통한 경쟁에 휩쓸려 난도질당하는 일이 없도록, 지금 시행되고 있는 상대평가제는 적절한 보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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