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촛불시위의 생물학적 분석 - 연필 대신 촛불, 연대와 공동체, 폭력 아닌 평화 > 젊은이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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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살아있는 외침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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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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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11월 12일, 주최 측 추산 약 100만 명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와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규탄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쳤다. 이 날 IFS POST 청년기자단 역시 정기회의를 마치고 삼삼오오 광화문으로 향했다. 

 

 엄청난 인파로 인해 한 번 길을 잘못 들어서면 마치 거대한 해류에 휘말린 듯 1시간가량을 헤매야했던, 다양한 단체와 계층에서 외치는 여러 구호들과 마주할 수 있었던 이번 집회는, 한마디로 살아있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이 과정을 함께한 세 명의 청년기자가, 마치 하나의 생물 같았던 집회를 세 개의 시각으로 쪼개어 바라보기로 했다. 

 

연필 대신 촛불을,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 

 

최문교 ifs POST 청년기자 / 경희대학교 국제학과 2학년

 

 주최 측 추산 약 100만 명의 국민이 모인 이번 집회에서는 유난히 ‘교복 부대’의 움직임이 확연하게 눈에 띄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중·고등학생들은 부모님이나 친구들의 손을 잡고 광화문 광장으로 나섰다. 밝고 예쁜 것만 보아도 모자랄 청소년들은 연필을 잠시 놓고 촛불을 들었다. 

 

 ‘박근혜 퇴진’을 외치며 성난 민심 속으로 들어온 아이들은 하나 같이 ‘나라가 걱정되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19 살 안모군 (고3, 오산 거주)

 

 “고등학교 때 ‘법과 정치’ 공부를 하며 교과서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교과서와는 달리 뉴스에서는 세월호 사건, 국정교과서, 일본 위안부 합의 등 절망적인 현실을 끊임없이 보여줬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으면서 살고 있었지만, 최순실 사건이 터지게 되면서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을 품고 거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마천의 사기는 정치를 다섯 가지로 나눕니다. 그 중 안 좋은 정치 두 가지를 뽑자면, 국민들을 형벌로써 다스리는 정치고, 가장 안 좋은 정치는 국민들과 다투는 정치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가장 안 좋은 정치인 국민들과 다투는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만 욕심을 버리시고 자리를 물러났으면 하는 것이 제 바람입니다.”

 

 15살 이모양 (중2, 마포 거주)

 

 “저희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어른들이 좋은 분을 뽑았을 거라 믿었는데 나라가 한 순간에 이 모양 이 꼴이 되다니... 정말 날벼락을 맞은 것 같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공부하는 이유가 비단 나라의 외적인 성장만을 도모하기 보다는, 기강과 시스템을 올바르게 바로잡는 문제로 향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철학가가 되고 싶습니다. 철학가가 되어 제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서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이 만들어져야만 합니다.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회가 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18살 정모양 (고2, 구리 거주)

 

 “실은 이번 집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습니다. 물론 참여 할 생각도 전혀 없었고요. 하지만 최순실이라는 여자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가지고 논 것 같아 울분이 터졌습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한낱 민간인 무당에게 빼앗긴 것 같아 화가 났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문은 진정한 사과가 아닙니다. 물론 이번 일이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닐뿐더러 간략한 사과문조차 생방송으로 하지 않고 녹화 방송으로 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기자들로부터 질문도 받고 성심성의껏 답변도 하였는데 질문은 일체 받지 않는다는 점도 너무 속상합니다.”

 

 19 살 이모양 (고3, 안산 거주)

 

 “수능을 잘 봐서 뭐하겠어요. 좋은 대학을 가도 내가 살고았는 나라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개인적 미래보다는 사회 전체의 향방이 더 중요합니다. 또한 이 시위에 나오는 것자체가 하나의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여러 사람들의 함성소리를 들으며 제가 이 거리로 나온 이유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나는 진정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하기를 원하고, 대한민국을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만들기 위해 수능을 뒤로 하고 거리에 나왔다는 의지를 다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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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4·19혁명

 

 4·19혁명은 고등학생들의 움직임을 시발점으로 확대되었다. 이들의 움직임은 사회 각계각층의 참여를 이끌어냈고, 결과적으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정상적인 독재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었다. 

 

 이번 집회 역시 학생이 중심 세력이 되어 민주주의를 지켜 낸 4·19혁명과 무척이나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중·고등학생은 거리로 나와 국민주권의 힘을 보여주었고, 광화문에서 ‘사회 정의’를 요구한 아이들은 그 누구보다 건강한 가치관과 올바른 역사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번 집회로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변화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도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화될 수 없다. 

 

 모든 국민이 각지에서 올라와 다 같이 모여 소리를 내는 것이 변화의 첫 시작이다. 꾸준히 목소리를 높이고 참여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다 

 

 일각에서는 “청소년은 정치적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으며 선동되기 쉽다.” 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지난 5일 화제가 된 대구 여고생의 발언처럼, 실제 현장에서 만나 본 학생들은 그 누구보다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정확하고 깊이 있는 문제인식을 지기고 있었으며, 자신만의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현 사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번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의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약 100만 명이 모인 이번 집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그 중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가 될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피켓과 촛불을 들고 행진을 하고, 삼삼오오 자발적으로 모여 쓰레기를 치우고, 당당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대한민국에 명령하는 청소년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감히 확신해본다.

 

외부세력이 아닌 순수함으로, 연대를 넘어 공동체로

 

지수연 ifs POST 청년기자 / 고려대학교 미디어학부 1학년

 

100만의 광화문 시위, 순수를 부르짖다.

 

 12일, 100만의 촛불 속에서 가수 이승환은 야당에게 일침을 가했다. “야당 정치인 여러분, 혹시나 제가 그 정치인들 편인 것 같아서 좋아하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 저를 좋아하지 마세요. 저는 시민들의 편이지 정치인 편은 아닙니다.” 이후 이승환은 야당 정치인들에게 정략적 계산을 앞세우지 말고 국민의 목소리를 따르라며 요구했다. 

 

 그는 본인에게 씌워질 정치적 색깔이 민주주의를 위한 순수한 의도를 해칠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한 것이다. 최근 들어 특정 정당 혹은 운동권과의 연합을 거부하고 개별적으로 정치적 참여를 이어나가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른바 ‘혼참러’, 혼자 시위에 참여하는 개인을 뜻하는 신조어인데, 이를 마냥 개인주의 풍조 확산의 영향만으로 바라볼 수는 없다. 개인적 정치참여의 증가는 ‘외부세력 프레임’으로 순수한 민의를 왜곡하는 미디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전략적 행위이자, 정치권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이 불신이 극에 달했다는 현상 중 일부로 바라보는 것이 맞다. 

 

외부세력 프레이밍을 거부하는 이유

 

 그 동안의 미디어는 시위대에 ‘외부세력’ 프레임을 적용하는 것을 즐겨왔다. 특정 단체의 폭력성에만 주목하면서 시위의 정당성을 해치거나, 또는 ‘외부세력이 있었는가?’와 같은 질문 따위로, 집회에서 중점적으로 말하는 본질이 아닌 곁가지들에 어젠다를 셋팅해왔다. 

 

 대표적으로 사드 배치 문제를 둘러싼 갈등양상에서 외부세력 프레이밍은 적극적으로 작동했다. 사드 배치는 안보의 문제이고, 이는 곧 전 국민에게 해당되는 정치적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외부 세력이 존재하는가?” 에 시선이 옮겨지면서 문제의 본질이 흐려졌다. 

 

 외부세력으로 규정하는 것과 특정 집단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것 모두 본의를 왜곡하는 ‘외부세력 프레이밍’이다.

 

무차별적 연대를 거부하다. 

 

 이에 순수한 의도가 프레이밍에 의해 오염되는 것을 막고자, 집회 내에서 집단의 연대를 거부하는 문화가 확산되었다. 이화여대의 미래라이프 대학 반대 시위는 무차별적 연대 거부 문화의 시발점이자,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화여대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의 세월호의 노란 리본이나 위안부 팔찌, 페미니즘 티셔츠 등의 착용을 금지했다. 또한 타 대학과의 연대 시위를 거부하고, 시위 주도 세력을 키우지 않는 등 학내 민주주의를 공고히 했다. 

 

고려대학교의 내홍(內訌)

 

 일례로 고려대학교는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내홍을 겪었는데, ‘백남기는 죽이고, 최순실은 살렸다.’는 슬로건이 (국정농단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안을 기재하여) 본질을 흐렸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다. 

 나아가 민중연합당과 같은 외부 단체의 연서를 받은 총학생회는 더 이상 대학교 전체를 대표할 자격이 없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심한 갈등으로 번져나갔다.

 

 총학생회가 학교 이름을 내걸 때에는 현안과 사태의 본질에 집중하여야 한다. 이번 시국 선언은 민주공화국이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것 (그들이 원하는 방향의 정책을 실현하지 않은 것) 이 아니라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으로 민주공화국이 파괴된 것을 문제 삼는 것이었다. 따라서 학생들의 본질적 분노에 기타 안건을 얹히는, 이른바 ‘끼워 넣기’로 인해 집회의 결집력을 방해하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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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워 팔기를 멈춰라.”

 

 집회에 참여한 이들 중 일부 사람들은 “아니, 나는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해야 된다는 생각에는 동의하지만, 그 정부의 정책방향이 모두 틀렸다는 데엔 동의하지 않아.”

 “왜, 노동개혁이나 백남기 농민 추모와 같은 어젠다에 대한 한 쪽의 의견을 강요받아야해?” 하며 집회 방식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집회 현장에서의 자유발언대는 말 그대로 자유롭게 발언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고유의 자율성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시국 사안 이외의 안건을 다소 무리하게 끼워 넣음으로써, 시국에 대한 분노를 기타 주장에 대한 지지로 포장하려는 행위에는 우려를 표한다. 박근혜 하야를 함께 외친다고 해서 발언자의 모든 정치적 의사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발언자의 정치 이념을 강요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폭력임과 동시에 민주주의의 다양성을 해치는 행위다. 따라서 주최 측은 자유발언대가 특정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데 남용되지 않도록 자정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이번 집회를 개개인의 정치적 성향이 온전히 유지되며 순수한 공동체가 공존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연대를 넘어 공동체로, 공론의 장을 형성해보자. 

 

 개인적 정치 참여의 확산은 현 정치권에 대한 개탄이다. 여야 어느 쪽도 민중의 의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민중의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따라서 공통된 분노를 바탕으로 한 연대가 가능한데, 이것을 단지 (정치 불신에 대한 도피에 의거한) 개인적 차원에서의 정치 참여에만 그쳐선 안 된다. 동시에 한 쪽의 의견에 치우치는 것에 의해 연대가 방해받아서도 안 된다. 

 

 시민의 목소리 모두가 보존되는 공론장을 형성해볼 것을 제안한다. 가령, 그런 그림이다. “우린 박근혜 대통령의 실정에 분노하고, 하야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이 모두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한쪽의 의견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토론합시다. 박근혜가 하야한 뒤엔 어떻게 이 나라를 이끌어갈지, 어느 쪽의 의견이 더 논리적이고 타당한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대한민국의 변화는, 여기서 시작될 겁니다.” 

 100만이 한 목소리로 특정 목적을 이루어낼 수 있도록 연대함과 동시에, 기타 여러 사안에 대해서 각기 다른 생각을 지닌 여러 개의 공동체가 상존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자. 그렇게, 우리의 순수성을 보존하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보자. 

 

폭력이 아닌 ‘평화’로, 하야를 넘어 ‘민주주의’로

 

최정윤 ifs POST 청년기자 / 한양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3학년

 

 지난 토요일 진정한 민주주의를 소망하는 100만개의 촛불이 한 자리에 모였다. 많은 숫자의 사람이 한 데 모인 것에 비해 시위는 비교적 체계적이고 차분히 이뤄졌고, 폭력 시위로 변질되지 않은 것에 대해 많은 언론은 시민 정신이 살아있다는 보도를 연신 내보냈다.

 실제 집회에 참가한 많은 시민들도 자신의 의견을 평화적으로 전달한 것에 대해 스스로를 칭찬하며 ‘민주주의의 희망을 보았다’고 말했다. 

 

 규정대로라면 청와대 100m 근방까지는 접근이 가능했다. 하지만 행진을 하는 길목에서 맞추진 것은 청와대와 무려 1km 떨어진 곳에서 차벽을 설치하고 시민들을 가로막은 경찰들이었다. 이 날의 열기 때문이었는지, 진정한 바람 덕분이었는지, 예정된 집회 시간인 10시가 넘어도 수많은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모두들 조용하게, 동시에 비폭력적으로 청와대로의 길을 열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 과정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욕을 하는 사람은 시민들에 의해 대열에서 나가기를 정중히 요구 받았다. 

 시민들이 자체적으로 평화를 검열했으며 비폭력에 대립하는 것들을 스스로 제거한 것이다. 

 

 한 때, 술에 취한 듯 다소 격양된 50대 남성이 경찰에게 폭력을 행사하려다 이내 시민들에 의해 버스 위에서 끌어 내려졌다. 그가 울분을 토해내며 외쳤다. “이 사람들아. 폭력 없인 아무것도 이룰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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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시위야? 도대체 이뤄낸 게 뭐 있는데?

 

 이렇듯 한편에는 ‘실질적인 정치적 개입’을 이뤄내지 못했다며 그 날의 시위에서 무기력함과 좌절을 느낀 시민들도 있다. 개혁을 위한 운동이라기 보단 많은 사람들이 모인 한낱 문화제에 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사실, 폭력 시위 없이는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데에 한계를 절감했다는 이들에게 마냥 평화만을 강요할 수는 없다. 대통령은 작금의 상황에서도 억지를 부리며 정국을 어지럽게 만들고 있고, 시민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현실에, 완벽히 폭력을 배제한 채로 변혁을 이루어낼 수 있다는 생각은 다소 유토피아적 발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위에서의 폭력은 절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1차, 2차, 3차적 폭력에 대한 문제를 야기하고, 더 심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여러 폭력들에 대한 개념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살펴보자. 

 

 (그러나 이를 살펴보기에 앞서 ‘폭력 시위’라는 명명 자체에 반대한다. 진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폭력 시위’라는 단어에서의 ‘폭력’은 경찰과 기득권이 규정해 버린 프레임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전개되는 글에서의 ‘폭력 시위’는 폭력성을 전제로 하는, 폭력적인 행위에 근거한 시위를 의미한다. 글의 편의상 ‘폭력 시위’라고 표현하면서도 다소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기에 미리 밝혀두고 시작한다)

 

폭력은 물리적인 공격만을 뜻하지 않는다. 

 

 폭력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직접적이며 가시적인 주관적 폭력이다. 명확히 식별 가능한 행위자가 저지르는 범죄와 테러, 폭동 등과 같다. 이와 같은 폭력의 분출은 어떤 배경 속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 배경 속엔 우리가 보지 못하는, 그래서 더욱 경계해야 하는 또 다른 폭력이 있다. 가령 습관적인 언어나 상징의 사용을 통해 재생산되는 사회적 지배관계나 경제체계와 정치체계가 정상적으로 작동되는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뤄지는 객관적 폭력이다.

 

 상징적이고 구조적인 이 폭력은 ‘주관적 폭력’의 배경이 되기 때문에 인지하고 구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객관적 폭력과 주관적 폭력을 구분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주관적 폭력을 규정하는 ‘객관적 폭력’이 진짜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폭력집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세 가지 폭력

 

 첫 번째로 발생할 수 있는 폭력은 가시적인 1차적 폭력이다. 불법 시위와 과잉 진압으로 조성되는 신체적, 물리적 폭력이다. “쇠파이프로 맞기 싫은 만큼 누구를 쇠파이프로 때리는 것이 싫기에 평화를 선호한다.”와 같은 명제는 가장 직접적인 ‘주관적 폭력’에 해당된다. 

 살수차와 최루탄 같은 힘과 맞서는 그리고 이에 희생되는 모든 것은 가시적인 폭력에 불과하다. 정말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뿌리 깊게 박혀 있음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2차, 3차적인 폭력이다. 

 

 2차적인 폭력으로 가장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발생할 수 있는 미시적 폭력이다. 가령 물리적 폭력의 결과로 수감돼 다음날 출근을 하지 못해 직장에서 인사상의 불이익을 당한다거나, 전과기록이 남아 다른 직업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게 되는 사례 또한 일종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미시적 폭력에 불과하다. 

 

 우리는 진짜 폭력, 3차적 폭력에 주목해야 하는데, ‘폭력 시위’를 발생시킨 부패하고 불평등한 대한민국이다. 입시, 학사 할 것 없이 본인의 생활과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특권과 부패를 보여준 정유라 게이트와 조세 집행 과정에서의 부패, 이른바 ‘갑질’과 라인문화, 비정상적인 부의 축재를 한 번에 보여준 최순실 게이트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방관하고 사태에 대한 책임을 외면하는 박근혜 게이트까지, 우리는 이미 모든 생활의 전반에서 불평등한 대한민국 사회에 폭행당하고 있다. 

 

폭력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본질적 폭력은 폭력시위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가령 다음 집회에서 청와대를 포위하고, 강제적인 수단을 이용해 대통령의 생명이나 지위를 위협하여 결과적으로 하야하게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당장 분노의 대상인 대통령이 물러난다고 해서 갑자기 평등하고 아름다운 민주공화국이 도래할까?

 

 물론 이를 지켜보던 정치인들에게 ‘경고’는 할 수 있겠지만, 3차적인 폭력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임이 자명하다. 감히 단언컨대, 광화문 광장에 나온 100만 명이 원하고 진심으로 바라는 것은 박근혜 하야와 같은 일차원적인 개혁이 아니다. 상식과 시스템이 무너진 사회가 복구되는 것을 넘어, 이번을 계기로 한국 사회 구조가 새롭고 정의롭게 구성되길 소망한다. 

 

평화는 전략적 선택이다. 

 

 즉, 박근혜가 하야한다고 해서 광화문 광장에서의 집회는 끝나지 않을 것이란 이야기다. 우린 계속해서 사회 구조에 의한 폭력에 아파할 것이고, 이에 저항하기 위해 거리로 나설 것이다. 그런데 집회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순간, 정당성을 확보하기가 힘들어진다. 언론에서는 또다시 폭력시위에 논점을 집중하며 집회는 ‘폭력 프레이밍’을 당할 것이고, 왜 사람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왔는지에 대한 부분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기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폭력을 차단하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했는데, 결국엔 다시 폭력에 아파하는’ 역설적 상황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감정적 분노에 의한 근시안적 행동으로 인해, 문제가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는 것이다. 

 

길고 날카롭게, 본질을 봐야 한다. 

 

 이번 집회를 계기로 폭력에 대한 논란을 완전히 차단하고,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온전히 시민사회와 정치권에 전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첫 걸음을 떼어보자. 앞으로의 집회 역시 폭력을 배제한 채 평화롭게 진행하자. 하야를 넘어서, 진정한 민주사회를 만들어 가보자. 

 

 평화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 상태라고 한다. 

 우리는 어떠한 결과가 있던지 간에 일관된 방향인 자유와 정의, 참여와 민주주의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다시 한 번 ‘평화를 추구하는 시위’가 절실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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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16 18:10:00 최종수정 2016-11-17 15:5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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