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양심 있는 자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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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6년11월11일 19시57분
  • 최종수정 2016년11월11일 19시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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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18일 광주지방법원 형사 제3부의 재판장 김영식 부장판사는 항소심에서 종교적 신념으로 현역입영을 거부해 병역법 위반으로 기소된 자에게 검찰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이 아닌 항소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것은 처음이며, 이러한 이례적 판결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병역법 제 88조에 따르면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아니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의 15년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법에서 명시하는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병역을 거부한 자들은 실형을 선고받아왔다.

 하지만 광주지방법원 형사 제 3부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보고 양심적 병역거부 인정과 함께 대체 복무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표명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한 까닭에 대해 “국방의 의무만을 확보하며 양심의 자유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법률의 해석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며 “국제 사회가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는 점, 군 복무와의 형평성을 고려한 대체 복무 제도를 도입해 국민적 공감대를 얻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은 무죄에 해당 된다”고 판시했다.


 이번 무죄 판결은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항소심 단계의 최초의 무죄판결이라는 점과 개인의 양심과 국가의 공익이 상충할 때의 조율 점을 찾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재판부가 더 이상 소수자의 인권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사회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해결점을 찾겠다는 태도를 보여주었기에 이번 판결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 19조


 대한민국 헌법 제 19조에 따르면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갖는다. 그렇다면 헌법에서 명시하는 ‘양심’이란 무엇일까. 결정문에 따르면 양심이란 ‘세계관이나 인생관, 주의, 신조 같은 아니면 여기에 이르지 아니하더라도 개인의 인격 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 윤리적 판단이다.’

 

 즉, 양심이란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며 개인의 자기정체성을 이루는 요소들이다. 만약 양심에 따라 자기 결정권을 가지지 못한다면 인간으로서의 가치는 파멸되고 만다.


 종교적 윤리에 따르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위협받을 수 있기에 종교적 가치도 하나의 양심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양심의 자유는 ‘정신적 기본권’이라 명할 수 있으며, 그 누구도 이러한 양심의 자유에 대해 억압하거나 바꾸도록 강요할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군다나 국가는 국민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니기에 개인의 권리에 개입하여 국가의 신념을 강요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개인의 양심의 자유를 함부로 희생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이번 항소심에서 예외적으로 무죄를 선고한 광주지방법원 형사3부는 피고인의 양심을 병역의무와 같이 중요한 가치로 보았다. 재판부는 양심의 자유를 보호해야하는 이유에 대해 “피고인의 병역의무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정은 법의 명령보다 더 높은 것으로서 종교적 양심상 명령에 따르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이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그야말로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설명했으며,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양심의 자유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하다고 단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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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피와 거부, 그 한 끗 차이


 사람들은 흔히 병역기피와 양심적 병역거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본다. 그러나 병역기피와 양심적 병역거부는 엄연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병역기피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의도적으로 국방의 의무를 기피하는 것이지만, 양심적 병역거부는 군복무 기간에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기꺼이 포기하지만 본인의 종교적 또는 양심적 차원에서 살상무기를 다루는 훈련에는 참가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병역기피가 아니기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15년 동안 꾸준히 목소리를 높여왔다. 하지만 사회 정서상 그들의 절박한 요구는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소수자의 인권은 처참히 짓밟혔다.


 사법부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외침을 외면한 채 그들에게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실형을 선고받은 자들은 교도소에서 모범수로 분류되어 교도관들의 행정 보좌역할을 하였다. 형무소에서 법이 인정하지 않는 일종의 대체복무를 하는 것이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대체복무제에 대해 소극적으로 대처한 사법부의 행동을 꼬집었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주제이고 함부로 나서기 애매한 사건이기에 사회적 분위기에 맞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하여 실형을 선고하였지만 실질적인 법정 구속은 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한 것이다.


 재판부는 과거 사법부의 판결을 두고 “헌법적 가치 실현의 책임을 입법자에게만 맡겨둔 채 사실상 사법기관의 존재 이유인 소수자 권리구제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표현하며 소수자의 권리와 기본권을 무책임하게 무시하고 사법부의 의무를 외면한 태도를 비판하였다.


 재판부는 실형 선고 후 사실상의 대체복무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구체적인 방안에 대해 논의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세상과 ‘타협’하여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실형을 선고하기 보다는 그들의 인권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로 해마다 대략 600여명에 달하지만 그들을 향한 사회적 시선은 아직 싸늘하기만 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병역법에서 명시하는 정당한 사유로 보지 않고 대체복무제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형평성 문제와 군사력 저하를 이유로 든다.

 하지만 공익근무와 같은 대체복무형태가 군복무의 13%에 이르는 반면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전체 입영 인원의 0.2%에 불과하기 때문에 군사력 저하 문제는 증명할 수 없으며  그들을 제외한다고 병역 손실이 발생한다는 의견은 실상 논하기 힘들다.


 또 다른 이유인 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외국에서는 정상적으로 군복무를 하는 사람들과 대체 복무를 하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복무 기간을 다르게 설정하였다.

 예를 들어, 보통 군 복무기간의 1.5배에서 2배가 넘는 기간 동안 대체 복무를 하도록 하여 차별성을 두었으며, 더 나아가 이 제도를 기피 수단으로 악용할 여지를 줄어들게 하였다.


 일각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더욱 긴 기간 동안 정신 병원이나 양로원과 같은 기피 시설이나 인력난이 심한 곳에 배치하게 된다면 효용성이 높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군 복무 대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그들의 양심의 자유는 보호될 수 있을 것이며 국방의 의무라는 본질도 침해되지 않을 것이다.


양심 있는 자들의 양심적 병역거부


 자유민주주의를 토대로 하는 국가는 개인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보장해야 하는 의무를 지닌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자기 정체성인 양심을 따라 사는 것 또한 기본권으로 볼 수 있기에 국가는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절대 강요할 수 없다. 만약 국가가 자국민의 권리를 지켜내지 못하고 국가의 공익을 위해 그들의 신념을 저버리게 한다면 국가의 존립근거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국가가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형벌을 부과해가며 정상적인 사회생활 영위를 막는 것이 옳은 일인지에 대해 의문이 든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국가는 눈 감고 갈등을 야기하지 않는 안정적인 과거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보다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현실을 파악하여 사회적 낙인을 면해 줄 방법은 찾아야만 한다.


 ‘때’가 왔다. 우리는 그들의 신념을 범죄로 몰기보다는 그들이 국가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수 있는 대체복무제를 고려해 보아야만 하며, 인간의 기본권인 ‘양심의 자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한다. 항소심에서 이례적으로 무죄가 선고된 이 시점이 양심 침해국이라는 오점을 씻을 수 있는 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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