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에서 바라본 세계

국가의 미래를 향한 첫 걸음

※ 여기에 실린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국가미래연구원(IFS)의 공식입장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꿈꾸는 청년에게 보여준 대한민국 리더들의 '마이웨이'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6년10월01일 16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12월26일 22시00분

작성자

메타정보

  • 43

본문

 한 상담사가 몇 명의 성인 여성에게 “어릴 적 꿈이 뭐냐”고 물었다. 그들은 비교적 쉽게 우주 비행사, 유명한 배우, 패션 디자이너, 파일럿 등이라고 답했다. 상담사는 이어 “그러면 지금은 꿈이 뭐냐”고 물었다.
 
 이들은 일제히 “음...”하며 눈을 몇 번 굴리더니 “꿈이 변하기도 했고”라며 해명을 먼저 하거나 “아무래도 그 직업은 안정적이지 못하니까”라며 현실타협형 대답으로 무마했다. ‘SK-II’의 광고 중 일부 장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무모한 꿈을 꿨다가 주위 사람의 말, 시시각각 변하는 주변 환경, 한계를 느낀 자신의 능력, 안정적인 삶의 추구 등을 이유로 꿈꾸는 가치를 우선순위에서 제거한다. 꿈을 현실로 이뤄내는 것이 매우 어렵지만 꿈이 실체의 시발점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꿈은 계획을 이끌어내고 계획은 성취를 위한 과정이 된다. 더 나은 사회를 보기 위해서 ‘미래’의 주역인 청년의 건강한 꿈이 중요한 이유다.
 
 필드에 투입되기 전 불펜투수 같은 청년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을 되뇐다. 그 과정에 철저한 준비와 적당한 긴장감도 필요하지만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꿈이 실현될 내구성 튼튼한 동력이 필요하다.
 
 그 힘은 꿈을 이룬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통해 선물처럼 줄 수 있다. 언론에 오르내릴 정도의 직함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작은 일도 더 크게 비춰지기 때문에 대다수의 청년이 꿈을 이뤄가는 방식(Way)에 영향을 준다. 순수하게는 롤모델로서 설렘을 주고 순간순간의 삶에서는 귀감이 된다. 청년들이 꿈의 바다를 항해하는데 조타수가 되어 무한 기회의 땅으로 이끌거나 숨겨진 암초가 있는 곳으로 이끈다.
 

d0aedd5c1064304accfba2b4b5423d68_1475308 

청년의 꿈을 성장시키는 ‘마이 웨이’

 
 은둔형 CEO라 불리는 한샘 조창걸 명예회장의 ‘마이 웨이’는 많은 청년들의 꿈을 질적으로도 성장시킨다. 조 회장은 늘 미래를 내다보려 노력했고 더 나은 사회를 갈망했다. 그가 시장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다.
 
 조 회장은 20년 전부터 이케아(IKEA)의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어 확실히 대비했다. 도시의 발전이 급격하게 진행됨에 따라 주방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종합인테리어로 확장한 것은 IMF 국제금융시기에도 한샘의 매출 상승 신화를 쓰게 했다. 온라인, 홈쇼핑 등의 유통 채널 확대에도 한 발 앞서 있었다.
 
 조 회장은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금도 꿈을 꾼다. 지난 8월 18일 사재 5000억 원을 쾌척, 공익연구재단 ‘여시재(與時齋·Future Consensus Institute)’를 출범시켰다. ‘시대와 함께하는 집’이라는 뜻의 이 기관은 낡은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지식인들이 모여 △동북아와 새로운 세계 질서 △통일 한국 △도시의 시대 등 3가지 분야를 주된 연구 과제로 삼았다.
 
 70년 한샘을 창업하면서 조 회장이 꿈꾸던 싱크탱크 기관이다. 미래를 설계하는 토대를 만든 그의 출연은 청년들의 꿈과도 맞닿아 있다. 더욱이 조 회장은 “내가 아닌 여시재만을 기억해달라”며 연구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어떤 직함도 같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여시재 이사진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조 명예회장은 공식직함 없이 재단을 완전히 떠났으며, 재단의 오해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청년의 꿈을 좌초시키는 ‘마이 웨이’
 
 화려한 ‘마이웨이’를 과시하지만 청년들을 암초에 좌초시키게 하는 리더도 있다.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 해운·조선업를 이끈 주역들이 그렇다.수많은 실업자들과 가족들의 피눈물 앞에 악어의 눈물을 들이미는 최은영 전 한진해운 회장을 보며 청년들은 정신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반면교사를 삼지만 어두운 면을 접함으로써 꿈을 실현시키는데 현실적인 혼란도 가중된다.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지금까지 달려온 부장 검사와 부장 판사의 모습 또한 그렇다. 학창시절을 거쳐 사법고시를 합격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고 많은 사람들의 ‘죄’를 심판했을 이들의 승승장구가 정의롭지 못하다.
 
 진경준 검사장은 검찰 수립 68년 만에 첫 현직 검사장 구속의 대상이 됐으며 김수찬 부장판사 뇌물 수수는 10년 만에 대법관의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 청년은 ‘저렇게 까지 해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것인가’ 사회에 대한, 나라에 대해 불안감에 휩싸인다.
 
옛 팝가수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
 
“I've lived a life that‘s full/ traveled each and every highway/ And more much more than this, I did it my way
(난 나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왔고, 정말 많은 것을 경험했지만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난 내 방식대로 살았네)
 
 I faced it all and I stood tall /And dit it my way
(모든 것에 정면으로 맞서면서도 나는 당당했고 내 방식대로 했다네)
 
 I find it all so amusing/ To think I did all that /And may I say, not in a shy way
(그 모든 것이 즐거웠다는 걸 알았고, 내가 해온 그 모든 일들이 부끄럽지 않은 인생이었다고 난 말할 수 있겠지)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은, ‘부끄럽지 않을 인생’을 가르쳐줄 리더들의 ‘마이웨이’가 필요하다.  

43
  • 기사입력 2016년10월01일 16시54분
  • 최종수정 2016년12월26일 22시00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