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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되었든 기업이 되었든, 어떤 조직이든지 외부의 강제에 의해서 망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나는 거의 없다고까지 생각한다. 모든 망조(亡兆)의 뿌리는 자신에게서 자란다. 스스로 파괴된다. 스스로 파괴되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멸의 맥없는 숨결을 느낀 어떤 탐욕스런 외부의 힘이 마지막 숨통을 조이려 들어올 뿐이다. 그것을 그냥 침략이라고 부른다. 외침(外侵)이라고도 한다. 임진왜란도 그렇고, 병자호란도 그렇고, 심지어는 한일합방도 그렇다. 따지고 보면 모두 우리 스스로 무너지고 난 다음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피 터지는 일합을 겨룬 후에 들어오지 않고, 자멸해가는 맥없는 숨결을 딛고 이미 승리한 상태로 들어온다.

 

정당도 그렇다. 지금 새누리당이 망해가는 것을 보라. 아무리 헛발질을 해도 든든히 지켜주던 지지층을 누가 뺏어갔나? 민주당이 뺏어갔나? 국민의당이 뺏어갔나? 아무도 뺏어가지 않았다. 철저히 자멸하고 있다. 누가 무너뜨린 것이 아니다. 아무리 대통령을 비판해도 결사 호위하는 지지층은 마치 콘크리트처럼 견고했다. 그 지지자들이 지금 다 어디로 갔는가? 누가 뺏어갔는가? 아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지지자들을 몰아 낸 것이다. 누가 밀지도 않았고 무너뜨리지도 않았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온전히 혼자서 속절없이 무너져갔다. 혼자서 무너지다가 나라가 절딴 나게 생겼다.

 

개인도 대개는 스스로 무너진다. 고치지 못하는 나쁜 습관, 절제되지 않은 욕망, 갇힌 사고, 시대의 흐름을 외면하는 오만함, 같은 방법만 고집하는 꽉 막힘, 불친절, 질투, 혼자만의 선의지, 호기심 소멸 등등 때문에 스스로 비효율성을 쌓다가 자신이 고갈되어 가는 줄도 알아채지 못한 채 어느 순간 무너져버린다. 모든 패망은 자초(敗亡)하는 경우가 십중팔구다. 지금 우리는 거의 패망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은가.

 

패망이 어느 순간 갑자기 엄습한다지만, 아무도 몰래 숨어서 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한 모든 패망은 그 전 과정을 당사자들이 목도하는 중에 벌어진다. 참혹한 일이다. 자신의 죽어가는 과정을 자신이 보는 것이다. 나는 망해가는 기업을 몇 개 본 적이 있는데, 어제까지 잘 나가다가 오늘 갑자기 망하는 경우는 하나도 없었다. 다 자기가 망해가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면서 망해갔다. 망하기 훨씬 전부터 그 징조는 나타나고, 또 그 징조에 대해서 내부에 걱정과 문제 제기들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밖에서 방관하는 장삼이사나 선남선녀들이 먼저 말해주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에는 어쩔 수 없이 두 눈 뜨고 망해가는 자기 회사를 바라보아야만 한다. 조선 말기에도 그랬다. 많은 지식인 열사들이 목에서 피 냄새가 나는 절규로 조선의 망해가는 기운을 경고하고 호소하고 다잡아보려 했으나 헛된 일이었다. 모두 두 눈 멀쩡히 뜬 채 조선의 패망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이런 일이 다시는 우리에게 일어나지 않을까? 정말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드는가? 

 

왜 망하는가? 간단하다. 비효율이 쌓여 힘이 빠지기 때문이다. 왜 효율성을 상실하는가. 흐름에 맞춰 변하지 못해서다. 시대의 변화에 맞추지 못하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맞춘다는 말은 시대의식을 포착한다는 뜻이고, 시대의식을 포착한다는 말은 그 시대에 맞는 적절한 아젠다를 세운다는 뜻이다. 시대에 맞는 아젠다가 세워지고, 그 아젠다를 중심으로 세력이 결집되면 효율성이 증가하여 국가는 발전한다. 망하는 일은 변화하는 시대에 적절한 아젠다를 세우지 못해서 일어난다. 시대의식에 맞는 아젠다가 없거나 일치하지 않으면 비효율이 쌓여 힘이 약화된다. 적절한 아젠다를 세우지 못하는 나라는 마치 꿈이 없는 학생이 책가방 들고 학교 들락거리면서 시험 성적만 괜찮으면 만족하는 것처럼 시스템 위에서 이리저리 부유한다. 자! 여기서 착각이 일어난다. 시스템 한 귀퉁이를 잡고 이리저리 부유하면서도, 그 부유를 부유로 알지 못하고, 마치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자기가 뭐하고 있는 줄 사실은 잘 모른다. 이 착각을 착각으로 알아차리고 빠져 나오는 일을 ‘각성’이라고 한다. 이런 ‘각성’이 없는 지성은 자기 프레임에만 갇혀서 새 비전을 만드는 변화를 감행하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단기간에 모두 성취한 모범국가다. 이는 외국에서도 모두 인정하는 것이므로 과한 자화자찬은 아니다. 모범적으로 발전한 국가인 것이다. 발전한다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대로 시대의식을 포착한 인재들이 세력을 형성하여 시대적 조건에 맞는 아젠다를 잘 세우고 또 그것을 추진하였다는 뜻이다. 아무래도 나라 일을 말할 때는 해방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해방을 맞은 나라가 해결해야 할 시대의식은 누가 뭐래도 건국이다. 많은 소란과 갈등과 혼란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건국이라는 아젠다를 완수하였다. 건국 다음에는 우선 창고를 채워야 한다. 누가 뭐래도 다음의 아젠다는 산업화가 되어야 했다. 수많은 갈등과 분란 속에서도 우리는 산업화 역시 완수하였다. 산업화의 내용은 주로 공업화와 도시화다. 농촌을 중심으로 했던 농촌경제가 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공업경제로 이동한 것이다. 산업 내용의 이동은 주도세력의 이동을 포함한다. 농업경제구조에서 주도권을 잡은 세력은 더 이상 주도권을 잡을 수 없다. 그래서 반드시 세력(계급) 조정이 필요하다. 이 조정이 전체 사회를 관통하여 일어난 것을 우리는 민주화라고 한다. 산업화 다음에 세워져야 할 아젠다가 바로 이 민주화다. 엄청난 갈등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이 사명 역시 완수하였다. 민주화를 이룩한 것이다. 건국-산업화-민주화의 과정을 직선적으로 급속히 해냈다. 위대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민주화 다음이다. 우리는 지금 민주화 다음의 아젠다 설정에 실패하고 있다. 꿈을 잃은 청년이 방향 감각을 상실한 채 방황하는 형국이다. 꿈이 없으니 적절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방법이 찾아지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쓰던 방법이나 계속 쓰면서 막연히 새로운 인생이 열리기만을 기대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해서 열리는 새로운 인생이란 없다. 우리에게 민주화 다음의 꿈(아젠다)은 무엇인가? 바로 선진화다.

 

건국-산업화-민주화를 완수하면서 우리는 중진국 상위 수준에 이미 도달하였다. 문제는 중진국을 넘어서는 선진화라는 아젠다가 그 이전의 것과 차원이 다르게 어렵다는 것이다. 민주화나 산업화나 건국의 벽은 매우 구체적이다. 또 앞선 선례들이 있다. 그래서 그 벽을 넘자고 설득하는 일이나 힘을 결집하는 일이 상대적으로 덜 어렵다. 그러나 민주화 다음의 벽, 즉 우리가 넘어야 할 선진화라는 벽은 창의적이거나 문화적이거나 인문적이거나 독립적인 활동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서 다르게 말하면 관념적이라 할 수도 있고 추상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설득도 어렵고 힘의 결집도 쉽지 않다. 이 벽을 돌파하는 일은 갑자기 난이도가 높아져 버린다. 이 선진화라는 아젠다 설정에 우리가 아직까지 성공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다.

 

건국-산업화-민주화라는 아젠다를 직선적으로 완수한 탄력으로 바로 선진화라는 벽을 넘어야 했는데, 넘지 못하고 지금 우리는 정체를 알기 힘든 투명한(추상적인) 벽 앞에 서서 당황하고 있다. 그 벽에 막혀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 심지어는 건국 세력까지 뒤엉켜 있는 것이다. 건국 세력은 건국 할 때의 프레임으로, 산업화 세력은 산업화 프레임으로,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프레임만 가지고 각자가 옳다고 아귀다툼하고 있을 뿐이다. 이 아귀다툼을 우리는 ‘혼란’이라고 한다.

 

건국 프레임도, 산업화 프레임도, 민주화 프레임도 이제는 모두 낡았다. 각자 자기 프레임에 갇혀서 자기가 낡고 병든 것을 모르기 때문에 핏대를 세우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자기 프레임으로만 세계를 볼 줄 알지, 유동적 세계 안에서 미래를 향한 아젠다를 설정하는 지성적 능력을 보여주지 못한다. 누가 되었든 신념화된 자기 소리만 계속 해대는 사람은 일단 지적이지 않다. 이런 사람들에게 현혹되면 안 된다. 이제는 썩은 프레임들을 폐기 처분(unlearning)해야 한다. 노자의 말을 빌리면 ‘무위’(無爲)해야 한다. 그래서 선진화라는 새로운 아젠다를 구축하고, 이 시대를 건너가야 한다. 가장 가까이 있는 민주화 세력들도 민주화의 신념과 방법으로만 버티고 있다면, 그들이 비판하는 산업화나 건국 세력과 다를 바 없이 썩은 깃발일 뿐이다. 다음 아젠다를 위해 자기 탈피를 못하는 사람은 누가 되었든 역사를 정체시킬 뿐이다.

 

지금 나라가 뿌리 채 흔들리고 있다. 자신의 고유한 ‘신념’이 없어 어딘가에 기대야만 하는 나약한 지도자가 무당 끼 있는 아줌마에게 휘둘려 국가의 근간이 요동친다. 그 이전의 소란과 달리 이번 사건은 누가 알까봐 창피하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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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창피한 일은 그 한심한 구조 속에서 ‘각성’의 능력이 없이 시스템의 부유물처럼 표류한 우리의 고급 인재들이다. 그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하고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는 영재들의 자멸(自滅)과 자패(自敗)다. 이런 사람들이 나라 일을 맡고 있었다. 공(公)과 사(私)도 구분 못하고, ‘강남 사는 한 아낙네’에게 굽실거리는 대한민국의 고급 인재들을 목도하였다. 그렇다면, 그 사건을 비판하고 창피해하는 비슷한 수준의 다른 인재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공사를 엄격히 구분하는 등의 다른 태도를 보였을까? 그러지 않고 비슷해졌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 아닌가? 결국 지성의 파멸이다. 

 

문제가 없는 부부도 없고, 문제없는 국가도 없다. 문제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미래적으로 풀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다루는 능력이다. 모든 발전은 문제를 해결해 가는 노력의 결과다. 문제를 다루는 능력을 발휘하면, 얼마든지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이번에 터진 사건을 국가 흥성의 계기로도 삼을 수 있다. 다만, 그 이전에 해 왔던 방식이나 자신에게 익숙한 프레임으로만 해결하려 덤빈다면, 이 사건의 소용돌이에 묻혀서 과거로 다시 돌아가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다시 고리타분한 원로들이 등장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젊더라도 과거의 프레임에 갇힌 사람은 제외되어야 한다. 낡고 지친 피를 젊고 새로운 피로 바꾸는 도전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이렇게 하여 우리가 이루어 왔던 직선적 역사 발전의 탄력을 다시 살려내면서 기필코 선진화의 새로운 비전을 세운다는 기본 원칙 위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면 빛이 보일 수도 있겠다. 어차피 바닥을 친 거 아니겠는가.<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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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31 17: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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