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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2015년 회고와 2016년 전망

 

 

1. 기대를 안고 출발한 2015년

2015년은 남북관계가 소강상태인 채로 막을 내렸다. 기본적으로 남북관계는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바라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지난해는 기대가 컸던 만큼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우리는 광복 70주년이자 박근혜정부 3년차인 2015년을 남북관계 개선의 호기로 인식했다. 김정일 삼년상을 치른 북한의 김정은 제1위원장으로서도 자신의 주도로 대남, 대외관계를 개선함으로써 경제적 실리를 확보해야 할 필요가 큰 시점이었다. 

 

출발은 좋았다. 연말연초에 남북한은 관계개선의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우리정부는 2014년 12월 29일 통일준비위원회 명의로 ‘남북 당국 간 회담’을 전격 제안했다. 북측도 2015년 신년사에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는 문구로 화답했다. 그러나 때마침 북한의 소니사 해킹을 둘러싼 북미 간 갈등이 불거졌다. 1월 24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소니사 해킹사건을 비난하며 북한 붕괴 불가피론을 피력했다. 북한도 맞대응에 나섰다. 2월 4일 국방위원회는 미국과의 모든 대화 중단을 선언했다. 조심스럽게 시동을 걸던 남북대화도 외부요인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재차 남북대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핵문제가 걸림돌이었다. 북핵문제의 진전 없이는 민생, 환경, 문화의 ‘3대 소통로’를 제외하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북측은 3월 하순 통준위 부위원장의 흡수통일 발언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마침내 4월 18일 김정은이 백두산에 올라 ‘백두산 칼바람 정신’을 강조하면서 북측은 대남 강경자세를 견지하기 시작했다. 5월에는 서해상에서 SLBM 사출시험을 실시하면서 의도적으로 긴장을 조성했다. 6월에는 UN북한인권서울사무소 개소를 강하게 비난하고 나섰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기대를 모았던 남북 민간단체의 6·15 및 광복절 공동행사도 장소·주제 문제로 무산되고 말았다. 개성 만월대 공동복원사업, 겨레말 큰사전 편찬사업 등 사회문화교류가 그나마 남북관계의 명맥을 이어갔다.    

 

2. 반전(反轉) : 8·25 합의

어쩌면 북한의 도발은 예견된 것이었다. 8월 4일에 발생한 목함지뢰 사건은 대남 좌절감의 표현이자 우리 측의 반응을 떠본 것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보복차원에서 20년 만에 재개되고 북측의 포격도발이 자행되었다. 북한이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상황에서 남북은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해야 했다. 남북한은 2+2 고위급 접촉을 선택했고, ‘8·25 합의’를 도출해 냈다. 어느 일방의 승리가 아닌 절묘한 타협의 결과였다. ‘8·25 합의’의 핵심은 한반도에서의 도발을 억제하고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것이다.

 

북측은 8·25 합의를 반겼다. 김정은은 8·25 합의를 “禍를 福으로 전환시킨 합의”로 평가했다. 나아가 “풍성한 결실로 가꾸어가야” 한다며 기대감을 표명했다. 김정은은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연설에서도 대남 위협발언을 자제하였으며, 우려하던 장거리 미사일 발사도 없었다. 중국의 류윈산 당 상무위원의 방북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우리 사회도 8·25 합의에 호의적이었다. 그동안 북한의 도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도 본격적으로 가동될 계기를 맞이한 것처럼 보였다. 덩달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도 올라갔다. 

 

그러나 8·25 합의 이행은 순조롭지 않았다. 이산가족상봉은 예정대로 10월 하순에 실시되었으나, 뒤이은 차관급 회담은 결렬되고 말았다. 북측이 요구한 금강산 관광재개에 대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 결과이다. 이번 차관급 회담의 결렬은 남북관계 전반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 크다. 금강산 관광이나 5·24조치 해제 등 남북관계의 전반적인 흐름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보다 큰 틀의 회담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만큼 정부의 부담도 커졌다.  

 

3. 불투명한 전도(前途), 2016년 상반기 

2016년 남북관계도 어려운 출발이 예상된다. 무엇보다 내년 2-3월에 한미합동군사훈련이 시작되면 남북대화가 성과 있게 진행되기 어렵다. 북측은 온갖 선전공세와 회담제의를 통해 한미군사훈련을 저지하려 들 것이다. 종래에는 대화 파탄의 책임을 우리 측에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8·25 합의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16년 상반기에 우리의 총선과 북측의 노동당 7차 당 대회가 맞물려 있는 것도 남북관계에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여당의 입장에서 4월 총선은 임기 후반 레임덕 방지를 위해 물러설 수 없는 선거이다. 총선에서 대북정책은 주요 이슈가 아니다. 다만 선거기간에 북한변수가 등장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부동층 흡수와 지지층 결집에 중요하다. 북한은 내년 5월 초 제7차 당 대회 개최를 공언했다.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36년 만에 열리는 초대형 행사이다. 3대 세습 지도자 김정은 은 끊임없이 통치능력을 의심받고 있다. 7차 당 대회는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고 통치능력을 대내외에 과시할 최선의 기회이다. 따라서 당 대회 준비에 국가역량이 총 동원될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 개선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5월 7차 당 대회, 새 국가발전 전략과 통일방안 제시 가능성 대비를

한편 북한이 5월의 7차 당 대회에서 어떠한 변화를 선택할지 주목해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당 대회를 통해서 국가의 기본적인 발전계획과 통일정책을 제시해 왔다. 예를 들어 북한은 1980년 6차 당 대회에서 고려민주연방공화국창립방안을 공식화했다. 이번 7차 당 대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먼저 김정일 시대의 유산을 정리한다는 측면에서 조심스럽지만 국방위원회의 폐지 또는 축소를 예측해 본다. ‘선군(先軍)에서 선민(先民)’으로 정책변화를 예상하는 근저에는 북한사회의 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북한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시기와는 매우 다르다.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는 최근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시장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이다. 이러한 변화의 주체는 인민이다. 실제로 김정은은 지난해 당 창건 70주년 기념연설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97회나 사용하며 민생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했다.       

 

7차 당 대회에서 북한이 새로운 통일방안을 제시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2014년 9월 제69차 유엔총회에서 북한의 리수용 외무상은 “1국 2체제의 연방(confederation) 형태로 두 개의 조선을 하나로 통일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고려민주연방공화국 창립방안에서 양측 지역정부가 내정을 맡고 중앙정부가 외교와 국방을 맡는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 논리와는 사뭇 다르다. 리수용의 발언은 오히려 우리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중간단계로 설정한 ‘1국가, 2체제’를 사실상 수용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이 지난 광복절부터 평양표준시를 적용하기 시작한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 일재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우리의 통일공세에 맞서 ‘2개의 국가’임을 강조하는 고육지책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4. 미국대선과 핵실험 가능성

2016년 하반기 남북관계에는 미국 대선이 주요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으로서는 미국 대선에서 한반도 문제가 중점 의제로 부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임기 말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바뀔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2016년에도 북미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북한 입장에서 체제 안전의 최대 관건인 북미관계 개선이 어려운 상태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하게 추진하기는 어렵다.  

 

북한의 4차 핵실험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북한은 2006년, 2009년,  2013년에 핵실험을 실시했다. 2016년은 박근혜정부 4년차이자 오바마의 임기 마지막 해이다. 만약 7차 당 대회가 기대 이하의 성과를 거두고 국제사회의 제재와 압박이 거세질 경우 북한은 4차 핵실험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최근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이 허언만은 아닐 것이다. 북한이 4차 핵실험을 한다면 이는 HEU 방식의 핵융합 실험일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핵실험은 재앙이다. 남북관계 복원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시진핑의 중국도 더 이상 북한을 감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5. 중국 양안(兩岸)관계가 주는 시사점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부터 대화와 압박을 적절히 배합함으로써 북한의 태도변화와 북핵문제 해결을 유도하려는 전략을 추진했다.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서 북한의 퇴로를 차단하려 했다. 한미공조로 북한을 압박해 북핵문제를 진전시키려 했다. 남북관계에서는 신뢰 프로세스를 통해 북한에게 작은 통로를 열어주며 태도변화를 유도했다. 이러한 구상에 따라 대북압박을 위한 한중협력 구축 면에서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곧바로 북한의 강력한 반발이라는 난관에 직면했다. 북한은 북·중관계 악화를 무릅쓰며 핵무기 보유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도 군사적 충돌을 불사하는 등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돌이켜 보면 박근혜정부는 남북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인 한계를 안고 출범했다. 전임 정부에서 발생한 숱한 난제들이 하나도 해결이 안 된 상태에서 임기가 시작되었다. 출범 직전 북한의 핵실험도 있었다. 더욱이 출범 초기에 김정은 정권은 내부 권력 공고화에 집중했다. 장성택, 현영철 등 핵심인사에 대한 숙청과 처형을 단행하면서 대남관계를 돌볼 여유가 없었다. 지금도 김정은 정권은 신뢰 프로세스를 받아들일 자심감이 부족한 듯하다. 

 

최근의 중국 양안관계 발전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9년 중국의 개혁개방정책이 본격화되자 대만의 기업가들은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천 등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대만기업의 투자가 늘어나면서 당연히 분쟁도 발생했다. 대만과 중국은 해기회와 해협회라는 반관반민의 조직을 만들어 서로 소통하고 분쟁을 해결해 나갔다. 1992년에는 소위 ‘92공식’이라 불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합의했다. 우리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지만 일중각표(一中各表), 즉 하나의 중국에는 동의하면서도 대만은 이를 중화민국,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서로 다르게 해석한다는 것이다. ‘92공식’은 지금도 유효하다. 지난 2015년 11월 7일 중국과 대만은 싱가포르에서 분단 이후 처음 정상회담을 가졌다. 당시의 유일한 합의사항은 양 정상 간에 핫라인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양안관계는 민간의 주도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쉬운 일, 가능한 일, 그리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일부터 추진을

북한이 중국은 아니다. 따라서 양안관계 접근방식을 남북관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양안관계가 주는 시사점에는 주목해야 한다. 양안관계는 쉬운 일, 가능한 일, 그리고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일부터 추진하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발전했다. 그리고 당국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대립과 갈등을 민간이 주도하면서 피해나갔다. 박근혜정부 3년간의 남북관계를 총체적으로 점검해 볼 때 정부가 많은 노력은 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부족했다. 향후 남북관계도 전도가 불투명하며 오히려 악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남북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절실한 이유이다. 그리고 새로운 접근을 모색함에 있어서 양안관계를 참고할 필요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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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1-04 18:58:44 최종수정 2016-02-26 17: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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