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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 전 대통령의 기념관을 방문한 이유 본문듣기
      기사입력 2019-02-10 17:00:00 최종수정 2019-02-08 17:56:13
      장성민 | 세계와 동북아 평화포럼 이사장

본문

내가 부시 전 대통령을 찾게 된 동기와 이유는 네 가지이다. 


첫째, 한국의 동맹국인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조지 H.W. 부시 전 대통령만큼 2차 대전 후 세계질서 수립문제와 냉전체제 해체의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실전경험과 지혜를 동시에 갖춘 정치 지도자가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 닉슨 다음으로 구소련을 견제키 위한 지렛대(leverage)로서 중국의 중요성에 일찌감치 눈을 뜬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와 똑같은 분단국가였던 분단국 동서독이 통일국 독일로 부활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지도자라는 점이다. 

넷째, 지금처럼 한미동맹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지도자였고, 특히 개인적으로는 국가 간의 관계에도 ‘친구’란 개념을 강하게 인식시킨 보기 드문 미국의 대통령이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는 고조선 이래 작게는 900회, 많게는 무려 1,300여 차례나 외침을 받고 살아 온 나라이다. 그러니 ‘나라의 앞날에 단 한 시도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국민들 입속에서 멈춰 본 적이 없을 만큼 외침의 시련 속에서 생존해 온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그런데 지금의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할된 상태이긴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단 한차례도 외부 주변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고 살아오고 있다. 비록 남쪽에 국한된 상황이긴 하지만, 그 안정된 기간이 바로 1953년 한미동맹을 맺고 난 이후로부터 지금까지 66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해방된 조국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갈라지며 분단되었고 당시 남한의 1인당 개인 GDP는 고작 85불에 멈춰선 아시아의 최빈국, 발전이 정지된 ‘고요한 아침의 작은 나라’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내 북한의 침략을 맞아 사흘 만에 수도 서울이 함락당했다. 전 국민은 남으로 떠밀려 순식간에 낙동강까지 내려갔고, 더 이상 밀릴 수 없는 부산 앞바다에 배수진을 쳐야 했다. 부산 앞바다에서 수몰위기 상황을 맞았지만 나라를 빼앗긴 베트남인들처럼 보트피플이 될 생존의 기회마저도 박탈된 나라가 69년 전 조국(祖國)의 자화상(自畵像)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베트남인들처럼 몸을 싣고 세계의 바다를 표류할 만한 나룻배조차도 구할 수 없는 물적 자원의 최빈국이었다. 그야말로 조국(祖國) 대한민국이 지도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조국(弔國)이 될 대(大)위기였다. 

이런 나라가 지금 1인당 개인 GDP 3만불 시대를 누리며 세계 10대 무역대국이 되었다. 핵심은 무엇인가? 한미동맹이다. 세계 최강대국과 최약소국 간에 맺어진 군사동맹이 바로 그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 이 대한민국의 핵심축대가 흔들리고 있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켜주어 국가 내부적으로 자유, 안정, 평화, 번영, 민주주의의 동력을 우리 스스로 키워나갈 수 있도록 했던 그 외풍의 바람막이인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사회는 본질적으로 힘(Power)이 지배하는 무정부 사회(anarchy)이다.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이 바로 국제사회이다. 국제사회에서 국가는 국가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 국가는 본질적으로 그 국가의 이익(National interest)을 추구한다. 국가의 힘은 곧 국력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과거의 조공책봉의 시대를 벗어날 만큼 대륙세력인 러시아, 중국보다 강대국인가? 지금의 남과 북이 해양세력 일본을 압도할 만큼의 경제적 부와 군사적 힘을 갖고 있는 나라인가? 우리는 벌써 한반도 분할의 역사, 분단체제의 역사를 잊고 지내는가?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사이의 완충지대라는 전략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군사요충지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16세기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가 정명가도(征明假道)의 명분을 내세우며 조선(朝鮮)에 길을 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조선인들이 배제된 채 대륙세력 명나라와 해양세력 일본이 조선분할론을 논의한 것을 우리는 벌써 잊었는가? 한반도 분할론이 거론된 최초의 시점도 바로 16세기 부터였다. 이 한반도 분할론은 1592년 9월 일본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평양강화회담에서 명나라 심유경(沈惟敬)에게 대동강변 분할선을 제안하면서 처음 등장했다. 그 다음 1593년 6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8도 중 경기, 충청, 전라, 경상 등 남부의 4도를 일본에 할양하는 조선분할안을 제안했다. 그리고 이를 심유경이 일본과 밀착한 상태에서 도요토미 안의 수용을 적극적으로 검토했으나 조선과 명나라 조정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현실화 되지 못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명나라 조정 내부에서 조선분할론이 나옸다. 1593년 11월에 명의 조정에서 조선을 2분 혹은 3분할 해서 왜(倭)를 방어하는 자에게 할양하자는 안이 나왔다. 그러나 이 안은 병부상서 (兵部尙書) 석성(石星)이 불가하다고 주장해서 불발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엽에 들어와서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은 더욱 구체적으로 한반도 분할론에 불을 붙였다. 1894년 7월엔 과거 해가 지지않는 나라로 불렸던 해양제국 영국이 청나라와 일본에 서울을 중심으로 한 남북 분할론을 제시했다. 청나라는 영국의 제안에 수락의사를 전달했으나 일본은 이를 거절했다. 그리고 서해 풍도 앞바다를 거점으로 일본이 청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청일전쟁이 터졌고 이를 계기로 해양세력 일본은 대륙세력 청나라를 한반도로부터 밀어내는데 완전히 성공했다. 그리고 한반도를 직접 지배했다. 청일전쟁이 끝난 후, 해양세력 일본은 다시 러시아에 한반도 분할론을 제안했다. 이때가 1896년이었다. 일본이 러시아에 제시한 첫 번째 한반도 분할안은 북위 39도선을 기점으로 하는 대동강중심 분할안으로 한반도의 전체 3분의 1에 해당하는 부분을 러시아에 할양해 주겠다는 안이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이 안의 수용을 거부했다. 그러자 일본은 다시 서울 한강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절반분할(折半分割)안을 제시했다. 러시아는 이 안도 거절했다. 이유는 부동항이 필요했던 러시아의 입장에서는 한반도 남쪽의 부동항이 전략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남진정책(南進政策)에 따라 한반도 남쪽의 부동항에 러시아 무력함대가 정박을 한다는 것은 곧 해양세력 일본에게는 위협이었다. 일본이 이를 허락할 경우 일본의 안보는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일본은 러시아를 선제공격해서 러시아를 대륙 깊숙이 밀어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촉발된 것이 바로 러일전쟁이었고, 러시아는 일본에 패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해양세력 일본의 대륙진출을 위한 전략적 교두보로서 일본 식민지배의 직접적인 군사관할통제지역으로 완전히 복속되었다. 

지금까지 해양세력 일본과 대륙세력인 명나라, 청나라, 러시아간의 전쟁은 모두 한반도 지역을 선점하기 위한 영향력 확대차원의 전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다시금 2차 대전의 결과로 한반도는 대륙세력 구소련과 해양세력 미국의 합의에 의해 38도선으로 분할 점령되었다. 그리고 대륙세력에 붙은 북한은 구소련을 종주국으로 사회주의 공산국가가 되었고, 한국은 이승만의 노련한 외교적 결실인 한미동맹으로 오늘의 자유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한반도는 항상 주변 강대국들의 힘의 역학관계, 즉 대륙세력과 해양세력 간의 패권경쟁에 의해서 우리의 역사와 운명이 결정되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자신의 이런 치명적인 지정학적 역사를 너무도 쉽게 잊고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그 무수한 외침을 받아 왔음에도 앞으로 어떻게 생존할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너무도 모르거나 너무 소홀하게 생각하고 지낸다는 사실이다. 왜 우리 민족은 이럴까? 왜 이런 역사를 반복하는 것일까? 

때마침 한가지 우려스러운 일은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동맹에 대한 인식을 과거의 미국 대통령들과는 달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가치가 아니라 이익이다. 동맹의 가치가 아니라 경제적 이익이다. 동맹국의 이익이 아니라 자국인 미국의 이익이다. 미국우선주의이고 경제이익 우선주의이다. 트럼프는 자국의 경제적 손해를 보면서까지 자국군대가 외국에 주둔하면서 남의 나라에 봉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현실주의자 미국대통령이다. 2차 미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무장관이 지난 달 11일 '미국인의 안전이 최종목표'라고 밝힌것도 동맹의 가치보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운것이다.

또한 중국은 한반도와 일본 그리고 아시아 지역으로부터 미군을 밀어내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모든 힘을 다 쏟아서라도 이번 기회에 한반도로부터 미군을 몰아 내는 것을 최선의 대남전략으로 삼고 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에 김정은이 신년에 첫 순방지로서 중국을 찾아간 것이고 여기에 중국이 북한비핵화만 양해해 준다면 한반도로부터 미군을 퇴각시킬 총력전을 전개해서 중국과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것이다. 김정은이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은 바로 남한 여론을 자신이 잡고 있고, 현 문재인 정권은 자신의 지원이 없으면 내일이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이 바탕이 됐을 것이다. 실로 한국 정부는 자신이 마음 먹은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국내정치적 부분도 충분히 설명했을 것이다. 

지금 이런 상황에 일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 영일동맹이 다시 재현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영국이 다시금 해군 함정을 이끌고 아시아에 교두보를 형성하겠다는 전략적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일본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 국제정치를 모르는 비전문인들은 지금이 17세기나 18세기인줄 아느냐고 항변할 것이다. 주한미군이 빠지면 일본과 중국의 대충돌이 불가피할 것이고 핵 가지고 장난질 하는 북한을 쳐다보면서 일본이 가만있겠는가를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한다. 세계에서 플루토늄 비축양이 가장 많은 나라가 어느 나라인가 한번 잘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일본과 중국이 은밀하게 독도를 일본이 점령하고 제주도를 중국이 점령하겠다고 합의해서 극비리에 군사력을 전개해 들어간다면 한반도가 다시금 임진왜란 당시 왜와 명이 서로 분할통치 하기로 밀약한 ‘한반도 분할론’의 역사를 피해갈 방법이 있는가? 그것을 막을 힘을 비축해 놓고 있는가? 멀리 미국에까지 와서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지금 조국 대한민국의 핵심 축였던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다는 절박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그 비극의 역사는 다시 반복되고 그런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이곳 미국의 부시 대통령 기념관을 방문하면서 다시금 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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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2-10 17:00:00 최종수정 2019-02-08 17:5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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