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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11> IMF외환위기 이야기 ③경제개혁 조치에 얽힌 일화들 본문듣기
      기사입력 2019-01-09 17:00:00 최종수정 2019-01-09 11:33:10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본문

 ‘관변 경제학자의 정책체험기’는 공직생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해외유학과 산업연구원 부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그리고 주OECD대사를 역임한 이경태 박사가 겪은 주요 경제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의 뒷얘기들을 담은 연재물이다. 주로 정부 경제정책의 수단과 방법을 연구해 제공한 탓에 본인 스스로 ‘관변 경제학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지만, 그만큼 정책 이면사(裏面史)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정책당국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우리 경제발전의 주요 분수령이 된 정책과 사건의 자초지종은 물론 시사하는 바를 엮어나가고자 한다.<편집자>

 

1998년 하반기 안정세 회복…기업·금융·노동·공공 등 4대 개혁 본격화

 

IMF구제금융자금이 유입되고 해외채권자들과의 채무조정이 일단락되면서 외환시장도 1998년 하반기에 들어서면서 점점 불안이 가시고 안정세를 회복하게 되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에 급급하던 정부도 중장기적인 시각에서 한국경제의 개혁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기업, 금융, 노동, 공공부문의 4대 분야에 걸쳐서 개혁의 청사진과 로드맵이 작성되었고 여기에 추가하여 대외개방의 확대도 개혁에 포함되었다. 내가 근무하던 KIEP(대외경제정책연구원)는 개혁분야별로 해외의 모범사례(best practice)를 조사 분석하여 정부에 제공함으로써 한국경제가 개혁을 통해서 선진국 형 제도를 갖추어 나가는데 일조를 하였다.

 

IMF는 한국 경제개혁의 설계사이면서 감독자이었다. 개혁의 기본원칙과 방향을 정했고 실행과정을 감독하였다.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가 양산되면서 개혁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거세어 졌으나 IMF는 아랑곳하지 않고 개혁을 밀어 붙일 것을 요구하였다. 오죽 했으면 IMF를 ‘I aM Fired’(나는 해고당했다)라고 불렀겠는가?

 

IMF와 비공식 소통 창구 美 KEI…‘대외비(對外秘)’로 KIEP에 의견 전달

 

한국정부와 IMF간에는 공식적인 협의채널이 가동되고 있었으나 비공식적인 소통의 필요성도 있었다. 한국 쪽에서는 개혁추진과정에서 겪게 되는 현실적인 어려움과 속내를 털어 놓고 IMF는 개혁성과에 대한 비판적 의견을 의례적인 고려 없이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비공식적 소통의 중간창구로서 한국경제연구소(KEI : Korea Economic Institute)를 활용하기로 했다.

 

KEI는 한국정부가 출연하여서 워싱턴DC에 설립한 기구였다. 각종 설명회와 세미나를 개최하여 한국경제의 발전상을 알리고 통상마찰이 일어나면 미 의회와 관련부처를 대상으로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는 업무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소장은 국무성관리출신이었다. 

 

KEI는 IMF와 세계은행 등의 경제전문가와 부서책임자들을 수시로 만나서 한국의 경제개혁상황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여 KIEP로 보내 주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보고가 왔는데 만나는 사람들은 익명으로 처리되었다. 취재원을 보호해야만 솔직한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KEI의 누가 면담을 하는 지도 비밀이었다. 나도 모르고 있었다. 국제금융기구의 간부급들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KEI소장일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구태여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민감한 사항들이 보고서에 담겨 있어서 정부쪽에서 작성자가 누구인지를 알려 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나 자신도 모르고 있으니 차라리 속이 편했다.  

KEI가 보내오는 보고서는 당연히 ‘대외비(對外秘)’이었고 극히 한정된 범위의 정부 인사들에게만 배포되었다. 그러한 보고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보내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왔지만 대부분 거절하였다.

 

‘비판적’ 견해가 대부분…‘부실기업 정리 미흡, 재벌 지배구조 개선 부족, 노동시장 유연성 제고 노력 미약’ 

 

보고에는 한국정부의 개혁에 대해서 잘하고 있다는 칭찬보다는 비판적이고 유보적인 의견들이 주로 담겨있었다. 전체적으로 부실기업의 정리가 미흡하고 재벌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책임성 있는 개선이 부족하며 노동시장 유연성의 제고 노력이 미약하다는 것이었다.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구체적인 비판도 있었다. 이러한 비판 의견들이 정부의 개혁 작업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를 파악할 길은 없었지만 더욱 과감한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보고에 근거하여 자신들의 생각이 옳음을 확인하였을 것이고 반대로 개혁정책을 직접 담당하는 사람들은 이 보고의 내용을 못마땅하게 여겼을 것이다. 바람직한 효과는 개혁담당자들이 비판적인 의견을 겸허히 수용하여 개혁의지를 더욱 다지는 계기로 삼는 것이었지만 실제로 그랬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 일간지에 보고의 내용이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IMF가 보기에는 한국의 관료사회의 저항이 개혁의 가장 큰 걸림돌이고, 특히 재경부관료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었다. 그 보고에는 경제관료 들은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끌어 왔다는 자부심이 강하고, 한국경제의 고장 난 부분을 수리해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총체적인 수술을 해야 한다는 IMF의 처방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부연설명까지 곁들여 있다는 기사이었다. 

 

대외비 내용이  언론에 누설된 것이었는데 배포처가 수십 군데에 달하기 때문에 누가 범인(?)인지를 밝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IMF의 비판에 동조적이고 재경부관료들에게 반감을 가진 인사가 고의적으로 흘렸다고 짐작할 수도 있었다. 

 

KEI보고 내용 “개혁에 재경부관료 저항 만만치 않다” 인용, 언론 대서특필

“누구 의견인지 밝혀내라” KIEP에 압력…“소장 중남미 출장” 둘러대 모면

 

당시 개혁노선을 놓고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몸담았던 경제학교수 출신 ‘어공’(어쩌다 공무원)들과 정통관료인 ‘늘공’(늘 공무원)간에 알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캠프출신이었다가 정통관료로 경질된 것은 의견대립과정에서 불거진 것이었다. 관료들이 보기에 학자들은 이상에 치우치고 과격하면서 정작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풀어 나가는 능력은 부족한 사람들이었다. 학자들이 보기에 관료들은 현실적인 제약을 지나치게 고려한 나머지 정작 개혁의 본질은 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보도가 나오자 말자 정부에서 전화가 왔다. 그 보고서를 쓴 사람과 비판적인 의견을 얘기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라는 것이었다. 내가 KEI에게 보고서작성자가 누구인지 실토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또한 KEI가 접촉한 IMF인사가 누구인지 밝히라고 요구한다는 것은 더더욱 하지 말아야 할 일이었다. 고민 끝에 나는 KEI소장이 중남미에 장기 출장을 가서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둘러대면서 시간을 벌기로 작정하였다. 얼마동안 좀 부대끼기는 하였으나 며칠이 지나니까 잠잠해 졌다.

 그 이후에도 KEI의 보고는 계속되었는데 보고서 수신인들에게 언론유출이 재발하면 한국개혁에 대한 국제금융기구의 솔직한 의견청취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주지시켰다. 

 

‘한국 상장기업 상당수 기술적 파산상태’ 세미나 보도도 “무조건 기사 빼라!” 

 

KIEP는 외환위기이후에 국제세미나를 자주 개최하였다. KIEP의 설립목적인 대외개방정책과 국제거시금융정책의 타당한 방향과 처방에 대해서 주로 토의하였지만 국내정책의 방향타가 되는 해외모범사례를 논의하기도 하였다. 한번은 기업구조조정을 주제로 국제세미나를 열었는데 세계은행의 전문가도 발표자로서 참가하였다. 세미나 다음날 모 일간지 가판에 1면 머리기사로 그의 발표논문 내용이 실렸다. 한국 상장기업 중에서 상당수(정확한 비율이 기억이 안 난다)가 기술적 파산(technical bankruptcy) 상태에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발표논문을 다시 꼼꼼히 읽어 보니까 반 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그 내용이 들어 있었다. 

 

기술적 파산은 기업의 영업이익이 부채의 이자상환에도 미달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즉 이자보상비율이 1보다도 작은 경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 기사는 그 정도로 경영이 부실한 기업을 망하게 하지 않고 정부가 지원하여 연명시키고 있다는 점을 비판하면서 기업구조조정이 기득권세력의 저항에 부딪혀서 지체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또 정부에서 경고가 날아왔다. 당장 기사를 빼라는 것이었다. 내가 뺄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신문사에 가서 애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빼 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는 노릇이고, 무언가 논리를 만들어야 했다. 외환위기 이후의 살인적인 고금리, 극심한 자금난, 내수부족의 3중고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도산하거나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앞으로 금리가 안정되고 신용경색이 풀리고 경제성장이 회복되면 비록 일시적으로 이자보상비율이 ‘1’ 미만인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회생할 수 있다. 기업구조조정도 옥석을 잘 가려서 해야 한다. 이러한 취지로 설명을 하면서 간곡히 부탁하였더니 나중에 나온 최종판에서는 기사의 크기가 반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언론의 사명과 정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정부와 언론 사이에 끼어서 곤욕을 치르면서 언론에 대해서 곰곰 생각하게 되었다. 언론의 사명은 사실보도를 통해서 국민들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주는 보도기능과 정부와 사회의 잘못을 고발하고 비판하는 감시기능이라고 알고 있다. 언론의 양대 기능을 위에서 소개한 에피소드에 적용시켜 보면 어떻게 설명될까?

 

첫 번째 에피소드의 경우에 그 신문은 겉으로 보기에는 국제금융기구(IMF)가 한국정부의 개혁정책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를 국민들에게 알리고자 했을 뿐 자신의 평가를 보태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석에서 얘기한 것을 보도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그 의견에 동의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내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개혁을 추진하는 부처입장에서 보면 IMF의 특정인사가 사석에서 한 이야기를 마치 IMF의 공식의견인 것처럼 국민들이 오해할 소지가 있는 보도를 그냥 넘길 수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경우에는 해당 신문이 사실보도와 비판을 동시에 하였다. 세계은행의 전문가가 ‘한국 상장기업의 상당수가 기술적 파산상태에 있다’고 분석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런 기업들을 구제금융으로 연명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자신의 의견을 실었던 것이다. 그러나 해당 공무원들이 볼 때에는 일시적인 기업외적 요인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기업들을 획일적으로 처리해서는 안 되고 옥석을 가리는 것이 옳았던 것이다.

 

‘민감한 정책 건의·자문은 비공개로 직접 전달이 생산적’ 학습효과 터득

 

앞에서 소개한 에피소드 이외에도 숱한 일화들이 있었다. KIEP가 연루된 정부 비판기사에 대해서 고위관리가 직접 전화를 걸어서 경고한 적도 있었고 심지어는 계속해서 부정적 기사가 보도되면 원장 직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막말까지 들었다. 

그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학습효과가 생기게 되었다. 정부정책에 대한 민감한 건의와 자문은 비공개적으로 직접 전달하는 것이 생산적이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합리적인 건의라고 하여도 일단 신문에 보도가 되고 논란이 생기면 관료들은 건의를 수용하기 보다는 방어적인 입장에 서게 되고 그 건의는 사장되고 말기 때문이다.   

 

내용이 민감할수록 언론의 주목을 더 많이 받게 되고 연구원과 집필자의 지명도가 올라가기 때문에 공개하고 싶다는 유혹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그러나 국책연구원의 존립목적은 좋은 정책을 개발해서 정부가 채택할 때 가장 충실하게 달성되는 것이지 세간에 이름을 알리고 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계속> 

 

 <시리즈 순서>

1. 관치금융과 금융자율화

2. 중화학공업의 돈줄, 국민투자기금

3. 급진적 대외개방이냐?, 점진적 대외개방이냐?

4. 반도체산업은 민간주도로 꽃피었다

5.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을 가다 

6. 대우조선을 파산시킬 것인가? 구제할 것인가?

7. 재벌의 업종전문화: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가 되었다 

8. 삼성에게 상용차생산을 허용할 것인가?

9. 첨단산업발전법 제정의 무산

10. 한국의 에너지과소비의 원인을 규명하다

11. IMF 외환위기 이야기

   ➀위기를 예측하지 못하다

   ➁ 대미설득과 금융정책

   ➂경제개혁에 얽힌 일화들

12. OECD 재직 시의 논의

   ➀ 한국은 개도국이 아니다

   ➁한국은 노동탄압국인가?

   ➂북한협력사업구상이 수포로 돌아가다

13. 한국을 둘로 쪼갠 한미 FTA 협상

   ➀협상개시와 통계조작소동

   ➁반대진영의 한미FTA괴담과 대응

   ➂협상타결, 비준, 효과

14.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공염불인가? 

15. 서울 G-20 정상회의

16. 한국의 개발경험 전수: 에티오피아

17. 좋은 일자리 만들기 

18. 연재를 끝내며

 

 ※ 이 시리즈의 목차는 사정에 따라 가감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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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1-09 17:00:00 최종수정 2019-01-09 11: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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