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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 <序> 시리즈를 시작하며 본문듣기
    기사입력 2018-10-10 17:56:00
    최종수정 2018-10-11 11:07:22
    이경태 | 前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前 OECD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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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변 경제학자의 정책 체험기’는 공직생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해외유학과 산업연구원 부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 국제무역연구원 원장, 그리고 주OECD대사를 역임한 이경태 박사가 겪은 주요 경제정책 결정과 집행과정의 뒷얘기들을 담은 연재물이다. 주로 정부 경제정책의 수단과 방법을 연구해 제공한 탓에 본인 스스로 ‘관변 경제학자’라는 수식어를 사용했지만, 그만큼 정책 이면사(裏面史)를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정책당국자들에게도 많은 참고가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20여회에 걸쳐 우리 경제발전의 주요 분수령이 된 정책과 사건의 자초지종은 물론 시사하는 바를 엮어나가고자 한다.<편집자>

 나의 직장생활은 이른바 경제전문가로서의 외길이었다. 1970년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과를 졸업하였고 행정고시 14회에 합격하여 1974년부터 1977년까지 사무관으로 재무부에서 근무하였다. 1979년에 유학을 떠나서 1983년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에 귀국, 2011년에 은퇴할 때까지 산업연구원(KIET),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국제무역연구원(KITA)에서 반생을 보냈다. 중간에 근 3년 동안 OECD대사를 역임했는데 이것도 외도가 아닌 것이 OECD는 경제협력개발기구로 그 역시 경제전문가의 활동 영역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나 같은 사람을 ‘어용 경제학자’ 또는 ‘관변 경제학자’라고 부르면서 비판적 내지는 부정적으로 보는 세평가도 많았다. 경제학자로서의 소신을 버리고 정부의 눈치를 본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특히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시절에는 ‘독재자를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른바 민주화 운동권 사람들이 이 호칭을 즐겨 썼다.


물론 이런 세평에 억울한 생각이 드는 순간도 많았다. 현역으로 일할 때의 대통령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이었다. ‘민주화 이전’ 정부와 ‘민주화 이후’ 정부에서도 나는 경제관과 정책노선을 달리 하지 않았고 정권의 입맛에 맞추어 말을 바꾸지도 않았다.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경제학 지식을 한국경제에 적용해서 분석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하였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이 “어용경제학자”라고 불리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동안 경제정책의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였다. 1983년부터 1997년까지 15년을 산업연구원(부원장)에서 보냈는데 주된 연구 분야는 산업정책이었다. 산업정책은 산업의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정부가 시장의 자원배분 과정에 개입하는 경제정책이다. 그 정책수단으로서는 금융,기술,노동,교육,공정거래,산업조직,무역통상,규제 등 경제학의 거의 모든 분야를 포함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넓게, 또는 얕게 경험이 쌓이고 지식이 축적되었다.


산업연구원 시절에 2회에 걸쳐서 4년 정도 상공부장관의 자문관으로 파견 나가 있으면서 산업정책의 현장을 좀 더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연구원에서 건의했던 내용이 정책현장에서 변형, 수정, 왜곡, 조정되는 배경에는 정치적인 고려와 권한 다툼이 크게 작용한다는 사실을 목격할 수 있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는 7년 정도 원장으로서 일했다. 내가 깊이 알지 못했던 국제통상에 대해서 전문가들과 토론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통상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여기에 더해서 국제금융과 해외지역경제 및 지역경제통합에 대해서도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직업적 국책연구원’ 생활에서 3년 정도 외도를 했는데 2001년 말부터 2004년 7월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대사로서 일했다. 
OECD는 국제적 종합경제연구소이며 국제적 경제정책 토의기구이다. 그곳에서 3년 가까이 일하면서 나는 글로벌 경제이슈와 주요국의 경제정책에 대한 생생한 지식을 얻고 안목을 넓혀 갈 수 있었다. 

마지막 현역생활은 무역협회의 국제무역연구소에서 3년6개월 정도 근무하는 것으로 그 막을 내렸다. 국제무역연구원은 학문적인 연구보다 좀 더 실용적인 연구를 수행하였다. 그곳에서 무역에 종사하는 기업들에 대해서 깊이 있는 이해를 할 수 있었다.

 

현역에서 은퇴 후 2년 정도 박근혜 후보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에서 주로 ‘일자리 만들기’라는 과제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정책대안을 제시해 보려고 노력하였고 여러 분야의 교수들과 토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제 그동안 내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여했던 경제정책이슈들을 선정하여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되돌아보면서 보람을 느꼈던 점, 아쉬웠던 점, 부끄러웠던 점, 현역에서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점 등을 정리하는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다만 이 글은 본인의 생각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사실의 오류나 부적절한 표현이 있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대목에 대해서는 올바른 내용으로 바로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아울러 보다 깊이 있는 정책 입안(立案) 기록을 위해 많은 조언과 성원도 함께 부탁드린다. <ifs POST>

 

   <시리즈 순서>
   1. 관치금융과 금융자율화
   2. 중화학공업의 돈줄, 국민투자기금
   3. 급진적 대외개방이냐?, 점진적 대외개방이냐?
   4. 반도체산업은 민간주도로 꽃피었다
   5. 개혁-개방초기의 중국을 가다 
   6. 대우조선을 파산시킬 것인가? 구제할 것인가?
   7. 재벌의 업종전문화: 호랑이를 그리려다 고양이가 되었다 
   8. 삼성에게 상용차생산을 허용할 것인가?
   9. 첨단산업발전법 제정의 무산
   10. 연구원노조는 과연 필요한가?
   11. 한국의 에너지과소비의 원인을 규명하다
   12. IMF 금융위기징후를 무시한 오만 
   13. IMF 금융위기와 고금리정책
   14. IMF 금융위기와 노동유연성
   15. IMF 금융위기와 수출금융문제
   16. IMF 금융위기와 구조조정 시시비비
   17. 한국은 개발도상국인가? OECD 논의
   18. 미국과 유럽에 대한 OECD 경험
   19. 한국을 둘로 쪼갠 한미 FTA 협상
   20. 동아시아 경제통합은 공염불인가?
   21. 서울 G-20 정상회의
   22. 한국의 개발경험 전수: 에티오피아
   23. 좋은 일자리 만들기: 

 ※이 시리즈의 목차는 사정에 따라 변경될 수 있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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