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병무의 행복한 로마 읽기] <48>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의 탄생 (서기 481~843)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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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제국이 멸망한 이후 유럽은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유럽의 핵심 국가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영국 등이 탄생한 과정을 추적해보자. 4세기 말 훈족의 침입으로 이동한 게르만족은 자신들의 왕국을 세웠다. 게르만족은 서고트족, 동고트족, 반달족, 알란족, 수에비족, 부르군트족, 프랑크족, 앵글족, 색슨족 등이 있다. 이들 게르만족 중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인 부족이 프랑크족이다. 프랑스라는 이름은 바로 프랑크족에서 유래되었다. 

 

패트릭 J. 기어리는 『메로빙거 세계』에서 “프랑스와 독일은 한 뿌리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면서 프랑크 왕국의 발전 과정을 소개한다. 프랑크왕국은 서기 481년 메로빙거 왕가의 시조인 클로비스 1세에 의해 건국되었다. 클로비스 1세는 기독교의 정통파인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다른 게르만 부족들을 정복했고, 갈리아 중부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왕국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메로빙거 왕조의 지배력은 6세기 후반부터 약화되기 시작하여 8세기에 카롤루스 왕가로 대체된다. 카롤루스 피핀은 국내의 반발 세력들을 진압하고, 약화된 메로빙거 왕조를 붕괴시킨 후에 카롤링거 왕조를 세웠다. 피핀의 아들 카롤루스 대제는 프랑크 왕국의 전성시대를 열어 유럽 대부분 지역을 정복했다. 

 

그는 로마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쟁터에 나갈 때마다 성직자를 동반하고, 정복지에는 반드시 새 교구를 설치하여 선교 활동을 도와주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로마 교황은 서기 800년 성탄절에 성 베드로 성당 미사에서 카롤루스에게 서로마 황제라는 호칭을 선물하는 대관식을 거행했다. 대관식은 프랑크 왕국을 프랑크 제국으로 격상시켰다. 김창성 교수는 『사료로 읽는 서양사』에서 “카롤루스 대제가 로마 황제로서 대관식을 치른 사건은 중세 유럽의 제1단계가 완성된 것이다”라고 평가하면서 카를로스 대제의 문예부흥과 프랑크 왕국의 분화 과정을 소개한다. 

 

]카롤루스는 어떻게 문화 부흥을 일으켰을까? 그는 출신 지역과 민족을 불문하고 최고의 학자들을 궁정으로 초빙하여 라틴어 문법과 논리학 등 고전 학문을 정리하고 편찬하도록 지원했다. 학교를 세워 학교 진흥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또한 수도원에서 고전을 본격적으로 필사하고 서적을 제작해 준 덕택에 상당수의 고대 저작들이 없어지지 않고 9세기 필사본의 형태로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카롤루스가 고전 문학을 부흥시키고, 학교를 세워 야만과 무지 상태에 있던 유럽인들을 계몽하고 지원하는 일에 앞장서면서 문화가 발전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카롤링거 르네상스’라고 부르게 되었다. 

 

카롤루스 황제가 사망한 후 후계자들은 내분에 휩싸여 거대한 왕국을 관리하지 못하고 서기 843년 베르딩조약에 의해 3개 왕국으로 분리된다. 그리고 서프랑크 왕국(프랑스), 동프랑크 왕국(독일), 중프랑크 왕국(이탈리아)으로 갈라져 장차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발전하게 된다. 

 

영국은 어떻게 되었을까? 브리타니아는 기원전 6세기경 켈트족이 유럽에서 건너와 정착했다. 카이사르가 기원전 55년에 브리타니아 섬을 원정하고,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서기 43년 브리타니아를 정복한 후 400년 동안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 4세기 후반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어 앵글족과 색슨족 등이 440년대에 브리타니아를 침공했다. 이들은 원주민인 켈트족과 거기서 남아 있던 로마 주민들에게서 땅을 빼앗아 왕국을 건설했다. 방위력이 약화된 로마 군대는 마침내 서기 442년 철수하여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 켈트족은 웨일스와 스코틀랜드 지방으로 밀려났다. 9세기 초 웨식스 왕 에그버트가 앵글로색슨계의 7왕국을 복속시켜 통일된 잉글랜드왕국을 위한 기초를 마련했다. 

 

게르만족의 이동에 이어 북유럽 바이킹의 이동, 흑해 북쪽의 유목민인 마자르족의 침입, 이슬람교의 위협 등으로 유럽은 혼돈을 겪으면서 생존이 절박한 상황에서 서서히 봉건제가 형성되고 중세로 이어지게 된다. 

 

한편 동로마 제국은 1453년까지 유지되었다. 동로마제국(395~1453)은 지금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을 수도로 한 중세 로마제국으로, 비잔티움제국이라고도 부른다. 비잔티움은 콘스탄티노플의 옛 이름을 뜻한다.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독자적인 노선을 걷던 동로마 제국은 서기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즉위하면서 달라졌다. 그는 “서방을 되찾고 제국의 옛 세력과 판도를 회복하겠다”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행동에 옮겼다. 옛 로마 제국 영토 대부분을 회복하여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였으며, 황제의 권한이 강해졌다. 하지만 무리한 팽창정책과 오랜 전쟁으로 오히려 제국의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의 치세 말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아가 제국을 위협하자 서부로의 팽창 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기에 힘들게 획득한 제국의 영토의 대부분을 상실했다. 

 

이후 동로마 제국은 서로마 제국에 대한 회복의 꿈을 버리고 동로마 제국에 전념하게 된다.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로마 문화의 전통이 잘 보존되어 있고, 대학을 중심으로 학문 연구가 활발한 문화의 도시가 되어 중세 대학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국제 무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고, 슬라브족의 종교와 문화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편 그리스 고전 문화를 보존, 육성하여 서유럽에 전했고, 이탈리아 인문주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서기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하여 동로마제국이 멸망했다. 이렇게 해서 서로마제국이 476년에 쇠망한 후 약 1,000년 후에 동로마제국도 멸망함으로써 로마제국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로마의 건국이 기원전 753년이었으니 서로마와 동로마를 합하면 로마제국은 무려 2,200년이나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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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9-19 1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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