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돈의 역사해석] 통합이냐 분열이냐,국가흥망의 교훈#11:바람처럼 사라진 혁련발발 하나라(C)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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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망의 역사는 결국 반복하는 것이지만 흥융과 멸망이 이유나 원인이 없이 돌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 나라가 일어서기 위해서는 탁월한 조력자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진시황제의 이사, 전한 유방의 소하와 장량, 후한 광무제 유수의 등우가 그렇다. 조조에게는 사마의가 있었고 유비에게는 제갈량이 있었으며 손권에게는 육손이 있었다. 그러나 탁월한 조력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창업자의 통합능력이다. 조력자들 간의 대립을 조정할 뿐 만 아니라 새로이 정복되어 확장된 영역의 구 지배세력을 통합하는 능력이야 말로 국가 흥융의 결정적인 능력이라 할 수가 있다. 창업자의 통합능력이 부족하게 되면 나라는 분열하고 결국 망하게 된다. 중국 고대사에서 국가통치자의 통합능력의 여부에 따라 국가가 흥망하게 된 적나라한 사례를 찾아본다.   ​

 

 

 

(14) 비수대전 패배(AD383)와 유현의 등장(AD385)

 

AD383년 전진의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동진의 태보 사안과 그의 조카 사현에게 참패를 당한 뒤 북중국은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비록 전진의 부견이 살아있었고 또 군사력 또한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지만 북동쪽의 모용수가 이끄는 후연세력과 요장의 후진, 그리고 각 지방에 흩어져 있는 작은 세력들은 과거와 같이 전진에 대해 충성을 보내지 않게 되었다. 모용충은 장안을 습격해 들어왔고 서연을 세운 모용홍은 섬서성 화음에 웅거했다. 여광 또한 전진의 부하로 있었지만 혼란을 틈타 서역지방에서 독립하여 떨어져 나갔다.  

유고인은 전진의 주군 부견의 아들 부비가 주둔하고 있던 업성이 후연 모용수에게 포위되자 지원군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 당시 유고인 휘하에 있던 모여문과 모여상은 군사들이 출정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반란을 모의했다. 유고인을 격살하고 후연 모용수에게로 도망간 것이다. 유고인의 군대는 무너졌고 잔당을 규합한 사람은 유고인의 동생 유두권이었다.(AD384) 

 

선비족 유두권은 하란부(산서성 우옥)을 근거지로 하여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다. 유두권의 아들 유나진은 아버지 유두권에게 사촌형 유현을 제거하라고 권유했다. 유현은 유두권의 형 유고인의 아들이다. 그러나 유두권은 아들의 청을 듣지 않았다. 얼마 후 유현이 유두권을 죽이고 자립했다. 그리고 도망 와 있는 대나라 계승권자 탁발규도 죽이려 했다. 유현의 동생 유항니의 처 탁발규의 고모였으므로 유현의 음모를 몰래 탁발규 어머니 하란씨에게 알렸다. 유현의 참모인 양육권도 탁발십익건의 조카로써 평소 탁발규의 능력을 깊이 존경하고 있던 터라 유현의 계획을 그만 놔 둘 수가 없었다. 목숭과 해목을 보내 탁발규의 어머니에게 알려왔다. 

 

[그림] 유위진, 유현 및 탁발규 세력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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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규의 모후 하씨는 밤에 유현을 불러 술을 취하도록 한 뒤 그 틈을 타고 아들 탁발규를 도망치게 했다. 그런 뒤 고의로 말을 놀라게 하여 장막을 온통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통곡하며 절규했다. 

 

“내 아들이 없어졌으니 누가 죽였는가?” 

 

갑작스런 소란에 미안한 마음이 든 유현은 미처 탁발규를 추격할 생각을 못했다. 탁발규는 외삼촌 하눌이 있는 하란부로 도망갔다. 상황을 파악한 유현은 이 모든 계획의 뒤에 양육권이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목숭이 겉으로 분노한 척 나서서 양육권의 처와 말을 강제로 빼앗아 왔다. 그것은 탁발규 구원계획이 들키게 되면 그렇게 하라고 양육권이 미리 알려 준 대로 였다. 꼼짝없이 속아 넘어간 유현은 탁발규를 받아들인 하란부 하눌을 분하게 여겨 하씨를 죽일 참이었다. 낌새를 알아차린 하씨는 유현의 동생 유항니 집으로 도망가 3일을 숨어 지냈다. 유항니는 온 가솔을 들어서 형에게 애원하여 하씨는 죽음을 면했다.(AD385) 얼마 후 유현부락에 반란이 생기자 하씨는 유화진과 함께 아들이 있는 탁발규에게로 도망갔다. 하란부에 도착한 탁발규에게 외삼촌 하눌이 이렇게 말했다.

 

“ 나라(대)를 회복하거든 반드시 늙은 신하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탁발규가 이렇게 말했다.

 

“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 말씀을 깊이 새기고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해 AD386년 열 다섯 살 탁발규는 우천(내몽고 흥화)에서 대나라를 다시 세웠다. 이 해에는 대나라 뿐만 아니라 요장의 후진과 여광의 후량과 후연의 모용수가 나라를 세우거나 제위에 올랐다.  

 

 

(15) 다시 높아진 유위진의 위상(AD386)

 

나라를 다시 건국한 탁발규는 당장 유현을 공격했다. 유현은 선남(산서성 우옥)에서 마읍(산서성 삭주)으로 도망갔다. 유현의 한 부족인 유노진은 주민을 거느리고 탁발규에게 항복을 요청했다. 유노진의 형 유건은 탁발규의 주력부대인 하란부에 거주하고 있었으므로 유노진은 자신의 부락민을 형 유건에게 귀속시킬 것 요청했다. 대왕 탁발규는 승인했다. 유건은 또 다른 동생 유거근을 하란부에 보내 감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하란부의 하염간이라는 원로대신은 탁발규의 모후 하씨의 삼촌으로써 전에 탁발규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었다. 평소 어린 탁발규의 세력이 강성해지는 것이 못 마땅했다. 하염간이 유건과 유거근에게 다가가 자신을 따르라고 요청했다. 유건과 유거근 형제는 하염간의 뜻을 좇았다. 유노진은 격노했다. 자기 가족 부대를 하란씨가 아니라 대나라에게 복속시키는 것이 본뜻이었다. 유노진은 형 유건과 동생 유거근을 모두 죽였다. 자신에게 귀속하기로 한 유건 형제가 피살되자 하염간은 즉각 유노진을 공격했다. 유노진은 탁발규가 있는 대나라로 도망쳤다. 탁발규는 사신을 보내 하염간에게 군사행동에 대해 경고를 했다. 하염간은 탁발규의 기세에 눌려 군사행동을 자제했다. 유현의 동생 유폐니도 탁발규에게 귀복했다.

 

십년 전인 AD376년 대나라를 멸망시킬 때 부견은 탁발십익건의 어린 아들 탁발굴돌을 장안으로 압송했었다. 그러나 부견이 비수대전에서 패전한 뒤 전진이 무너지자 탁발굴돌은 서연을 세운 모용영을 따라서 동쪽으로 갔다. 모용영은 탁발굴돌을 신흥(산서성 기주)태수로 임명했다. 유현은 동생 유항니를 보내 인질처럼 잡혀있는 탁발굴돌을 영접하고 탁발규의 남쪽 경계서부터 공격해 들어왔다. 탁발규 내부에서도 우환 등이 탁발굴돌과 결탁하여 탁발규를 체포하려는 반란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우환의 장인은 사위의 음모를 탁발규에게 알려줬다. 탁발규는 우환과 그 측근 5명을 죽이고 나머지 가담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북쪽 하란부가 있는 음산산맥으로 피신한 뒤 모용수의 후연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후연 모용수는 모용린을 보내 탁발규를 구원해 주었다.(AD386) 모용린의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탁발굴돌과 하염간은 탁발규를 공격해 들어왔다. 공격을 받은 북위의 북부대인 숙손보락은 서쪽의 유위진에게로 도망갔다. 탁발규는 모용린의 지원군이 도착하자 연합군을 결성하여 탁발굴돌을 반격했다. 참패한 탁발굴돌도 유위진에게로 도망갔다. 그러나 유위진은 탁발굴돌 무리를 모두 죽였다. 이제 삭방(내몽골 이금곽락기)에 근거지를 둔 유위진은 막강한 군사와 병마를 지니게 되었다.(AD386) 유위진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자 후진 주군 요장은 그를 대장군, 대선우, 하서왕으로 삼았고 장안에 근거지를 둔 서연의 모용영 또한 유위진을 대장군 및 삭방목으로 삼아서 자기편으로 끌어드리려고 하였다.

 

 

(16) 유현 형제의 내분과 유현 세력 멸망(AD387)

 

산서성 북단 끝자락 우옥현을 거점으로 한 유현의 세력은 동쪽으로는 탁발규와 대치하고 서쪽으로는 유위진과 경계를 하고 있었지만 영토가 넓고 비교적 비옥하여 강력한 군대를 가질 수가 있었다. 아버지 유고인이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백성들의 민심 또한 얻고 있었다. 그러나 유현과 동생 유가니 사이의 다툼으로 내분이 일어났다. 북위 장곤이 탁발규에게 후연과 연대하여 내분에 빠진 유현 세력을 토벌하자고 종용했다. 혼자서는 힘이 달렸던 탁발규는 장수 안동을 후연 모용수에게 보내 또 다시 군사지원을 요청했다.  

 

건국한지 얼마 되지 않은 탁발규가 반란을 피해 전전긍긍하는 동안 북중국의 패권은 후연의 모용수가 잡고 있었다. 유위진은 환심을 얻기 위해 모용수에게 말 몇 천 필을 보냈다. 그러나 도중에서 유현이 그 말을 약탈했다. 격노한 모용수가 모용해를 보내 유현을 공격하여 대파시켰다. 유현은 남쪽 마읍, 즉 산서성 삭주 서쪽 산으로 도망갔다. 탁발규와 모용린이 그치지 않고 유현을 쫓아와 공격하자 유현은 마침내 후연과 사이가 좋지 않은 모용충의 서연으로 도망갔다. 모용린은 유현의 모든 군사와 가축을 거두었다. 빼앗은 가축이 천만 마리가 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이로써 유현의 세력은 사실상 끝이 난 셈이다. 모용수는 유현이 다스리던 지역의 통치를 그의 동생 유가니에게 위탁했다. 

 

 

(17) 하란의 내부 분열과 막강한 후연 부상(AD390) 

 

후연의 모용수가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남북으로 세력을 확장해 가는 AD390년 경후연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위 탁발규나 그 너머 후진 요장은 후연과 우호관계를 유지했으며 멸망(AD394)하기 직전인 전진의 부등 또한 감히 후연에게 대적할 세력은 되지 못했다. 그러니 내몽고 오르도스 이금곽락기에 웅거하던 유위진에게 북위와 후진과 전진은 후연의 예봉을 막아주는 방패와 같은 역할을 했던 셈이다.

   

교활한 유위진은 그 틈을 타고 아들 유직력제를 보내 내몽고 너머 북쪽에 자리 잡은 하란부하눌을 공격했다. 다급해진 하눌은 조카 탁발규의 북위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탁발규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지원에 나섰다. 그리고 하눌의 요청에 따라 하란 부족을 모두 흡수하여 북위의 근거지인 지금의 산서성 대동지역으로 이주시켰다.(AD390) 

 

하눌의 동생 하염간은 형이 나라를 통째로 탁발규에게 넘겨준 것이 못 마땅했다. 과거에도 여러 번 탁발규를 시해하려다가 실패한 것도 형님 하눌 때문이지만 나라를 그런 조카에게 그냥 넘겨주는 것이 못마땅했다. 하염간은 형 하눌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AD391) 그러나 평소 신망이 두터운 하눌이었으므로 하염간의 밀모를 전해준 사람이 있었다. 하염간과 하눌 사이에 무력다툼이 일어났다. 북위 탁발규는 종주국 후연에게 하염간 토벌을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다. AD390년 2월 모용수는 양쪽을 다 공격하기로 했다. 모용린을 보내 하눌을 공격하게 하고 난한은 하염간을 공격하게 했다. 그리고 6월에는 모용린이 하눌과 하염간을 모두 포로로 잡았다. 모용수는 하눌과 그의 부족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려보냈으나 하염간은 중산(하북성 정주)으로 강제 이주시켜 자신의 관할구역 안에 잡아 두었다.

모용수의 넷째 아들이자 영리한 모용린은 탁발규의 잠재력을 간파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기회에 탁발규마저 잡아들여 후환을 끊어버리자고 아버지 모용수에게 요청했다. 그러나 모용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영특한 탁발규 또한 후연 조정 내부에서의 자신을 해하려는 움직임을 모를 리가 없었다. 마침 사신으로 보낸 탁발규 동생 탁발고를 후연이 인질로 잡고 더 많은 조공을 무리하게 요구하자 후연과의 우호관계를 끊고 서연 모용영과 선린관계를 맺었다.

 

 

[그림] 하(夏:AD407-AD431)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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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7-26 17:47:00 최종수정 2018-07-26 17: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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