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21> 1년 365일의 태양력 달력을 만들다 (기원전 49~44)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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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가 사용한 달력은 왕정시대의 2대 왕 누마가 만든 태음력으로, 1년이 355일이었다. 남는 날수는 몇 년마다 한 달을 늘리는 방법으로 조정했다. 이렇게 조정하다 보니 때로는 달력상의 계절과 실제 계절 사이에 3개월 가깝게 차이가 나기도 했다. 필립 프리먼은 『카이사르』에서 “어느 해는 추수 감사제가 곡식이 여물기도 전에 시작되었고, 카이사르가 내전을 벌일 당시에는 미처 날짜를 추가하지 않아 계절과 달력이 두 달 이상 차이가 나기도 했다”면서 불편한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카이사르는 이러한 불편을 극복하기 위해 정확한 달력을 만들 필요성을 느꼈다. 동시에 로마의 속주에서도 동일한 달력을 사용하면 생활 리듬이 어디에서나 같아지리라고 믿었다. “로마 세계는 문화는 다양해도 문명은 공통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카이사르에게 달력을 공유하는 것은 문명 통합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카이사르는 로마의 달력을 태양력으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했다.

 

달력 개정 작업은 이집트에 머무르는 동안 알게 된 이집트의 천문학자와 그리스인 수학자에게 맡겼다. 로마에 온 과학자들은 심혈을 기울여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365일 6시간으로 계산해냈다. 이렇게 해서 365일은 1년이 되고, 1년은 열두 달로 나뉘었다. 1년마다 생기는 오차는 4년에 한 번씩 하루를 더하는 방식으로 윤년을 만들어 2월이 29일이 되도록 했다. 마침내 기원전 45년, 태양력이 탄생했다. 이 태양력은 카이사르의 이름을 따서 율리우스력(曆)이라고 불렸다. 

 

율리우스력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가 1582년에 다시 개량하여 ‘그레고리우스력’이 탄생할 때까지 무려 1,600년 이상 지중해 세계와 유럽 및 중근동에서 사용되었다. 그레고리우스가 달력을 개량한 것은 지구의 공전에 정확하게 365일 5시간 48분 46초가 걸린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율리우스력이 1년을 365일 6시간으로 계산한 것과 비교할 때 11분 14초의 오차밖에 생기지 않았다. 그레고리우스력은 시간만 정확해졌을 뿐 달력의 개념은 율리우스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이 카이사르 때 만들어졌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로마 세계의 통합을 위해 통화를 개혁했다. 카이사르는 로마 세계 전체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디서나 통용이 가능한 기축통화를 구상했다. 이를 위해 국립조폐소를 신설했다. 국립조폐소는 원로원이 가지고 있던 조폐권을 넘겨받아 금화, 은화, 동화를 주조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이민족이 자신들의 화폐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로마 화폐와 지방 화폐를 병용하도록 했다. 이러다 보니 환전상이 생겼다. 

 

카이사르는 해방노예에게도 공직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국립조폐소의 소장에 해당되는 ‘조폐 3인 위원회’의 초대 위원은 3명 모두 카이사르 집안에서 경제통으로 소문난 노예들이었다. 카이사르는 이들을 노예에서 해방노예로 신분을 바꾼 후 임명했다. 이로써 해방노예가 행정 분야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해방노예가 지방의회 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자 행정 분야에 대거 등용되었다. 

 

또한 카이사르는 교사와 의사라는 직업 자체에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다. 수도 로마에서 교양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와 의료에 종사하는 의사에게 일괄적으로 시민권을 주기로 결정한 것이다. 인종, 피부색, 민족, 종교도 따지지 않고 로마에서 교사나 의사로 일하는 조건만 충족시키면 된다. 

 

항소권과 배심원 문제는 로마의 사법 제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셈프로니우스 법’은 항소권을 보장한 법이다. 즉, 어떤 죄를 지었든 재판을 하지 않고 항소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형에 처하는 것을 금지했다. 카이사르는 셈프로니우스 법을 부활시킴으로써 원로원 최종 결의라는 무기를 원로원으로부터 회수해버렸다. 카이사르 자신이 원로원 최종 결의의 희생자였기에 그 문제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다. 이제 로마 시민권 소유자는 누구든지 재판도 받지 않고 항소권도 인정받지 못한 채 사형당하는 일은 없었다. 

 

이 법의 혜택을 본 대표적인 사람이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 바울이다. 바울은 유대인이지만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상소해서 이스라엘에서 로마로 재판 받으러 가는 장면이 나온다. 

 

“내가 가이사(카이사르)께 상소하노라 한대,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이르되 ‘네가 가이사에게 상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나아가 재판의 생명은 공정성이다.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는 배심원 구성이 중요하다. 그라쿠스 형제 이후 배심원 구성 비율 문제를 가지고 원로원파와 민중파가 끊임없이 대립해왔다. 

카이사르는 계급투쟁의 성격을 띠며 권력에 따라 바뀌는 배심원 제도를 폐지하고, 그 대안으로 배심원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정했다. 자격 요건은 40만 세스테르티우스 이상의 재산을 가진 로마 시민이다. 이 정도면 중산층 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한다. 안정된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면 노예였던 사람도 배심원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배심원 구성을 둘러싸고 끊임없이 제기된 계급투쟁을 마무리했다. 

카이사르는 로마법의 집대성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로마법은 성문법의 전통을 가지고 있어 많은 법이 만들어졌지만, 오랫동안 쓰이지 않으면 잊혀지는 법도 많았다. 제정된 법을 집대성해놓으면 만들어진 법이 사장되지 않고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로마법 역시 로마 세계를 통치하는 데 기준이 되기 때문에 로마법을 집대성할 필요가 있었다. 

 

광활한 제국은 다인종·다민족·다문화·다종교·다언어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모두에 통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보급할 필요가 있었다. 카이사르는 제국을 관통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 로마 달력, 로마 통화, 로마법, 로마가도를 구상하고 실천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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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08 17:40:00 최종수정 2018-03-15 16:2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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