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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에 결코 행복은 없다.”

  사람 사는 것이 모조리 괴로움이고 진정한 행복이란 적어도 삶 속에는 없다는 것이 붓다의 통찰이었다.(보통 불교에서 ‘괴로움’으로 번역되는 ‘dukkha’는 몸이나 마음의 아픔을 의미하는 ‘괴로움’보다는 ‘불완전함’의 개념에 가깝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는 속성을 갖고 있어서 완전하지 않다. 지고의 행복이나 영광, 축복 따위는 그래서 결코 없다.)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데는 병의 원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원인을 모르고 나타난 증상만 완화시키는 치료법을 대증요법이라고 한다. 병은 대증요법만으로 치료되지 않는다. 병을 말끔하게 낫게 하는 것을 근치라고 하는데 근치를 위해서는 반드시 병의 원인을 알아야 하고 원인을 제거하면 병은 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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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붓다는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다고 가르쳤다. 바로 괴로움의 원인을 알고, 원인을 제거하면 된다고 말했다. 붓다의 유명한 명제,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이 없어진다”는 명제를 연기설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왜 괴로운가? 즉 괴로움의 원인은 무엇인가? 괴로움의 원인에 대한 발견은 붓다의 사상 가운데 가장 철학적이고 심오한 부분으로 일컬어진다. 고의 발견이 붓다의 첫 번째 업적이라면 고의 원인의 발견은 두 번째 업적이다.(이는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있는 진리를 발견했다고 붓다 스스로 말했다.)

  삶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인간이 왜 고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머물러 살아야 하는지를 설명해낸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이는 매우 철학적이고 정교하며, 불교철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12연기설’로 불리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은 잠시 미뤄두자. 복잡하고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이 난해한 철학적 이론에 대한 이해의 바탕을 마련해보자. 

 

  붓다는 뭘 깨달았을까?

  어느 날 H법사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붓다가 깨달은 게 뭘까요?”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기초적인 질문에 나는 즉각 답변하지 못하고 더듬었다. 말문이 꽉 막혔다. 스스로 제법 불교를 안다고 행세했는데 이 느닷없는 질문에 도무지 대처가 안됐다.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3법인... 더 나아가서는 유식, 반야, 천태, 화엄... 펴면 우주법계를 채우고, 거두어들이면 이 한마음(一心)이라는 진리... 붓다가 깨달았다는 이 세상 모든 진리? 불교의 지식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팔만대장경의 언설을 어찌 몇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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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문답처럼 손가락 하나를 세워서 대답해야 하나? 아는 건 많은데 뼈대가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허약한 뼈대 위에 살만 디룩디룩 찌워 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식의 비만 탓이었을 것이다. 순간적으로 만감이 교차하고 창피해졌다. 되게 쪽팔렸다. 후에 알고 보니 불교깨나 안다고 깝치는 인사들을 다루는 H법사의 상투적 전략이었다. 암튼 나는 그 전략에 말려 한 마디 대답도 못하고 말았다. 진정견해가 없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다. 진리는 단순하다. 그만큼 장광설은 공허하다. 

 

  나는 그대들이 급류 흐르듯하는

  유창한 달변을 가졌어도 인정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들의 총명한 지혜를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그대들의 진정견해가 투탈자재하기를 바랄 뿐이다.

  수행자들아! 설사 백 권의 경과 율을 

  잘 해설할 수 있다 하여도

  꾸밈없는 현재를 사는 한 사람의 삶이 

  더욱 위대한 것이다.

  (臨濟錄, 示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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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가지 밝은 지혜”

 

  "눈이 생겨났다. 

  앎이 생겨났다. 

  지혜가 생겨났다. 

  명지가 생겨났다. 

  빛이 생겨났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외친 선언이다. ‘깨닫는다’는 말은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는 뜻이다. (종교학자들은 그래서 불교를 주지주의적 종교라고 부른다.) 붓다가 깨달아 알게 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보통 ‘3가지 밝은 지혜’, 三明의 지혜라고 일컫는다. 첫째, 무수한 중생들이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환하고 철저하게 알았다. 살아있는 존재 가운데 괴로움을 벗어난 존재는 없다. 괴로움은 삶 자체의 속성이다. 둘째, 중생들이 겪는 이 괴로움은 시작도 끝도 없이 계속된다는 사실을 환하고 철저하게 알았다. 불교교리는 전자를 천안통, 후자를 숙명통이라는 신통과 연결 지운다. 모든 중생의 삶의 현실을 꿰뚫어보는 지혜의 눈이 천안통이다. 모든 중생의 삶의 궤적을 꿰뚫어보는 지혜 눈이 천안통이다. 전자는 공간을 꿰뚫는 지혜요, 후자는 시간을 꿰뚫는 지혜이다. 붓다의 업적은 고, 즉 괴로움의 발견이다. 괴로움은 진리이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알아야 하기에 할 진리이기에 성스럽다. 

  붓다가 발견한 이 두 가지 진리는 삶이 괴로움의 바다를 헤매고 있다는 사실이다. 적어도 이 사실을 부정하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가 아니다. ‘삶 속에 어찌 괴로움만 있겠느냐. 그래도 살다보면 기쁨도 즐거움도 행복도 있게 마련이지’하는 견해를 갖고서도 자신을 불교도라고 우기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의 견해는 붓다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가 즐거움, 기쁨,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은 고의 특성을 본질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괴로움의 바다를 헤맨다. 하지만 그것은 숙명도, 운명도 아니다. 붓다가 깨달은 세 번째 진리 때문이다.

  붓다는 숙명처럼 지워진 괴로움의 질곡에서 헤어 나오는 길이 있다고 선언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질곡에서 벗어났다.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은 붓다가 걸었던 길이다.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환하고 철저하게 알았다. 모든 이뤄진 것에는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괴로움의 일어남에도 원인이 있다.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붓다는 그 괴로움의 원인이 사람의 행위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하는 행위(땅하 ; tanha) 때문이다. 이 단어는 ‘애욕’으로 번역되기도 하는데, 우리가 일상언어 속에서 쓰는 애욕과는 다소 다른 늬앙스를 갖고 있다. ‘땅하’는 ‘의지’처럼 모종의 힘을 갖는다. 그리고 그것이 모이면 괴로움이 일어선다.(集起) 삶은 이런 괴로움의 조건들이 충족되어 시작된다. 태어남도 죽음과 마찬가지로 괴로움인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것을 4성제 중 두 번째 진리인 집성제(集聖諦)로 교리에서는 정리한다. 그리고 괴로움의 세계를 보다 자세히 그려놓은 것이 바로 12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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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1-06 17: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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