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로마 읽기-천년제국 로마에서 배우는 지혜와 리더십 <12> 로마가도와 만리장성은 무엇이 다를까?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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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17세기 프랑스 시인 라퐁텐의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시인의 말을 인용하여 『로마인 이야기』 12권의 제목으로 정했다. 사회 간접자본을 뜻하는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녀는 로마인이 ‘인프라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큼 인프라를 중시했다며 인프라에 대한 정의를 종합적으로 내리고 그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다. 

 

“로마인이 생각하는 인프라에는 도로, 교통, 항만, 신전, 공회당, 광장, 극장, 원형 투기장, 경기장, 공중목욕탕, 수도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다만 이것들은 하드웨어라고 말할 수 있는 인프라이고, 소프트웨어적인 인프라에는 국방, 치안, 조세에다 의료, 교육, 우편, 통화 등의 시스템까지 포함된다.”

 

인프라의 상징은 로마가도다. 로마가도는 오늘날 고속도로와 같다. 최초의 로마가도는 기원전 312년에 건설된 아피아 가도다. 이 도로는 로마의 감찰관인 아피우스가 도로 건설을 입안하고 직접 총감독을 맡았다. 그는 로마 수도(水道)를 최초로 건설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아피아 가도 이후에 모든 로마가도에는 그 길을 만든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것이 관행이 되었다. 아피아 가도에 이어 아우렐리아 가도, 플라미니아 가도 등이 차례로 건설되었다. 기원전 300년대에 도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고속도로를 닦았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로마는 영토를 확장하면 반드시 길을 먼저 만들었다. 로마에서 시작하여 지중해를 중심으로 유럽, 북아프리카, 아시아까지 로마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에는 로마가도가 놓였다. 로마가도는 1차적으로는 군사적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군대가 신속하게 이동하고 군대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군사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물류가 흐르는 경제적인 도로로서 상인과 무역상, 관리, 여행가가 오가며 지식과 정보가 흘렀다. 로마가도가 로마제국의 근간이 된 것이다. 

 

군사 목적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도로는 가능한 한 평탄한 직선으로 건설되었다. 길을 평탄하게 유지하기 위해 지반이 약한 습지대에서는 말뚝을 많이 박아 토대를 쌓고 그 위에 도로를 건설했다. 또한 강이나 계곡에서는 길과 같은 높이로 다리를 만들어 도로가 지나가도록 했다. 로마가도의 포장 구조는 어떠했을까? 단면도를 보면 오늘날의 포장 구조와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차도는 4미터이고 인도는 양쪽에 3미터이니 가도는 10미터 폭이었고, 차도와 인도를 구분하여 이동 속도를 높였다. 차도의 깊이는 1미터 정도로 배수가 잘되도록 설계했다. 도로 중앙부는 높이고 가장자리는 낮게 아치형으로 만들어 비가 오면 빗물이 가장자리로 고이게 설계한 것이다. 

 

놀라운 것은 기원전 120년경에 최초의 도로 관련법인 ‘셈프로니우스 도로법’이 제정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법안은 그라쿠스 형제 중 동생인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입안했다. 이 법에 따라 모든 로마가도에는 1로마마일마다 돌기둥이 세워져 표지판의 역할을 했다. 1로마마일은 로마시대에 1,000걸음에 해당하는 거리로 약 1.5킬로미터다. 1로마마일 이정표에는 가도의 출발점에서 몇 번째 표지인지 표시해놓아 수도 로마와의 거리를 알 수 있도록 했다. 예를 들면 스무 번째 이정표에 이른 사람은 로마에서 30킬로미터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가까운 도시와의 거리도 표시되어 있어 다양한 정보를 알리는 게시판 역할도 했다. 

 

로마가도의 신속성은 어느 정도일까? 인류가 로마가도의 이동 속도를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철도가 발달하기 시작한 19세기 중엽이었다고 하니, 로마가도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다.

 

로마가도는 수도 로마를 떠날 때는 12개에서 시작했지만 로마제국 전역으로 뻗어나간 돌로 포장된 간선도로는 375개이고, 그 전체 길이는 8만 킬로미터다. 자갈로 포장된 지선을 합치면 15만 킬로미터나 된다. 로마가도는 로마제국 전체를 그물망처럼 관통하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가도의 1차적인 목적이 신속한 군사 이동이었던 만큼, 역으로 로마가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때는 그만큼 불리한 환경이 되고 만다. 한니발도 로마가도를 이용하여 이탈리아반도를 유린하고 다녔다. 로마제국의 말기에 야만족이 로마를 침입할 때도 로마가도를 활용했다. 

 

로마가도는 중국의 만리장성과 비교된다. 만리장성은 기원전 215년 진시황이 북방 오랑캐의 침입을 막기 위해 건설하기 시작했다. 기원전 221년 통일된 진나라를 건국한 진시황은 기원전 3세기 혹은 그 이전 시대에 구축된 몇몇 성벽을 연결시켜 만리장성을 재건했다. 만리장성의 목적은 성벽을 쌓아 야만족의 침입을 막고 정보를 차단하는 것이다. 또한 문화적으로는 유목문화와 농경문화, 중원과 변방을 가르는 경계선의 역할도 했다. 진시황 때부터 쌓아올린 성벽은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건설하여 명나라 때까지 이어졌다. 만리장성은 연장 길이 2,700킬로미터이며, 중간에 갈라져 나온 지선까지 합치면 총 길이가 6,350킬로미터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성벽이다. 

 

그러나 만리장성의 기본 목적은 사람과 정보의 차단이다. 방어를 위해 소통을 막고 차단하는 폐쇄성이 기본이었다. 불로장생을 원했던 진시황은 기원전 210년에 사망했고, 그의 사후 농민반란 등 사회혼란이 일어나 기원전 206년에 진나라가 멸망했다. 성벽으로 차단의 벽을 높이 치고도 통일국가를 이룩한 후 15년 만에 역사에서 사라졌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로마는 아피아 가도에서 서로마가 망할 때까지 800년 동안이나 유지되었다. 나아가 로마는 망했어도 로마가 만든 가도는 오늘날까지 과거 로마제국의 전역에 남아 있으니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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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2-28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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