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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초 이등병 시절이다. 인사행정 장교가 육두문자를 써가며 본부중대 막사를 흔들어 놓았다. 거친 성격에다 교활함까지 갖춘 그는 부대병사들에게는 공포의 존재였다. 그 순간 갑자기 나타난 사병에게 너무나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건넨다. “김병장 언제 점심 함 하시게” 막 전입해 온 신참 이등병인 나는 순간적으로 영문을 몰랐다. 육군 소령이 일개 사병에게 저리도 순한 양이 되다니. 그러나 현실을 깨닫기에는 단 일분이면 충분했다. 고참이 설명했다. 문제의 병사는 기무부대(당시 보안부대) 소속이고 기무부대는 군에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라고. 내가 만난 최초의 기무부대의 위력은 이렇게 다가왔다. 

 

“ ‘강병장님, 뭘 그리 화내십니까?’ 기가 꺽인 목소리로 용서를 구하고 있는 것은 분명 기무부대 장병장이었다. 평소 사병은 물론 장교까지도 개똥같이 여기는 전방 기무부대의 표본같은 녀석이었다....녀석은 기무부대의 공공연한 관례대로 지금까지 병장계급을 사칭해 온 모양이었다.(중략).”

 

이문열의 소설 <새하곡>의 일부다. 전방 부대의 기무부대 일등병이 군장비를 빼내 팔려다 들켜 주인공인 강병장에게 혼나고 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소설처럼 사병이건 장교이건 기무사 사병에게 대든다는 것은 한국 군대에서는 불가능하다. 소설속의 주인공 강병장은 그나마 육사를 중퇴했고 자신의 사관학교 동기들이 장교로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작가인 이문열을 탄생시킨 197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이다. 소설에 나타나듯 나보다 한참 연장자인 이문열의 군대시절도 기무부대의 위력이 대단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기무부대의 가공할 힘은 군대를 다녀온 이 땅의 한국 남자는 다 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끗발은 돈도 빽도 없이 입대한 수많은 청년들에게는 상처와 상실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러기에 일개 육군소장이던 전두환 기무부대장(당시 보안사령관)이 3김을 비롯해 절정의 정치고수들이 즐비했던 1980년대 한국 정치판을 완전히 깔아뭉개고 스스로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군을 다녀온 보통의 한국남자들은 당시 그가 곧 권력을 움켜쥘 것임을 짐작했다. 기성세대에게 각인된 기무부대의 위력은 그랬다. 

 

나는 기무부대의 고유한 업무에 대해 왈가왈부할 생각은 전혀 없다. 그리고 그 필요성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기무부대가 군 장교들의 사적 공간을 염탐하거나 진급 여부를 좌지우지하는 이른바 페이퍼를 생산해내는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군의 근간인 계급을 깡그리 무시하며 부대를 휘젓고 다니는 황당한 풍경은 이제는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는 얼마전 기무사령관을 발표하면서 기무부대 혁신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는 정권의 이같은 발표는 믿지 않는다. 기무부대의 혁신은 정권이 바뀔 때 마다 녹음기를 틀어 놓듯 늘 그래 왔다.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도 그랬고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등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을 때도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기무부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각 정권마다 기무사령관을 임명하며 혁신을 주문했다는 것은 그 오랜 세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자임하는 꼴이 된다. 

 

나는 이런저런 인연으로 뜻하지 않게 군관련 자문을 자주 해 왔다. 군이 사회적 비판에 처할 때면 한결같이 군을 옹호하고 군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나 기무부대 국면에서는 달라진다. 전후방 육,해,공군 장교들을 접할 기회에 있을 때마다 슬쩍 물어 본다. “기무부대 등살에 힘들지 않느냐고”. 그들은 입을 맞춘 것처럼 대답한다. “옛날 말입니다.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사적인 저녁자리에서 만난 그들의 대답은 다르다. “그 버릇 어디 가겠느냐”고. 기무부대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짐작이 이제 제발 틀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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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2 17:4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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