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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론, 이 시대의 강력한 상식 

  좀 지루할 테지만, 다시 ‘마음’에 대한 논의로 되돌아간다. 수행자들은 마음에 관한 한 전문가들이다. 수행이란 늘 ‘마음’과 씨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수행자는 많지 않다. 위빠사나에서는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마음에 대한 불교의 이론, 즉 아비담마에 대한 기본적 지식을 갖추도록 권장한다.  

 

  하지만 많은 수행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보통 이 시대의 상식에서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몸이 죽으면 모든 것이 그만이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몸이란 어머니 뱃속에서 만들어져서 세상이 나와 존재하게 된 ‘우연’ 그 자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정자들 가운데 특정한 그 녀석이 가장 먼저 난자에 도달한 것도 우연이요, 잘 수정되고 자라서 세상 밖으로 나온 몸 역시 우연일 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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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면 ‘마음’이란 무엇인가? 마음이란, 몸이 있으니 당연히 있는 우연의 산물이다. 이런 입장이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답변 중 하나이다. 바로 유물론이다. 유물론은, 마음을 물질이거나 물질에 의존해서 존재하는 현상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이 시대의 상식이지만 붓다의 가르침과는 사뭇 어긋나는 견해이다. 유물론에 대한 논의를 좀 더 진행해보자.

 

  유물론의 역사는 퍽 오래되었다. 원자론의 원조 데모크리토스에서 원형을 볼 수 있다.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원자인데, ‘아톰’이라는 말은 쪼개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이것을 모든 존재의 근원이라고 보았다. 이런 생각은 현대 물리학의 생각과 상통한다. 현대물리학은 물질의 근원이 되는 6개의 쿼크를 찾아냈다. (이 분야 논의를 더 깊게 진행할 필요도 능력도 내겐 없다.) 

 

  마음은 정녕 물질인가? 물질 없는 마음은 존재할 수 없는가? 마음이 갖는 비물질적 성질은 물질에서 파생된 것일 뿐인가? 이런 복잡한 질문들이 과학과 철학의 콜라보 전선에서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유물론자들은 사람이 갖는 심적인 것, 즉 ‘의식’의 정체는 신경생리학이 지금보다 더 발전하면 완벽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믿는다. 많은 뇌과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이 이런 견해를 기본 입장으로 갖고 있다. 

  하지만 의식의 구조와 작용에 대한 이른바 ‘과학적 규명’은 이제 걸음마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의식과 몸(더 자세히는 뇌)의 상관관계가 밝혀진다고 하더라도 그 둘의 차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의식’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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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물론이 함축하는 생각들 

  “몸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몸의 죽음은 내 자아의 종말이다. 세계는 내가 죽어도 아마도 지속되겠지. 그것까지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내가 죽은 뒤의 세상이 무슨 소용인가? 나는 그저 하릴없이 세상에 왔다가 하릴없이 가는 그런 존재일 뿐, 내가 없으면 세상도 그저 그만이다.”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붓다가 물리치고자 했던 두 가지 극단적 견해 중 하나이다. 이른바 ‘단견’이다. 

 

  단견을 가진 이들은 보통 삶은 현세의 삶 한 번 뿐이라고 믿는다.  살아있는 동안 잘 살기 위해 모든 인간적 가치들이 존재한다. 도덕과 예술이 인간의 차원에서 마음의 소산인 것은 맞다. 그것들은 사람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이런 상식의 힘은 너무도 강력하다. 변증법적 유물론이 세상의 반쪽을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반쪽은 도덕과 예술을 그 바탕 위에서 이해하는 정연한 이론체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에 대한 초월을 바탕으로 하는 종교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갖고 있었다. ‘종교는 아편’이었다.

  유물론을 수용하는 입장에서 종교적 가치를 인정할 수는 없었다. 종교란 삶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할 수는 있다. 종교가 가르치는 교리는 그 고통을 더 잘 다루게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이런 입장은 ‘마음이 무엇이냐’에 대한 유물론적 논의의 파생물이기도 했다.

 

  금세기의 시작을 알렸던 소련과 동유럽의 해체, 이 역사적 사건으로 이런 입장이 세력을 잃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현대과학과 컴퓨터 기술의 성과가 물질과 정신의 연관성을 증명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이 명제에 대한 부인할 수 없는 정합성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라는 물건이 사람의 두뇌를 흉내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능은 컴퓨터가 사람의 정신보다 훨씬 더 잘 수행한다. 사람의 정신은 컴퓨터가 대체할 수 있는 기능일 뿐이고, 컴퓨터는 알다시피 물질의 덩어리일 뿐이다. 인간이 컴퓨터가 다른 점은 인위가 아니라 자연적 과정을 거쳐 생성됐다는 점이다. 인간은 자연이 만든 기계이다. 당신의 생각은 어떠가? 이 생각의 옹호자인가, 아니면 비판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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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유물론의 두 강자

  유물론은 그 긴 역사만큼이나 여러 가지 버전을 갖고 있다. 전통적인 유물론은 그 단어 그대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물질 뿐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입장은 갖가지 강력한 비판에 부딪쳐 왔다. 과학의 화력지원을 받기 전의 사변으로서의 유물론은 이론을 뒷받침하는 논거가 그다지 풍성하지 못했다. 특히 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에는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화형장으로 직행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고풍스러운 교회들이 지키는 사람도 없이 빈 건물로 남아있는 것을 보고 놀란다. 유럽인들 가운데 내세를 믿는 사람들은 이제 그다지 많지 않은가 보다. 그만큼 어떤 형태로든 유물론을 상식으로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상식의 저변에는 여러 철학적 이론들의 각축장이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여러 버전의 유물론이 철학적 이론의 각축장에서 논리싸움을 벌인다. 현대의 유물론은 전통적 유물론과는 달리 유물론의 냄새를 피우지 않는다. 이론의 논변들은 ‘심적인 것’, ‘심리적인 것’, ‘마음’, ‘의식’ 등이 무엇인가를 해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의식’을 대표적 표현으로 선정해 논의를 진행한다.)

 

  언어를 도구로 갖고 분석하기도 하고, 심리학이나 신경생리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과학과 제휴해 공동 작업을 벌이기도 한다. ‘의식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현대적 이론 가운데는 대략 두 가지 입장이 강력하다. 첫 번째는 ‘의식이란 몸의 일부분인 뇌의 신경생리학적 프로세스’라는 입장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은 곧 몸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사건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런 이론을 ‘심신동일론’이라고 한다.

  두 번째는 ‘의식은 물리적인 과정과는 분명히 다른 고유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심신동일론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 입장은 ‘의식은 물질의 과정에서 비롯된 부대현상’이기 때문에 물질 없는 의식이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입장을 의식(또는 마음에 대한) 부현상론(Epi-Phenomenalism)이라고 부른다.

 

  부현상론(Epi-Phenomenalism)

  1831년 12월, 캠브리지 대학 출신의 젊은 학자 한 사람이 ‘비글’이라는 배에 올랐다. 그리고 이 사건은 향후 가히 세계사적 사건이 되었다. 5년의 항해 동안 상습적인 뱃멀미에 시달렸지만 그는 딱정벌레부터 거대한 포유류의 화석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자료를 채집했다. 지리적으로 고립된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광범위한 종의 관찰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새롭고도 독창적인 통찰을 갖게 되었다.

 

  그는 찰스 다윈이었고, 진화론은 바로 그런 그의 이런 통찰에서 시작되었다. 진화론은 이제 우리 시대의 상식으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철학적 이론들은 이제 진화론적 상식과 정합성을 갖지 않으면 설득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진화론적 상식에 가장 부합하는 의식에 대한 유물론적 이론이 바로 부현상론이다. 부현상론은 진화론이라는 막강한 우군을 얻어 심신이론의 강자로 군림한다. 부현상론은 의식의 고유성과 존재론적 지위를 인정한다.

 

  하지만 물질 없는 의식을 인정하지 않는 점에서 부현상론은 심신이원론과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의식 현상은 물리 현상의 작용과정에서 나타나는 부대현상이다. 그러하니 마음이란 결국 물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 유물론의 냄새를 피우지 않는 유물론의 한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부현상론의 또 다른 강점이 있다. 몸 또는 뇌의 어떤 신경생리학적 과정이 의식을 산출하는지를 밝혀야 하는 부담을 질 필요가 없는 철학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 과제를 과학의 분야에 느긋하게 맡겨둘 수 있다. 왜냐하면 부현상론은 동일론과 달리 ‘의식은 뇌의 신경생리학적 과정이다’라는 따위의 주장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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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과학과 철학의 분야에서 더 활발한 논의가 진행될 것이다. 마음에 대한 불교의 견해와 접점이 모색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불교의 아비담마는 형이상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비담마는 심리적 현상에 대한 기술의 차원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에 그런 모색은 충분히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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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1 17: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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