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는 지금 <상> 둔황 가는 길 >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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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의 힘, 

산맥 뚫고 도로·철도·통신망 뻗어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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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우니로 불리는 차카옌호. 절대 오지에 위치한 탓에 서양 관광객들은 눈 씻고 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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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군대 시절이었다. “이등병에게 쉬는 시간 주면 사고 친다”는 괴이한 논리를 들이대며 고참들이 쉴 새 없이 뺑뺑이를 돌려 모두들 기진맥진해 있었다. 험악한 시절 지칠 대로 지친 나는 문득 중대 진중문고로 눈길을 돌렸다. 반공도서류가 가득한 진중문고는 단 한 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허접한 공간. 그러나 그날 눈에 띈 것은 이상한 제목의 책이었다. 『돈황의 사랑』, 시인 윤후명이 펴낸 소설이었다. 지긋지긋한 군 생활을 잊으려고 부둥켜 쥐고 읽었다. 의미도 모른 채 읽었다. 소설 속 주인공이 친구가 던진 한마디에 필이 꽂혀 ‘돈황(敦煌·중국명 둔황)의 세계’로 상상여행을 한다는 내용이다. 평론가들은 시적 분위기, 아름다운 서정적 묘사를 통해 동시대 사람들의 우수와 절망을 형상화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읽는 내내 작가가 둔황을 몹시도 좋아했다는 것만 짐작할 뿐 무슨 말인지 몰라 애먹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언젠가 둔황에 가야겠다는 막연한 목표가 정해졌다. 잊힐 만하면 그 시절 읽은 둔황이 홀연히 나타나 재촉했다. “어서 떠나라, 어서 떠나라”고. 

 

고속도로변은 산림 녹화 한창

칭하이호 유채,만년설과 대비

풍력·태양광발전소 규모 상상 이상

 

간이식당에서도 와이파이 터져

버스 기사 운행 체크 후 강제 휴식

CNN도 한류 드라마도 볼 수 없어

 

“달밤이다. 먼 달빛의 사막으로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이를 이끌고 사구(沙丘)를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매우 느린 걸음이다. 쉬르르 쉬르르 명사산의 모래가 미끄러지는 소리인가. 사자는 아랑곳없이 네 발만 차례차례 떼어 놓는다….” 답사를 앞두고 찾아본 『돈황의 사랑』 한 구절이 여전히 흥분케 한다. 아, 그리고 또 있다. 10대 때 읽은 무협지다. 무협지의 주인공들도 둔황으로 이끌었다. 무협지를 읽은 사람은 서역 기인에 대해 판타지를 가지고 있다. 만년설산 톈산산맥을 넘어온 절대신공의 등장은 종종 그 시절 10대들의 밤잠을 설치게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와룡생, 진청운의 무협지를 읽으면서 주화입마, 점소이(주루에서 심부름하는 사동) 등의 전문용어를 알았다. 지금의 ‘아재’들은 대부분 10대 때 무협지를 읽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강호에 고수가 많다, 내공이 깊다” 등의 표현도 따지면 그 시절 무협지에서 유래했다고 봐야 한다. ‘용문객잔’ ‘와호장룡’ 같은 영화의 뿌리도 실상은 무협지에 있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기성세대에게는 무협지로 다가온다. 정파무림을 일컫는 구파일방(九派一幇)은 지금 들어도 흥분된다. 그리고 가끔씩 등장하는 역외 고수들, 그들은 “짠” 하고 둔황을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둔황, 실크로드는 기성세대에게 추억의 기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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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둔황으로 가는길, 고속도로에 쌓인 모래다. 걸핏하면 차량이 통제되고 또 다른 바람이 불어 모래를 쓸어 가기를 하염없이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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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로변의 화장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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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속도로 휴게실의 자동차 정비소. 워낙 낡은 차들이 많아 바쁘다고 한다. 

 

 

둔황을 다녀왔다. 역사에 내공이 상당한 사람들이 가는 전문가 답사에 한 자락 걸친 것이다. 이글거리는 태양, 뜨겁고 건조한 모래바람 등 소설 속 풍경이 현실로 다가왔다. “돌아오지 못한다”는 의미의 타클라마칸 사막의 열기가 밀려온다. 20대 청년이 갈망했던 꿈을 중년이 되어 이룬 셈이다. 둔황길은 멀다. 시닝(西寧)을 시작으로 양관, 위먼관, 둔황, 주취안, 우웨이, 란저우를 거쳐 시안까지 V자를 옆으로 눕힌 열흘간의 여정이다. 옆으로 눕힌 V자의 뾰족한 각에 둔황이 있다. 상하이 푸둥공항에서의 환승은 중국을 실감케 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네 시간 늦게 출발한 연결항공은 밤 2시에야 시닝에 도착했다. 이튿날 새벽 대절버스에 몸을 실었다. 고속도로변은 산림녹화가 한창이다. 중국 최고 오지라는 책자의 설명과는 거리가 멀다. 해발 3300m에 위치한 거대 호수 칭하이호 주변은 유채꽃 바다다. 샛노란 유채 들판과 치롄(祁連)산맥의 만년설은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었고 무선통신망은 이 경이로운 풍광을 서울로 보내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다. 거대한 칭하이 호수를 지나 해발 4000m에 가까운 차카(茶卡)고개를 넘어설 때쯤 코피를 쏟거나 두통을 호소하는 일행이 나타났다. 고산병이다. 잠시 휴식을 취한 버스는 차카옌호에 도착했다. 거대한 소금호수, 중국의 유우니라는 별명이 어울린다. 사방 짠 냄새, 소금의 지평선이다. 버스는 다시 300여㎞를 이동한 끝에 우란(烏蘭) 현도(縣都)에 도착했다. 맙소사, 낡은 소형 버스로 하루 달린 거리가 800㎞에 육박했다. 서울~부산을 당일 왕복한 셈이 된다. 답사여행은 완전히 맨땅에 헤딩하기, 열흘간 4000㎞를 달린 고생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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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두 배 크기의 칭하이호 주변. 샛노란 유채꽃이 뒤편 수평선과 대조를 보이고 있고 늙은 소가 관광객을 기다리며 졸고 있다. [사진 김동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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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하이호 주변 간이식당 뜰에 타르초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불경이 적힌 천으로 내세와 안녕을 기원하는 티베트인(짱족)들의 풍습이다.  

 

중국은 급변하고 있었다. 서역의 관문인 간쑤(甘肅)성 양관(陽館)에서 다차이단(大柴旦)으로 가는 경로는 이른바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실감케 했다. 도로·철도·통신망 등은 치롄산맥과 바옌카라(巴顔喀拉)산맥의 협곡 사이에 끊임없이 이어져 있었다. 만년설산의 빙하수를 이용한 구기자 재배도 눈에 띈다. 화력발전소, 풍력·태양광발전소 단지의 규모는 상상 그 이상이다. 최고 오지라는 칭하이성의 간이식당에서조차 와이파이는 원활했다. 

 

단정한 복장의 기사는 규정속도를 지키고 있었다. 윗옷을 벗어젖히면 용 문신이 꿈틀거리는 풍경은 더 이상 눈에 띄지 않았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운전하는 기사는 적어도 외국인 대절 버스에서는 보기 어려웠다. 실제로 칭하이성과 간쑤성 경계에 들어서니 공안이 차를 세운다. 휴식시간을 체크해 보더니 기사에게 30분 강제휴식을 명령했다. 우리가 어렵게 추진 중인 운전기사 강제휴식제가 이미 실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도 중국은 중국이다. 사방에서 들리는 클랙슨 소리는 심벌즈처럼 쾅쾅 놀라게 한다. 귀를 막아야 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중간중간 들리는 도로변 화장실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는 문짝 없이 완전히 노출된 화장실을 이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차창 밖 멋진 인프라와는 대조적으로 인민들의 실생활은 여전히 고단해 보인다. 

 

둔황으로 가는 길, 뉴스가 아쉬웠다. 객실에는 중국 매체만 나온다. CNN도, BBC도 없다. 그 많던 한류 드라마도 없다. 유심히 지켜본 중국 TV의 주제는 딱 세 가지 정도였다. 공산당 혁명 찬양 아니면 공안이 나쁜 놈들을 무자비하게 패기 또는 무협지가 전부다. 이 같은 분위기는 현재 중국에서 박스오피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영화 ‘전랑(戰狼)2’로 설명된다. 중국 특수부대 요원 전랑이 아프리카 국가를 무대로 영웅이 된다는 뻔한 줄거리다. 서방세계에 대한 열등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콤플렉스 덩어리인 힘센 이웃과 사사건건 부닥쳐야 하는 우리 현실이 우울하다. 미래학자들은 세계의 헤게모니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하지만 중국에 살아 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한다. 강대국임은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존경받는 국가로 거듭나기는 영원히 힘들 것이라고. 그러나 체제와 달리 이름 모를 들꽃들이 나부끼는 대륙의 늦여름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제 나락은 금빛으로 물들고 들녘의 콩들은 뙤약볕에 스스로 여물어 갈 것이다. 차창 밖 여름이 저 혼자 푸른빛을 시름시름 잃어 가고 있다. 내일이면 둔황이다. <계속> 

 

김동률 교수는?

서강대 MOT 대학원에서 기업홍보(언론학)를 강의한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대 박사. KDI 연구위원 등을 지냈고 현재 EBS 이사다.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칼럼을 써왔으며 그의 에세이는 고교 교과서에 실렸다. 저서로 『신문경영론: MBA 저널리즘』 『철학자들의 언론 강의』(역서) 등이 있다. 

<위 글은 중앙선데이 제544호(2017.8.13.)에 게재된 글을 옮긴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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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8-25 17:29:37 최종수정 2017-08-25 17:4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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