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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나 정치, 공동체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로망’이 하나 있다. ‘로마’다. 정확히는 ‘고대 로마 공화정’이다. 지난 주말, 대선 후보들의 TV토론을 보다 문득 그 로마가 떠올랐다. 답답했었던 모양이다. 마음 속 로망이 보고 싶어 책장에서 책 두 권을 찾아 꺼냈다. 마키아벨리의 『로마사 논고』와 플루타르코스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책 속 2천여 년 전 로마에는 내우외환 대한민국이 지금 필요로 하고 있는 리더의 모습이 있었다. 우리가 추구해야할 공동체의 모습이 있었다.

 

로마 공화정의 전성기는 호르텐시우스법 제정으로 신분투쟁이 끝난 기원전 287년부터 기원전 133년까지로 볼 수 있다. 그 시기 로마는 공동체 내부적으로 안정을 유지하면서 포에니 전쟁을 통해 지중해 세계로 진출했다. 비록 그리 길지는 않은 기간이었지만, 공동체가 내부적으로 건강했고 평민과 귀족은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공존했다. ‘건강한 리더, 건강한 개인, 건강한 공동체’의 모습이었다. 그런 내부의 힘을 바탕으로 로마는 번영을 만들어냈다.

 

황금기 고대 로마 공화정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청빈함이 두드러졌다. 무엇보다 리더가 그랬다. 

『로마사 논고』(강정인 안선재 역,한길사)에서 마키아벨리는 루키우스 퀸티우스 킨키나투스에 대한 일화를 소개한다. 아이퀴인들에게 포위공격을 당한 로마는 패배의 두려움에 휩싸여 최후의 수단인 임시 독재집정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 로마는 킨키나투스를 독재집정관으로 선출했다. 원로원의 사절이 선출 사실을 알리고 로마 공화국이 처한 위험을 설명하기 위해 킨키나투스를 찾아갔다. 그때 그는 자신의 작은 농장에서 손수 노동을 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로마에서 가난이 명예롭게 여겨지고, 킨키나투스와 같은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이 생계를 유지하는 데 4유게라의 땅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로마사 논고』의 마르쿠스 레굴루스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그가 군대를 이끌고 아프리카에 있을 때, 자신의 소작인들이 소홀히 관리하고 있는 농장을 돌보러 돌아가기 위해 원로원에 휴가를 신청했다.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말했다.

“로마 시민들은 가난에 만족했고, 전쟁으로부터 얻는 명예로 충분했으며, 모든 획득물을 공공의 처분에 맡겼다. 만약 레굴루스가 전쟁으로 부유해질 것을 기대했더라면, 그의 토지에 대한 어떠한 피해도 그에게 별다른 걱정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사적인 지위로 돌아왔을 때, 그들은 검소하고 겸손했으며, 자신들의 작은 재산을 소중히 돌보았고, 행정관들에게 복종했으며, 연장자에게 경의를 표했다.”

 

파울루스 장군은 마케도니아 정복으로 막대한 재산을 확보했지만 기꺼이 그 돈을 모두 국고에 집어넣었다. 자신의 집으로는 ‘불멸의 명성’ 이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평을 얻었다. 가장 부유한 도시인 코린트를 정복했던 뭄미우스 장군도 자신의 개인 재산을 전혀 늘리지 않았다. 로마를 번영으로 이끈 힘은 지도층이, 그리고 시민이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며 다른 구성원들과 공존하려 했던 건강한 공화주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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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천병희 역,숲)을 펼쳤다.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 문인이었던 카토에 대한 부분을 찾았다. 그는 '사치에 물들기 전 로마의 도덕심을 대표하는 인물'(천병희)이었다. 검소한 생활, 꾸준한 체력 단련, 불굴의 정신력, 적극적인 정치활동에 힘입어 한미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재정관, 집정관을 거쳐 기원전 184년에는 감찰관으로 선출되었다. 최초의 라틴어 산문 작가로서 라틴 문학에도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건강한 로마'를 역설했던 그는 그에 걸 맞는 삶을 살았다.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말했다.

 

"카토의 자제력은 크게 칭찬받을 만했다. 예컨대 그는 군대를 지휘할 때 자신과 자신의 참모들을 위해 한 달에 3앗티케 메딤노스 이상의 밀을 타가지 않았고, 자신의 짐 싣는 짐승을 위해 하루에 1과 2분의 1 메딤노스 이하의 보리를 타갔다. 그가 사르디니아의 재정관이 되었을 때, 전임자들은 천막과 침대와 의복비를 공금으로 충당하며 수많은 수행원과 측근들한테 드는 비용과 호화로운 연회 준비에 드는 비용을 그곳 주민들에게 지운 데 반해, 그의 검소한 지출은 믿기지 않을 만큼 대조적이었다.

카토는 공금에는 일절 부담을 지우지 않았고, 걸어서 그곳 여러 도시를 순회하되 의복과 제물 바칠 때 쓰는 술잔을 들고 다니는 관노 한 명만 데리고 다녔다. 이런 점에서 자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검소했으나, 다른 점에서는 매우 위엄 있고 엄격하게 다스렸다. 그는 정의의 수행에는 가차 없고 정부를 위한 법령 시행에는 곧고 단호하여, 그곳 주민들이 로마의 통치를 더 무서워하고 더 좋아한 적이 일찍이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그는 100드라크메 이상의 값비싼 옷을 입어본 적이 없으며, 재정관이나 집정관의 임기 중에도 자신의 노예들과 똑같은 포도주를 마셨으며, 저녁 식사에 곁들일 반찬은 장터에서 구하되 30아스 이상은 초과하지 않았으며, 그것도 군무에 이바지할 체력을 강화하고자 국가를 위해 그랬다고 했다... 그의 오두막 중 벽에 회반죽을 칠한 것은 한 채도 없었으며...

대체로 그는 남아도는 것은 어떤 것도 싸지 않으며, 불필요한 것은 설사 그 비용이 1아스밖에 들지 않는다 해도 비싸다고 여겼으며, 땅을 사되 씨를 뿌리고 가축 떼를 먹이기 위해서이지 물을 뿌리거나 비로 쓸기 위해서는 아니라고 했다.“

 

카토는 검소하고 질박하게 지냈다. 그런 모습에서 리더에 대한 국민의 믿음이 생겼고, 그것이 로마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들고 번영으로 이끌었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을 건강하고 번영하는 공동체로 만들어갈 수 있는 대통령을 선출해야 한다. 기준은 두 가지다. 사익이 아닌 ‘공익’을 추구하는 후보, 그리고 권력 독점과 일방적 지배가 아닌 ‘공존’을 지향하는 후보. 

플루타르코스와 마키아벨리는, 우리의 로망인 2천 여 년 전 전성기 고대 로마 공화정은, 2017년의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에게 그렇게 조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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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30 17:56:50 최종수정 2017-04-30 18: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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