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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예매하고 시간이 남았다. 간만에 충무로 뒷골목을 돌아본다. 대한극장 건너편 대림장은 오발탄으로 바뀌었고 부산복집, 순댓국집 등은 없어지고 새 가게들이 들어섰다. 불고기로 유명한 진고개 식당은 건재했다. 그러나 메뉴판엔 게장이 추가되어 있었다. 건물 바깥은 한국어와 일본어 표기로 대표 메뉴를 크게 적어놓았다. 길을 꺾어 명보극장 쪽으로 가니 극장 역시 없어졌다. 서쪽 백병원 방향으로 가면 평래옥이 있다. 냉면도 냉면이지만 여름에 초개탕이 일품이다. 우측 을지로로 접어들면 영동골뱅이집이다. 거긴 아직도 골뱅이 타운이 건재했다. 시원한 생맥주에 골뱅이 파 무침을 먹던 추억이 새롭다. 을지로 3가엔 짜장면이 유명한 안동장이 나온다. 60년 된 이 중식당도 돈을 벌었는지 건물 외관을 대리석으로 교체해 리모델링해 있었다. 시간이 흐르니 세상 풍경이 바뀌었다. 바뀐 것은 풍경만이 아니다. 손님과 주인도 바뀌었다. 인생도 역사도 그렇게 변하고 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

 

다니엘 블레이크. 2016년 칸 영화제 대상 수상작 제목이자 주인공인 그는 40년 경력의 목수다. 영화에서 댄인 그는 심장병으로 일을 할 수 없는 처지다. 혼자 사는 홀아비 실업자 신세다. 당국에 질병보조금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는 컴퓨터를 할 줄 몰라 지원금 신청에도 애를 먹는다. 지원금 신청센터에서 댄은 아이 둘을 데리고 생계보조금 신청을 하는 젊은 엄마 엔을 만난다. 센터 직원들은 그녀에게 약속 시간에 5분(?) 늦었다고 신청을 받아주지 않는다. 다시 오란다. 런던에서 뉴캐슬로 방금 와서 길을 잘 몰라 늦었다고 호소하지만 소용이 없다. 얼마 전 영국의 어떤 병원에서 약속 시간에 10분(?) 늦었다며 진료를 거부해 환자가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약속이 철저한 나라다. 이정도면 피도 눈물도 없는 약속이니 약속이 과연 사람 생명보다 소중한 것인가를 되묻게 된다. 

 

댄은 소리친다. 누구 이 여자 대신 양보할 사람 없소? 바로 약속 시간 때문이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내가 양보하면 그 여자는 살지만 자신은 죽는 세상. 그러니 누가 양보하려고 할 것인가? 이런 약속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 이때부터 늙은 댄은 젊은 미혼모 엔의 식구들을 돌본다. 여자 아이 하나. 남자 애 하나. 남자 아이의 성격이 비뚤어져있다. 반항심에 가득차 있다. 여자아이는 학교에서 놀림을 당한다.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무료급식소에서 음식을 타먹는 것이 같은 반 아이들에게 들켜 놀림을 당한다. 이것이 왜 놀림감이 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도 영국은 경제적으로 계급이 다르면 서로 친구가 될 수 없는 모양이다. 이 같은 현실은 한국 사회도 비슷하지 않나? 재개발 아파트 옆에 함께 지어진 임대아파트 아이들을 큰 평수의 민간아파트 입주민 자녀들이 놀리고 조롱하듯이. 

 

 

엔은 어는 날 슈퍼마켓에 갔다 물건을 훔친다. 그것도 고작 생리대 하나와 면도기 등 세 점이다. 엔은 보안요원에게 들키지만 마트 지배인을 그냥 덮어준다. 보안요원은 그날 저녁 그녀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매춘. 낡아 구멍이 숭숭 난 헤진 신발을 신고 다니는 딸아이. 그것 때문에 놀림당하는 아이를 보는 엔. 사흘을 굶어 너무 배가 고파 무료 식량배급소에서 구매하기도 전에 콩이 든 통조림을 뜯어 허겁지겁 손으로 집어먹는 엔. 이 광경이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헉헉거리며 정신없이 스프를 입 속으로 구겨 넣는 그녀를 급식소 여직원과 댄이 가련하게 쳐다본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인간은 자존심이 있다. 이들과 눈이 마주치자 엔은 화들짝 놀라 너무 창피한 나머지 눈물을 줄줄 흘린다. 가난이 그녀를 도둑으로 만들었고 그녀를 몸 팔게 만들었다. 이 현실이 지금의 영국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을까? 

 

댄은 정부가 요구하는 취업 프로그램에 등록도 하지만 끝내 구직을 포기하고 복지센터에 질병보조금을 받는 순서를 기다린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응답이 없자 그는 혼자만의 투쟁을 시작한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야” 라고 소리 외치는 덴. 건물 벽에 그의 이름을 그라피티 낙서처럼 휘갈겨 쓰며, “내가 인간이다” 라고 외쳐대고 사회의 이목을 집중되자 겨우 그에게 질병보조금을 주겠다는 연락이 오는 나라. 죽겠다고 소리치고 투쟁해야 알량한 돈 몇 푼 쥐어주는 현실. 우리보다 훨씬 민주국가요 복지가 앞섰다는 영국에서 벌어지는 현실이다. 투쟁 끝에 마침내 보조금 심사 차례를 기다리다 화장실서 심장마비로 쓰러지고 만다. 정부가 조금만 더 일찍 그에게 질병보조금을 주었더라면 그는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공무원들의 한심한 자기편의적 원칙주의와 인간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행정 위주의 현실을 영화는 꼬집는다.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면 인간의 자존심도 여지없이 무너져버린다. 그래서 돈이 중요하고 일자리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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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과 장미>

 

빵은 식량이고 장미는 인간 존엄성의 상징어이다. 켄 로치 감독의 2000년 작품이다. 빵을 찾기 위해 로사의 가족은 멕시코에서 국경을 너머 온 불법이민자들이다. 가족들 대부분이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로스앤젤레스에 모여 사는데 식구 중 마지막 남은 마야는 언니 로사의 도움으로 겨우 미국에 도착한다. 그러나 불법 밀입국을 주선하는 업자들에게 약속한 돈을 다 건네지 못해 마야는 그들에게 납치를 당한다.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기 직전 풀려난 마야. 그녀는 로사의 도움으로 대형 빌딩 청소원으로 취업한다. 

 

그러나 취업의 대가는 그들을 관리하는 같은 처지의 이민자 관리 감독관에게 한 달 치 월급을 떼 주는 것이요, 취업 조건은 부탁한 언니 마야의 성을 상납 받는 것이었다. 나중에 마야가 알게 되었지만. 이것이 비단 미국에서만 있는 일일까? 우리 한국사회에도 여전히 독버섯처럼 존재하는 현실이다. 신문 지상에서 흔히 접하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불법이민자들이기에 그들은 차별대우를 받는다. 대표적인 것이 임금착취요 불시에 당하는 부당해고다. 이들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 앞에 나타난 백인 노동운동가 샘을 통해 그들은 그들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눈이 뜬다.

 

병든 남편을 위해 동료를 배신하고 노조결성의 주동자를 관리감독관에게 밀고하는 언니 로사. 이 사실을 안 마야는 언니에게 죽자 살자 대든다. 사실을 고백하는 로사. 사연이 기가 막히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불법으로 밀입국해서 오랫동안 창녀 생활을 했고 그 돈으로 멕시코의 가족들을 먹여 살였노라고. 너를 위해 밀입국할 돈도 마련했노라고, 너의 취직을 위해 감독관에게 섹스를 제공했노라고” 누구를 욕할 것인가. 길을 나선 마야는 신분 탈출과 성공하기 위해 대학 진학을 꿈꾸는 동료 청소원에게 주유소 강도질로 생긴 돈을 그에게 준다. 그러나 노조파업 시위 중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그 탈취 사건의 범인으로 밝혀져 다시 멕시코로 추방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마야는 빵을 위해 몸을 팔았다. 그것이 개인으로서는 부도덕한 행위인줄은 알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사회적으로는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된다. 그러면 사회는 마야에게 비난과 멸시 이전에 빵을 제공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사라는 돈을 위해 강도질을 했다. 그 강도질로 부당하게 취득한 돈으로 선의를 베푼다. 아마 혜택을 입은 같은 이민 노동자출신의 청년은 법과대학에 진학에서 훌륭한 변호사가 되어 성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돈이 없었으면 그는 대학에 가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에 돈이 그 또는 그녀를 범죄자로 만들었다면 사회는 돈 을 제공해야 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는 수재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경쟁할 기회를 주어야하지 않을까?

 

시대의 변혁기에 서있다.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은 탄핵당하고 범죄의 사실 규명만이 남았다. 새로운 시대 격변의 전환기에 어떤 대통령이 필요한가? 그가 가진 철학이 무엇인가를 알아야한다. 빵과 장미를 제공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먹고 살기에 고단함이 없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사회를 만들 의지가 확고한 대통령을 원한다. 빵은 경제요 장미는 문화다. 빵이 현실이라면 장미는 미래다. 인간의 기본권과 존엄성이 보장되는 사회를 켄 로치 감독의  두 영화가 주창하고 있다. 영화가 그리는 그런 사회를 원한다. 그 사회를 실현시킬 가치관의 주인공이 차기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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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3-25 17:40:56 최종수정 2017-03-25 22: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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