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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주주권 행사보다 중립투표가 바람직하다 본문듣기

작성시간

  • 기사입력 2019년02월11일 17시00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11일 16시58분

작성자

  • 이상빈
  •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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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스튜어드십(stewardship)은 영국에서 유래했는데 가사 관리인(steward)의 주인에 대한 봉사의무를 규정한 것이다. 2010년 영국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수탁자들의 장기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투자기업의 경영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의미로 처음 사용되었다. 이는 기관투자가들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채택하지 않는 경우 채택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선택사항이다. 

 

한국에서는 2014년 금융위원회가 도입을 시사했고, 2016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영국 등을 참조해 스튜어드십 코드 및 해설서를 발간했다. 2017년 당시 문재인 대선후보가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공약했다. 2018년 7월 30일 국민연금은 ‘국민연금 수탁자 책임 활동에 관한 지침’을’ 제정해 사기업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의 물꼬를 텄다. 이와 관련해 한진칼 및 남양유업에 대한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가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다. 

 

경제학은 뜨거운 가슴으로 문제점을 인식하고 냉철한 머리로 해결방안을 제시하는 학문이다. 뜨거운 가슴만 가지고 있으면 선의로 포장된 길이 지옥으로 인도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이 ‘저녁이 있는 삶’ 대신 ‘배고픈 저녁’을 가져 왔다는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 준다. 또 임대료 상한규제가 비행기 폭격과 더불어 도시를 파괴하는 또 다른 방법이라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통해 투자주식의 장기가치를 극대화해 연금가입자인 국민의 재산을 증식시켜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쌍수를 들어 이를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이의 효과는 정반대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지난해 국민연금은 1%대 손실, 즉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손실액은 10조원에 이른다. 2017년의 연간 수익률이 7.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진한 성적표다. 그렇지 않아도 38년 뒤인 2057년에는 적립기금이 완전 소진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이 기금 고갈 등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과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주주권 행사보다 자체 수익률 제고에 더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어설픈 주주권 행사가 오히려 국민연금의 재산에 손해를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찬성하는 측은 이를 통해 기업의 가치를 제고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려면 이에 합당한 역량과 유인이 있어야 한다.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이를 판단할 고급인력을 유치하고 이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하여야 하나 공공성을 띤 국민연금의 성격상 이렇게 할 수는 없다.

 

설사 이렇게 된다 해도 국민연금은 이렇게 행사할 유인이 없다. 이들이 기업 가치를 제고하지 않은 방향으로 행사하면 가입자들이 국민연금을 탈퇴하여 다른 연금으로 이동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국민연금이 정신을 차리고 의결권을 올바로 행사하게 된다. 그러나 국민은 국민연금이 싫든 좋든 국민연금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는다. 견제 없는 권한 행사는 비효율만 초래한다. 

 

셋째, 국민연금의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의 최대 걸림돌 중 하나는 ‘10% 룰’ 이다. 자본시장법상 특정주주가 지분 10% 이상을 경영참여 목적으로 보유할 경우 지분 변동 내역을 5거래일 이내 신고해야 하고, 6개월 내 단기매매차익을 해당기업에 반환하여야 한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분 11.56%와 한진 칼 지분 7.34%를 보유하고 있어 주주권 참여 등으로 경영참여 목적을 신고하면 차액을 돌려주어야 한다. 수탁자 책임위원회에서 “주주권을 행사하면 국민노후자금이 될 수익금을 뱉어내야 하고 지분변동내역이 모두 공개돼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다”는 현실론이 지지를 받아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부정적이었다. 매일경제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대한항공에 경영참여를 할 경우 2106년 123억, 2017년 297억 원을 ‘10% 룰’에 의해 대한항공에 반환하여야 한다. 경영참여를 통해 대한항공을 견제하겠다는 본래목적보다 오히려 대한항공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 

 

넷째,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찬성표를 던졌다. 최순실게이트를 계기로 외압 의혹이 제기되었다. 국민의 재산인 국민연금이 재벌오너의 지배권 강화에 들러리를 섰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이와 같이 국민연금 기금규모가 커지면서 국민연금이 주요 대기업의 대주주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논란은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 더구나 외국펀드가 개입되어 있으면 국제적 분쟁소지가 될 수 있다. 

 

다섯째,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적극적 주주권이 필요하다고 한다. 국민연금이 사기업의 지배구조를 논하기 전에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현재 보건복지부 장관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고, 4개 부처 차관이 당연직 위원으로 되어 있다. 선거 캠프에 있던 전직 여당위원이 국민연금공단이사장이고 이사장이 기금운용본부장 추천권을 가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적립규모는 640조이고 23년 뒤인 2042년에는 1,700조로 최대를 기록한 후 2057년에는 완전 고갈이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은 거대규모의 펀드를 운용하기 위해서는 독립성, 전문성 및 책임성이 필수불가결하다.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니 독립성이 없고 독립성이 없으나 전문성이 따라 올 수 없다. 수익률이 부진해도 국민연금의 최고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해임되었다는 보도는 없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현 제도는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지만 현 정권은 일단 모면하고 보자는 심리이다. 굳이 역풍을 맞을 필요는 없다는 속셈이다. 이런 문제는 제쳐두고 대주주의 갑질만 부각시키는 것은 ‘무엇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꼴’이다. 

 

여섯째,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해 기업 가치를 제고한다는 이론은 실증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단적인 예가 2006년엔 한국형 행동주의 펀드의 효시인 '장하성펀드(라자드 한국기업지배구조펀드)'가 설립되었지만 장하성펀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한 채 2012년 청산됐다. 스튜어드십이 투자기업의 장기적 성장을 보장하기는 고사하고, 오히려 방해라는 비판론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경영성과를 제고하기 보다는 경영성과가 좋으면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정도이다. 

 

일곱 번째, 남양유업이 국민연금의 두 번째 대상이 된 이유는 저배당에 있다고 한다. 배당지급의 기본 원칙은 기업이 사업기회를 많이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기업이 확장일로에 있다면 배당대신 투자로 활용하는 것이 주주들에게 유리하고 기업의 사업기회가 없다면 주주들에게 배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배당결정은 기업고유의 권한으로 주총에서 결정할 사항이지 국민연금이 나서서 ‘배 놔라 감 놔라’할 사항이 아니다. 

배당이 적으면 회사 곳간만 늘린다고 호통치고, 또 배당을 늘리면 최대주주인 사주 일가 배만 불린다고 언론은 항상 지적해 왔다. 남양유업은 사주인 홍원식 회장과 그의 친족들이 보유한 지분이 전체의 53.85%에 달해 배당을 늘리면 사주 일가 배만 불린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국민연금이 배당확대를 주장하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남양유업은 난감해 진다. 사기업의 의사결정에 국민연금이 무리수를 두는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국민연금이 개입하면 우리나라의 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에 대한 결과는 국민이 부담해야 한다. 선무당 때문에 국민의 등만 터지고 있다. 

 

여덟 번째, 설사 앞에서 제기한 문제점이 해결된다 해도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스튜어드인 국민연금이 주인인 연금가입자의 뜻을 알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스튜어드가 주인의 뜻을 모른 채 자신의 뜻을 주인의 뜻이라고 주장할 수 없다. 더구나 투표자의 40% 정도 지지를 받아 탄생한 정부의 뜻이 연금가입자의 뜻이 될 수는 없다. 연금가입자의 뜻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이를 다수결로 결정할 수도 없다. 소수주주의 권익도 보호되어야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기업의 경영의사결정이 대중의 다수결로 정해질 만큼 간단하지도 않다. 설사 주인의 뜻을 알기 어렵다하여 주인의 뜻을 무시하기보다는 이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이 우선 강구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수탁자 활동지침 제7조는 의결권 행사기준으로 제1항은 주주가치의 감소를 초래하지 않고 기금의 이익에 반하지 않는 경우에는 찬성한다. 제2항은 주주가치의 감소를 초래하거나 기금의 이익에 반하는 안건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제3항은 위의 각호에 해당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중립[기금이 의결권을 행사할 주식수를 뺀 주식수의 의결내용에 영향을 미치지 아니하도록 찬성 및 반대(기권 및 무효표를 포함한다)의 비율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는 기권(출석한 주주의 의결권에 산입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의 의사표시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하는 최후의 보루라면 주주권의 적극적인 행사보다 제3항에서 규정한 중립투표(Shadow Voting)가 나아 갈 방향이다. 또 국민연금의 시급한 과제는 세대 간 갈등을 촉발시키지 않도록 기금의 고갈시기를 연장시키는 연금개혁이지 효과가 부정적인 주주경영권 행사가 될 수는 없다.<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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