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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넘어야 할 다섯 가지 산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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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2월03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2월04일 09시46분

작성자

  • 김형준
  • 배제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석좌교수(정치학),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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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촛불 혁명으로 탄생되었다는 자부심이 무척 강하다. 촛불 정신에 따라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적폐 청산을 국정 운영의 최고 핵심 과제로 삼았다. 이에 따라 국정 농단과 권력 남용, 부패 혐의로 두 전직 대통령이 구속됐다. 사법 농단과 재판 거래 의혹이 불거진 전직 대법원장도 수감됐다. 

 

그런데 최근 나라를 뒤흔들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 사이트 댓글을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인 김경수 경남 지사가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재판부는 "김 지사가 (댓글 조작을 통해) 2017년 대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여론을 주도하는 데 상당한 도움을 얻었다"고 판결했다. 김 지사가 사실상 대선 여론 조작의 주범 중 한 명이라고 직시한 것이다. 

드루킹 사건은 민간 차원에서 시도됐다는 점에서 국가정보원·경찰·기무사령부 등 국가기관이 동원된 이전 정부의 ‘댓글 조작 사건과는 궤를 달리한다. 하지만 여론을 조작해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한 행위는 분명 중대 범죄다. 

 

 그러나 1심 재판이 마무리됐다고 해서 사건이 끝난 것은 아니다. 차분하게 최종 결론을 지켜봐야 한다. 1심 판결은 설 이후에도 엄청난 정치적 파장을 몰고 올 것 같다. 무엇보다 대선 정당성에 대한 논란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과거 야당 대표시절 부터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으로 정권을 창출한 박근혜정부의 정통성을 줄곧 인정해오지 않았다. 그의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는 "저쪽에서는 국정원의 댓글조작이나 많은 국가기관의 개입이 있었다는 게 다 밝혀지지 않았는가"라면서 "공정한 경쟁이었다면 결코 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런데 1심 재판부는 “김 지사 등이 약 8만 건에 가까운 기사 댓글을 조작해 죄질이 무겁다”고 했다. 특검 수사로 밝혀진 드루킹 댓글 조작 규모는 무려 8,840만회로 과거 국정원 댓글 사건(41만회)의 수백 배 규모다. 

 

 여하튼 이번 1심 판결로 대선 정당성이 의심 받을 수밖에 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나라를 나라답게 만드는 대역사를 시작 하겠다”고 다짐했다.

 

 문 대통령이 이런 약속을 지키려면 반드시 다섯 가지의 산을 넘어야 한다.

 

 첫째, 성과의 산이다. 박근혜 정부는 집권 초기 ‘창조 경제’, 집권 2년차 ‘경제혁신 3개년 계획’, 집권 3년차엔 ‘경제 활성화’를 내세우면서 ‘경제 4대 개혁’(공공, 교육, 금융, 노동)을 추진했다. 그러나 국정 어젠다가 자주 바뀌면서 정책 집중도가 떨어지고 결국 모두 실패했다. 현 정부도 집권 초기에 제기한 소득주도성장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최근 ‘혁신적 포용국가’라는 새로운 어젠다를 제시했다. 문제는 ‘창조 경제’와 마찬가지로 ‘혁신적 포용국가’가 무엇을 의미하며 어떻게 그 성과를 측정할 수 있을지에 대한 언급이 없다. 

 따라서 실체 없는 정치적 수사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정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무너뜨리면서 국민의 불신을 촉발시킬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정책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해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2.7%였지만 민간소비 증가율이 2.8%로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면서 이것이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로 해석하고 있다. 심지어 ”경제 체질이 바뀌고 있다는 매우 중요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소득주도성장으로 생산·투자 부진, 자영업 몰락, 고용 참사, 소득 양극화 등의 부작용이 여러 지표로 이미 확인됐는데 어떻게 정책 기조를 안 바꾸고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인가?

 

 둘째, 청와대 중심 정치의 극복이다. 모든 대통령들은 선거에서 국무총리와 장관들의 자율적인 업무 추진과 책임과 성과를 약속한다. 하지만 막상 집권하면 청와대가 무소불위의 힘을 갖고 모든 것을 처리하는 만기친람(萬機親覽)에 빠진다. 문 대통령은 현 정부를 ‘민주당 정부’라고 했다. 하지만 청와대 중심의 국정 운영으로 정부와 집권당이 압도당하는 ‘청와대 정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권력이 청와대에 집중되면 그 반작용으로 도를 넘는 청와대 기강 해이가 발생하게 된다. 최근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 겸 신남방정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CEO(최고경영자) 초청 조찬간담회'에서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고 말하지 말고 아세안(ASEAN) 국가를 가보면 '해피 조선'을 느낄 것", "50대, 60대들도 할 일 없다고 산이나 가고 SNS에 험악한 댓글만 달지 말고 아세안으로 가야 한다"고 망언을 한 후 비난이 거세지자 사임했다. 말이 사임이지 경질된 것이다. 

 

 왜 청와대 기강해이가 반복되는 것일까? ‘모든 것이 청와대를 통하면 이뤄진다’는 이른바 ‘만사청통’(萬事靑通) 상황에서 청와대 근무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거나 이용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청와대가 이런 기강 해이 사태에 대해 아직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더구나, 청와대 민정 수석실에서 개인 일탈이 다반사로 일어나고, 이런 일탈이 장기간 지속적으로 발생했는데 조직 관리 부실에 책임을 져야 할 민정수석은 건재하다. 신상필벌(信賞必罰)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기강해이는 필연적이다. 

 

 셋째, 수직적 당청관계를 스스로 깨야 한다. 집권당은 청와대 눈치만 보면서 스스로 ‘청와대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하고 있다.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지시와 통제에 순응한다. 청와대 민정수석의 국회 출석은 전례가 없다고 버티던 여당은 “출석하라”는 대통령 말 한마디에 맹종했다. 청와대가 집권당을 통해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민주당은 김경수 지사 1심 선고 이후 “사법신뢰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판결”, “사법농단 세력의 사실상 보복성 재판”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법관 탄핵까지 운운했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장은 “(판결에 대한 비판이) 표현이 과도하다거나 혹은 재판을 한 개개의 법관에 대한 공격으로 나아가는 것은 헌법상 보장된 법관 독립의 원칙이나 법치주의의 원리에 비춰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도 "김경수 경남도지사에 대한 1심 판결은 사법농단과 별개인 독립된 재판의 결과"라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은 재판 판결에 침묵하고 있는 청와대 눈치를 보면서 대통령 최측근인 김경수 지사를 구하겠다는 충정으로 ‘대선 불복 프레임’을 들고 나와 야당과 정쟁을 벌일 때가 아니다. 진보매체 언론인 한겨레신문은 사설을 통해 “재판부가 인정한 범죄 사실은 엄중하다. 판결 내용대로 댓글순위 조작을 공모했다면, 공론 장을 파괴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민주주의 기초인 선거제도를 뿌리째 뒤흔드는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했다. 경향신문도 사설에서 “집권 여당이라면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법원을 모독하기 앞서 이 사건을 처음부터 엄격하게 대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대선 댓글조작의 ‘수혜자’로 지목된 이상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민주당이 깊이 명심해야 할 내용이다. 단언컨대, 정치 공방은 실체적 진실 발견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넷째, 인사 실패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는 국가시스템 문제를 지적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이 문제라며 자신들이 정권을 잡으면 다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국회 인사 청문 경과보고서 채택 없는 장관 임명,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 현직 언론인의 청와대 비서 임명, 총선 출마용 청와대 비서진 교체 등 과거 정부의 인사 적폐들이 현 정부에서도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최근 청와대는 문 대통령 대선캠프 특보 출신인 조해주 중앙선관위원을 국회 인사청문회를 아예 거치지도 않았지만 임명했다. 국회 인사청문회 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장 받은 여덟 번째 장관급 인사다. 자유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는 "여당 대선 캠프의 선거특보 출신이 선거관리 실무를 장악함으로써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때 아닌 관권선거의 위기에 봉착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능력과 적재적소를 인사의 대원칙으로 삼겠다. 저에 대한 지지 여부와 관계없이 훌륭한 인재를 삼고초려해서 일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현 정부는 ‘캠코더(문재인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인사’라는 비판에서 자유스럽지 못하다. 이를 근절하지 못하면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으며 결과는 정의롭지 못할 것이란 인식이 생기게 된다. 

 

 다섯째, 협치를 가로 막는 독선의 벽을 넘어야 한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조해주 위원 임명은 헌정질서와 여야 협치를 파괴한 것"이라며 자유 한국당은 국회 일정을 거부하고 릴레이 농성에 돌입했다. 정부 여당이 야당을 국정운영의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고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인식하면 협치는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원래 협치는 힘없는 야당이 아니라 권력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 대통령이 군림하고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야당과 뜨겁게 대화하고 소통해야 협치가 시작된다. 역대 정부의 실패를 몰고 온 악습들을 현 정부가 그대로 답습하는 것을 보면서 “문재인 정부는 자신들이 적폐로 몰아세우고 있는 과거 보수 정부와 무엇이 다르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최근 문 대통령 대선 1호 공약인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또한 “경기부양을 위해 대형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는 하지 않겠다”는 공약도 예비 타당성 조사 면제 카드를 꺼내들어 이를 뒤집었다. 

 

 대통령 공약의 파기는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이자 포퓰리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나라를 나라답게 만든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국정 어젠더 성과 도출, 내각 중심 정치, 수평적 당청 관계 구축, 탕평 인사, 협치 강화를 통해 구시대의 잘못된 관행과 과감히 결별해야 한다. 더불어,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경제 문제뿐 아니라 김태우·신재민 폭로, 손혜원·서영교 의원의 비위 의혹, 대통령 최측근 김경수 지사 구속, 대통령 딸 해외 이주 의혹 등 국정 위기를 몰고 올 대형 악재들을 잘 관리해 ‘집권 3년차 증후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보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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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종수정 2019년02월04일 09시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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