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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기강 확립? 청와대 ‘내로남불’부터 바로 잡아라 본문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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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입력 2019년01월27일 17시05분
  • 최종수정 2019년01월28일 14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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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일
  • 국가미래연구원 연구위원, 단국대 석좌교수, 前 국회의원,前 중앙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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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가 공직 기강을 잡겠다고 나섰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국무총리실, 감사원과 함께 ‘공직기강 협의체’를 만들어 1월 22일부터 가동했다고 밝혔다. 3개 기관 협의체는 첫 회의에서 공직기강을 연중 점검하고 암행 감찰과 기획 감찰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정부 출범 3년 차를 맞아 음주운전, 골프접대 등 공직사회 전반에 걸쳐 기강 해이가 심해지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며 “기강 이완 확산을 차단하고 국정동력을 강화하기 위해 협의체를 결성했다”고 말했다. 그는 “기강 해이가 공직사회의 부정부패, 무사안일로 이어지면 정부 정책의 추동력이 약해질 것”이라며 “적발된 비리에 무관용 원칙으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이제) 본격 활동을 재개할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감찰반(옛 특별감찰반)도 중대비리를 정밀 감시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공직자들의 기강은 항상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 여부를 점검하기 위한 활동도 사시사철 이뤄져야 한다.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와 이완, 부패와 비리를 막기 위해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유관기관이 합동으로 움직이겠다고 하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간 청와대발(發) 공직 기강 해이 사례가 여럿 발생해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실망으로 많이 바뀐 만큼 공직 사회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것은 시의에도 맞고 꼭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청와대가 간과한 것이 있다. 조국 수석의 말에 틀린 건 없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공직 사회의 말단까지 기강이 제대로 잡히려면 윗물(청와대)부터 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 청와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문제 등과 관련해 진솔한 반성과 사과를 하고, 책임도 지는 모습을 먼저 보인 다음에 공직 기강 운운해야 메시지가 먹힐 거고, 공직 사회도 옷깃을 여밀 터, 조국 수석은 가장 중요한 핵심을 빠뜨렸다. 

 

 ‘책임윤리’ 보여주지 못한 청와대, 영(令)이 서겠나?

 

 청와대에선 그간 볼썽사나운 일들이 많이 발생했다.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의 권한 밖 정보 수집·조사와 민간인 사찰 의혹은 청와대의 도덕성과 직결된 문제로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야당이 국회에서 국정조사를 실시하겠다고 하고 검찰이 정권의 눈치를 보는 수사를 할 경우 특검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청와대는 모든 걸 ‘미꾸라지’의 일탈로 치부하고 문제를 덮어버리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별감찰반 활동의 불법성을 주장하는 특감반원이 비록 미꾸라지에 불과하고, 그에게 개인 비위 혐의가 있다고 해도 그가 폭로한 특감반 활동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으로 보고 진상을 규명해야 함에도 청와대는 ‘미꾸라지’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 그를 부하로 뒀던 조국 민정수석이 불법을 몰랐고, 불법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해도 관리부실의 책임은 면할 길이 없는데도 대통령은 그를 감싸며 무한애정을 나타냈다.

 

 특감반 문제와 관련해 청와대와 조국 수석은 공직의 기본인 ‘책임윤리’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지 못했다. 그런 청와대와 민정수석이 지휘하는 공직 기강 확립 작업을 공무원들이 과연 불만 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해도 속으론 ‘청와대부터 반성하고 청와대부터 책임지는 태도를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하지 않겠는가.

 

 그밖에도 청와대에선 기강이 엉망임을 보여주는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육군참모총장을 카페로 불러내서 만난 인사수석실 행정관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과 그의 군 인사자료 분실, 경호실 소속 경호원의 술집과 파출소에서의 행패, 경기도 하위 기관에 대한 일자리 수석실 행정관의 갑질 등이 그것이다.

 

 청와대 행정관을 남편으로 둔 감사원 국장이 한국 정부의 예산지원을 받는 미국의 한 연구소에 자신을 받아주면 남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이메일을 보낸 뒤 그곳으로 연수를 간 사실이 드러났다. 정권 실세의 보좌관 출신인 그 행정관은 아내를 보내놓고도 연구소에 지원하는 예산을 깎으려 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청와대는 문제의 행정관을 2개월가량 대기발령 상태로 놔뒀다가 여론이 잠잠해 지자 보직만 바꿔 행정관으로 복귀시켰다. 그 행정관의 아내를 중징계한다고 했던 감사원은 슬그머니 ‘감봉 3개월’로 징계문제를 마무리했다. 힘 있는 청와대 행정관의 부인이니 ‘봐주기 징계’ ‘솜방망이 징계’에 그친 것이다. 

 

 대통령과의 인연이 있거나 빽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큰 잘못을 저질러도 대체로 무사하고 온전하다. 자리에서 잠시 물러나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공공부문에서든, 민간에서든 좋은 일자리를 꿰차는 경우가 많다. 반면 연줄이 없는 사람들은 심한 경우 ‘미꾸라지’로 전락하고 일자리가 봉쇄되며 검찰 수사까지 받게 된다. 이런 대조적인 광경을 보며 국민과 일반 공직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기회는 평등할 것이며, 과정은 공정할 것이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했던 대통령에게 “무엇이 평등이고 공정이며, 정의인가?”라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대통령, 조국 수석 경질로 ‘춘풍추상(春風秋霜)’ 실천해야 

 

 청와대 비서실의 각 방엔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글이 쓰인 액자가 걸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걸게끔 한 것이다. 춘풍추상은 <채근담(菜根譚)>의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에서 나온 말이다. 남에겐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자신에겐 가을서리처럼 차갑게, 엄격하게 대하라는 얘기다. 청와대 스스로 작은 잘못도 엄하게 다스려야 공직 기강이 바로 서고, 다른 공공부문에서도 청와대를 본받을 것이란 뜻에서 대통령이 이 액자를 걸도록 했을 것이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도 취임 일성으로 ‘춘풍추상’을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보여준 건 ‘말 따로, 행동 따로’다. 이미 지적했듯 내편에는 봄바람, 다른 이들에겐 서릿발이다. ‘지기춘풍 대인추상’, 다시 말해 액자의 글과는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정권이란 소리를 듣는 것 아닌가. ‘내게는 봄바람, 남에게는 서릿발’ 사례의 대표를 꼽으라면 자신이 책임진 조직에서 온갖 사고가 발생해도 무사한 조국 수석이 아닐까 싶다. 그런 그가 공직 기강 확립의 칼자루를 쥐고 다른 공직자들에겐 ‘무관용’ 운운하고 있으니 넌센스도 이런 넌센스는 없지 않은가.    청와대가 추진하는 기강잡기가 공직 사회와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청와대부터 ‘춘풍추상’을 실천해야 한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고 작은 잘못이나 실수에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은 장차관급 다수 후보자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인사검증 실패, 특별감찰반 물의 및 관리 부실 등의 책임을 물어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조 수석을 경질해야 한다. 그것이 ‘춘풍추상’에 걸맞는 조치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비서실에 ‘춘풍추상’ 액자를 걸게 하면서 ‘금언’처럼 했던 말을 잊었는가. “공직에 있는 동안 이런 자세(춘풍추상)를 지키면 실수할 일이 없을 것이다. 남들에게 추상같이 하려면 자신에게는 한겨울 고드름처럼 몇 배나 더 추상같이 해야 한다”고 비서들 앞에서 강조하지 않았던가. ‘자신에게는 몇 배나 더 추상같이 해야 한다’는 이 말에 답이 있고, 그 답은 조국 수석을 자르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1월 14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공공기관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사장을 비롯해서 경영진도 문책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사장이나 임원진들이 자기 일처럼, 자기 자식 돌보듯이 직원들을 돌보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것을 하지 못하면 전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하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안전사고 예방을 강조하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이지만, 거기엔 기관장의 책임의식·책임윤리가 강화돼야 하며, 잘못될 경우 보다 단호히 기관장을 문책하겠다는 뜻도 담겨 있다. 이 같은 ‘기관장 책임론’은 조국 수석부터 적용돼야 한다. 안전사고는 아니지만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줄지어 터진 민정수석실 책임자를 ‘춘풍추상’의 본보기로 정리해야 다른 공직자들에게도 대통령 영(令)이 서지 않겠는가.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잘못해도 ‘태평성대’를 누리고, 대통령과의 관계가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겐 서릿발과 불호령이 떨어지면 누가 그걸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하겠는가.

 

우윤근 대사, 손혜원·서영교 의원 등에게도 ‘춘풍추상’ 적용돼야

 

 대통령실 비서실장으로 하마평에 올랐던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2009년 국회의원이었던 우 대사에게 조카의 취업을 청탁하며 1천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사업가와 우 대사의 쌍방 고소로 수사가 시작된 만큼 권력 실세에 대한 봐주기 수사가 아닌 성역 없는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우 대사에 대한 수사가 ‘내편에는 봄바람’으로 귀착되면 청와대가 주도하는 공직 기강 확립 작업은 국민의 지지를 받기 어려울 것이다. 

 

 공직기강협의체의 기강 확립 대상은 아니지만 민주당 서영교 의원, 민주당에서 탈당한 손혜원 의원에 대한 수사도 ‘춘풍’이 아닌 ‘추상’의 모양새를 띠어야 한다. 지역구에서 자신을 도운 지인 아들의 범죄 혐의를 가볍게 하고 형량도 낮춰주기 위해 국회 법사위에 파견된 판사를 통해 법원에 청탁을 한 법사위원이고 여당 의원인 서 의원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 검찰은 서 의원을 서면으로만 조사하고 말았는데 법사위원 지위를 활용해 법원의 재판에 개입하려 한 서 의원의 문제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다. 청와대가 공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고 하니 검찰은 같은 맥락에서 서 의원 사건을 철저하게 재수사해야 한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지정으로 지정된 목포 구도심에서의 부동산 매입이 공직자가 지켜야 할 기본윤리인 이익충돌금지 원칙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고, 국립박물관에 특정인을 심으려 한 문제 등과 관련해선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듣는 손혜원 의원에 대해서도 철저하고도 단호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 손 의원이 대통령 부인인 김정숙 여사의 절친이라는 점이 검찰 수사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다. 검찰이 우 대사나 서·손 의원에 대한 수사를 엉터리로 할 경우 검찰이 반대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의 당위성은 커질 것이고, 공수처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도 확대될 것이다. 검찰의 부실 수사는 결과적으로 검찰에 독(毒)이 될 것이란 점을 검찰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조해주 선관위원 임명 강행, 공직 사회에 잘못된 신호 줄 것

 

 청와대가 공직 기강 드라이브를 걸겠다고 나선 시기에 대통령은 ‘춘풍추상’에 어긋나는 결정을 또 내렸다. 2017년 자신의 대선 캠프에서 공명선거특보를 맡은 걸로 민주당 대선 백서에 기록된 조해주 전 경기도 선관위 상임위원을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으로 임명한 것이다. 민주당은 실수로 잘못 적은 것이라고 주장하나 한 명뿐인 공명선거특보를 엉뚱하게 기록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조 위원이 2016년 20대 총선 때 총선방송심의위 부위원장을 하면서 민주당에게 유리한 발언을 했고, 관련 회의록도 존재하는 만큼 그가 선거의 공정성을 책임지는 선관위원으론 부적절하다는 비판엔 설득력이 있다. 1급 자리인 경기도 선관위 상임위원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난 사람이 졸지에 장관급인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후보자로 지명된 데 대해 “권력과 관계가 없다면 이상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온 터다.

 

 야당이 청와대와 민주당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채택해서 인사청문회 때 따져보자고 했지만 민주당은 거부했다. 단순 실수라면 관계자들 증인 채택을 반대할 이유가 없을 텐데도 민주당은 철벽을 쳤다. 이 바람에 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는 무산됐고, 문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임을 내세워 그를 상임위원으로 임명했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청문회도 거치지 않은 인사를 장관급에 임명하는 불미스러운 선례를 문 대통령은 남긴 것이다. 

 

 문 대통령의 ‘마이 웨이’에 한국당은 2월 국회 보이콧이란 카드를 꺼냈다. 이로 인해 중 국회의원 선거구제 개편 논의도 중단됐고, 입법으로 뒷받침해야 할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등 경제와 민생 현안도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은 처음부터 오해를 사지 않을 사람을 내놓았어야 했다. 조 위원 이름이 여당 백서에 올라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면 야당의 반발을 고려하고, 선거엔 결코 개입하지 않는다는 중립 의지를 과시하기 위해서라도 조 후보자 지명을 철회했어야 했다. 그런 정무감각도 없이 국정을 운영하고 밀어붙이니 ‘독선 정권’이니, ‘오만 정권’이니 하는 비판을 받는 것 아닌가.

 

 대통령의 조 위원 임명 강행을 바라보는 공무원들의 심정은 어떨까. ‘대통령과 청와대는 자기편인 경우 어떤 문제가 있어도 확실히 챙긴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국가채무 문제를 고발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과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문제를 폭로한 김태우 전 특별감찰반원을 조 위원과 비교하면서 말이다.

 

 대통령이 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조 위원을 임명한 것은 무리수(無理手)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공직 사회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눈치 빠른 공무원들은 권력에 줄을 대려 할 것이고, 눈치는 있지만 끈도 없고, 재주도 없는 공무원들은 납작 엎드리고 있을 터여서다. 공직 사회에 이런 분위기가 조성된다면 제대로 된 기강이 자리 잡을 수 없을 것이고, 국민만 피해를 볼 것이다.

 

 대통령은 왜 이런 문제를 헤아리지 못할까. 대통령이 조국 수석과 조해주 위원을 감싸는 것이 공직 사회에 잘못된 신호를 준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대통령 주변엔 ‘아니되옵니다’라며 조 수석 경질과 조 위원 임명 철회를 진언하는 사람이 왜 없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과 청와대, 정부·여당이 ‘춘풍추상’ 운운하면서 행동은 ‘내로남불’로 일관한다면 민심은 갈수록 싸늘해 질 것이고, 내년 총선 때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ifs P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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